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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이 Oct 10. 2021

크림이는 공주님 1편

ㅡ쿠키 머슴과 세명의 집사들, 첫 번째 이야기

  냥이 입양에도 태몽이 있다?


2년 차 랜선 집사였던 남편이 어느 날

 꿈을 꾸었단다.

어두운 길을 걷다가 넘어졌는데 눈앞에 반짝이는 반지가 있었다. 아픈 줄도 모르고 그 반지를

주워서 우리 딸 줘야지  하고 주머니에 넣어왔다는 시답지 않은 꿈 얘기. (예전엔 이쁜 돌멩이만 봐도 마누라 줘야지 하더니 언젠가부턴 딸이다.

인생 다 그런 거지. 나도 그렇지)

"다이아였어?"

"그건 아닌 것 같아."

로또 살 만한 꿈도 아니고 그냥 흘려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저녁, 남편으로부터의 전화.

주로 카톡을 하지 여간해선  전화를 잘 안 하는데

전화벨 소리부터 흥분해 있었다.

술이 살짝 들어간 목소리로  톤도 높았고

말도 더듬었다.


"누, 누가  고양이를 준대!!!! 받을까??

내, 내가 키울게! 밥도 내가 주고 놀아주고 목욕도 내가 시킬게. 어제 꿈이 고양이 꿈이었나 봐"  

"그 꿈이 고양이 입양 태몽이란 거야?

 ㅋㅋㅋ 몇 살인데."

냥이는 탐탁지 않았다.

"어리대... 잘 몰라."

"종은 무슨 종이래?"

"몰라.. 섞였대."

"글쎄.. 난 모르겠네. 쿠키가 우선이니까 안되면 자기가 책임지는 걸로 하고 알아서 해."

이름도 성도 나이도 모른 체 남편은 입양하겠다고 방방 뛰었다.

고양이  키우고 싶다고 몇 달 노래를 부르더니

 백일기도라도 올렸는지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다.


금수저 고. 영. 희씨 크림이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크림이는 얼떨결에 그렇게 우리 집에 왔다. 엄청난 이삿짐과 함께 보무도

 당당하게.

남편은 서 너번을 올라다니며 냥이 짐을 날랐다.

나는 고양이가 든 이동장을 최대한 흔들리지 않게 품에 안고 올라왔다.

심드렁하게 구경