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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이 Sep 22. 2021

크림이의 마력에 풍덩!

쿠키와 달라도 너무 다른 고양이 크림.

우리 딸과 아들같이 다른 쿠키와 크림


 고양이를 키우면 그 매력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옆에서 시중들면서도 행복한 집사가 된다더니...

크림이에 대한 글을 쓰는 지금 문득 우리 쿠키가

글을 읽지 못하는 게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30여 년 간 친정에서 개들과  같이 놀고 자란

나로선 개를 키우는 데 귀찮은 일은 있어도  

모르거나 힘든 일은 없었다. 그런데 별안간 인연을 맺게 된 우리 크림이는 난감하다 못해 어이없는 

 행동을 서슴지 않곤 했다. 

마치 딸 아들을 키우던 생각이 났다. 딸과 아들을 키우면서 당황한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단계마다의 과업을 완수하는 발달 속도부터 아하는 음식, 성격, 생김새까지 같은 것이 없어서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쩔쩔매곤 했다.

다 내 자식인데 한 명 키워내며 가진 육아 상식과

내공이 또 다른 아이에겐 물거품이 되는 그 허무함이란... 두 아이들 모두 성인이  된 지금은 각각의 특성과 장점을 보게 돼 비 오는 날 우산 파는 아들,

볕 드는 날 짚신 파는 아들 생각하듯 긍정적으로

 바뀌긴 했지만.


맘대로 사는 크림이


크림이는 목청껏 불러도 코빼기도 안 보이다가

식구들 둘러앉아 밥 먹는  중에 날렵하게 식탁으로 올라온다. 식탁이 넓은 편이라 우리 식구 반찬 그릇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다리를 하늘로  쳐드는 난해한 동작을 하며 신나게 루밍을 하다가 갑자기 우리가 마시는  물컵으로 직진한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컵을 향해 우아하게 걸어와선  설마?하는 그 순간에 바로 발을 담그거나

태연하게 고개를 처박고 물을 마신다.

의자에 같이 앉아 있던 쿠키,  엄마가 화를 내겠지? 기대하듯  나를 한번 크림이를 한번 번갈아 보는데.  내가 안돼! 크림아!!

외쳐도 크림이는  컵 속에 넣은 얼굴을 꺼낼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이상한 건 당당한 그 행동이 괘씸하기보다는 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터진다.

이래서 내리사랑인가?

쿠키는 막무가내 크림이가 이해가 안간다.

쿠키는 어릴 때부터 우리 가족은 물론 우리 엄마와 언니 조카들, 내 친한 친구들 이웃들까지  만인의 사랑을 듬뿍 받았지만 안돼!! 쿠키! 하는 부정적인 말도 제법 들으며 예의를 배웠다.

쿠키가 한 살 조금 넘었을 때 식탁에 고기반찬을 차려놓고  딸아이를 깨우고 오니 쿠키가 식탁에 올라가 그 뜨거운 고기를 한입에 먹어치우는 중이었다.  쿠키! 하는 외침에도 끝까지  입에 넣고 후다닥

뛰어 내려갔던 그날  엉덩이도 두 어대 맞으며 혼난 쿠키는 지금껏 식탁에  발을 올려놓는 일

 한번 없이 자랐다.

그런데 사실 안하무인 크림이를 어떻게 교육시켜야 할지 고양이가 개처럼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교육이 먹힐지는 잘 모르겠다.

일단 크림이는 쿠키보다 지능이 낮고 전혀 길들여지지 않는다.  크림이와는 의사소통이 된다거나 이쯤 되면 크림이가 나를 엄마로 여기겠지 할만한 어떤 증거도 없기  때문이다.

또한 부른다고 오지도 않고 내가 찾아가야 한다.

고양이는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해서 마루에 있는 캣타워라든지 크림이의 짐으로 가득 찬 작은 방 정도만 들여다  보면  크림이가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크림이의 서식지는 그냥 온 집안 전체였다.

우연히 찾아낸 아늑한 장소가 있다면 그날은 그곳이 크림이의 침대인 것 같았다.

크림이 찾아 삼만리를 하다 보면 식탁 위, 식탁 의자 위, 식탁 밑의 마룻바닥, 부엌 쪽 베란다  건조기 옆, 캣타워 위, 빨래 바구니 안, 남편 침대 모서리, 딸 방 침대, 아들 방 침대나 의자 위, 마루 한쪽에

 깔린 요가매트 위, 서재 피씨가 있는 책상 위,

노트북 위...집이 이만해서 다행이지 더 컸다면

 곤란할 뻔했다.


처음엔 방울을 흔들거나 휘파람 소리를 내면 바람같이 나타나 몸을 낮추고 엉덩이를 세우고 방울이나 장난감을 까매진 눈으로 응시하곤 했다.

 하지만 하루 이틀이지 하루에도 십 수 번 이 사람 저 사람이 흔들어 대는 방울 소리에 계속 반응할 수는 없으리라. 와봤자 뻔한 놀이들..

크림이는 이내 방울소리 등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게 됐다.

크림이가 보고 싶으면 울며 겨자먹기로 찾아 나설 수밖에. 하지만 집착하면 서로 피곤해지는 법. 

 언제나 반짝이는 까만 눈으로 나를 응시하는 쿠키를 조강치처같이 여기며 크림이에게 관심을  끄면 난데없이 크림이는 내 시야 안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온다.

날아다니는 날파리나 벌레를 잡거나  선풍기나 열어놓은 창 밖의 바람에  흔들리는 옷자락을 갖고

 수선스럽게 논다. 충전기 줄을 갖고도 놀고 개키려고 갖다 놓은 빨래 바구니에 들어가 구루밍을 하며 시선을 끌기도 한다.

관종스러운 모습에 맘이 흔들려 뽀뽀라도 해주려고 다가가면 또 잽싸게 몸을 피한다. 얄미워...

편안한 곳이면 그  곳이  크림이 침대가 된다.

온 집안에 날리는 크림이의 털, 그래도 예뻐


크림이의 털은 엄청 빽빽하고 밀도 있게 났다. 모든 고양이가 그런 지는 모르겠지만 쿠키와 비교해보면 쿠키는  털을 가르면 속살이 보이지만

크림이는 털을 아무리 갈라도 속살이 보이지 않을 만큼 모공 하나에 수백 개 털이 있는 것처럼

조밀하다.


크림이를 안거나 얼굴을 몸에 갖다 대면

양모를 잘 깎아 만든 고급 양탄자처럼

 폭신폭신하다.

보드랍고 탄력이 느껴지는 볼륨의 촉감이 너무

포근해 자꾸만 만져보고 싶다. 

부비부비하면 지도 좋은지 갸릉갸릉 소리를 내며 집사를 황홀하게 하는 서비스도 가끔 해준다.

여튼  촘촘하게 난  털 만큼  무지막지하게 털이 빠지는 크림이. 키우다 보니 파양한 집에서 털이 빠져서 보냈다는 말이 (이해는 안 가지만) 수긍은 갔다. 고양이 털이 많이 빠진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인 줄은 미처 몰랐다.

 크림이를 보러 오는 우리 언니나 조카들은

일단 크림이를 만나기 전 미리 가져온 흰색 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색깔이 있는 옷은 바로 크림이의 털로 덮이기 때문이다. 세수를 하고 로션 림을 바른 채 아직 유수분이 날아가지 않은 상태에서 크림이에게 뽀뽀를 하면 온 얼굴에 크림이 털이 고 렌즈를 끼는 딸과 나의 눈이 너무 아파 렌즈를 빼보면 크림이 털 때문인 적도 있었다.

식사시간에 때때로 식탁 위에 올라와 길게 누워

자거나 구루밍을 할 때가 종종 있는데 그땐 크림이 털을 먹을 수도 있다는 걸 감안해야 한다.

크림이가 온 후로 청소기를 돌리거나 정전기패드로 집안 청소를 하면 새하얀 털이 먼지통과 패드 바닥 가득할 정도다.

우리 딸아이는 유독 크림이를 예뻐하는데 그런

크림이를 보고 '엄마, 크림인 장미 같아. 너무 뾰족한 가시가 있어..털빠짐..' 이라고 해서

깊이 공감하기도 했다.


화장실을 사랑하는 크림이


크림이는 여러 공간 중 화장실을 무지 좋아한다.

세면대에 올라가 물을 마시고  샤워부스에 들어가 엎드려 꼬리를 탁탁 치며 하수구에서 나오는 벌레 잡는 놀이를 제일 즐긴다.

지지야 지지!! 하며 크림이를 데리고 나올라 치면 싫다옹~~ 소리를 내며 다시 들어간다.

대체 뭐하나 한참을 관찰했다. 화장실 바닥에 길게 누워 자기도 하지만 하수구 쪽에 가끔 출몰하는

벌레를 기다리다가 나타나는 즉시 몸을 날려

조막만 한 하얀 손으로 탁! 잡는다.

이제 사체를 확인할 차례.

아주 조심스럽게 하얀 발을 들며 머리를 바닥에 대고 잡혔는지 살펴보는데...그 순간 핑크 젤리와 손바닥의 털 사이 공간에 숨어있던 날파리는

이내 도망을 가고 만다.

젠장! 크림이는 실망한 표정을 하고 또다시 다음 표적을 기다리는데...나는 크림이가 날파리 잡기에

성공한 것을 본 일이 없다.

발바닥 구조상 그런 작은 벌레는 잡기가 어렵다는 것을 우리 크림이는 알 수가 없지만 그렇기에 늘 지치지 않고 날파리 잡기에 열심이다. 그런 크림이 덕분에 나는 화장실은 늘 신경 써서 청소할 수밖에

없다.

크림이는 세면대에 올라가 흐르는 물을 관찰하거나발로 적셔 물을 마신다. 물줄기에 직접 입을 대고 마시기도 한다.

크림이,  드디어 일내다


 화장실 이외의 공간에서는 누워서 잠만 자는 크림이가 파리 잡는 것을 목격한 날은 잊을 수가 없다.

2월에 우리 집으로 이사 와서 단 하루도 크게 움직이는 것을 본 적이 없었는데 딸아이와 나와

쿠키 크림이가 각각 자리를 잡고 침대방에 들어앉아 누워있었다.

그런데 별안간 파리 출몰 ㅠㅠ...

파리의 출몰은 청소를 매우 싫어하는 내가 집 안 관리를 제대로 안 한  증거 같아서 우울해졌는데

바로 그때였다.

세상 편하게 누워 있던 크림이가 갑자기 까망 눈동자를 최대로 키우더니 을 날려 파리를 쫓기 시작했다.

 007 영화가 따로 없이 박진감 넘치는 장면이었다. 알다시피 파리는 똥이나 반찬 등 목표물이 없이는 0.1 초도 머무르지 않고 왱왱거리며 방정맞게

온 천지를 정신없이 날아다닌다.

그런 파리의 미친 움직임을 따라 크림이는 그 깜장 눈을 반짝이며 찰나도 놓치지 않고 같이

날아다녔다.

침대에서 화장대로 화장대에서 바닥으로 다시 침대 위로 침대 위에서 천장 쪽으로 점프!!  

화장대 위 화장품들이 와르르 넘어져도 크림이는 파리를 쫓느라 놀라지도 않았다.

딸아이와 나도 입을 벌린 채

 나무늘보 같았던 크림이가 날쌘돌이로 변신한

 모습을 흥미진진하기 지켜보았다.

탄성이 절로 나왔다. 와!! 어머! 아!!! 어!!!


크림이의 집중력은 진짜 놀라웠다. 내 평생 저렇게 무엇에 집중한 일이 있었나...

우리 크림이 공부시키면 잘할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우리보다 더 놀란 건 파리였던 모양이다.

휙휙휙~~ 바람처럼 몸을 날린 크림이에게 몇 번이나 아슬아슬 붙잡힐 뻔한 파리는 결국 블라인드 쪽으로 붙어 가뿐 숨을 고르는 것 같았다.

크림이는 여전히 파리에게 눈을 떼지 않고 이제는 목표물을 향해 조용히 다가가는 중이었다.

소리 나지 않게 들키지 않게.

고양이는 발바닥의 푹신한 핑크 젤리 때문에 아무 소리 안 나게 접근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글이글 파리에 시선을 고정한 채 크림이는 적당한 거리에서 멈춰 숨을 고르더니 몸을 날리며

그 귀여운 핑크 젤리를 뻗어 탁!!!

파리는 실신하고 말았다.


야호!!!! 딸과 나는 함성을 지르며 크림이를 격려하고 칭찬했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그렇게 큰 일을 하고도

 크림이는 의기양양한 모습도 없이 또다시 침대 모퉁이에 자리를 잡고 루밍을 시작했다...

파리나 크림이나 너무 빨라 동영상 저장을 할 수 없었던 것이 못내 아쉬울 따름이다.


간식을 사랑하는 뚱냥이 크림이


 먹고 잘 자고 잘 싸고 잘 노는 크림이는 어느새 많이 자라 뚱냥이가 되었다. 너무 귀여워서 츄르를

가끔 준 게 살이 되었는지...(*츄르는 짜 먹는 고양이 간식인데 참치 연어 등으로 만들어져서 고양이들의 최애 간식이다)

하나의 츄르를 꽤 여러 번 나눠서 주는데 츄르 츄르 하면 그 말만은 제대로 알아듣고 자다가도 눈이 동그래진다. 츄르 먹으러 갈까 하고 몸을 일으키면

얼른 일어나 츄르가 있는 마루의 붙박이장 앞으로 가서 몸을 비비고 뒹굴고 난리가 난다.

이런 모습을 보면 또 영리한 것 같기도 하다.

츄르뿐 아니라 찰옥수수나 쿠키 오빠의 사료  소고기 등 가리는 것 없이 입을 댄다. 비만은 건강의 적이니 조금씩만 먹고 예쁘게 자라야 할 텐데 크림이는 엄마맘을 알까?


쿠키 앤 크림에게


인간 사이에만 인연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쿠키도 크림이도 우리 가족과 전생부터 끈끈한 인연의 힘으로 이렇게 만나 모여 살게 되었을 것이다.

나에게는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동물 사랑꾼 유전자가 있어 어릴 때부터

강아지 고양이와 어우러져 살았다. 아빠에게 벌 받고 마당에 울면서 서있을 때 강아지들이 내 주위로 몰려와 이내 까르르 웃으며 뛰어놀았던 기억의

조각들은 두고두고 남아있다.

쿠키와 크림이도 힘든 학업과 외로움의 무게에 눌려있던 우리 아이들에게 위로와 기쁨이 되었기를, 물론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앞으로도 우리 가족 모두에게 힐링이 될 것이다. 고맙다. 쿠키 앤 크림!건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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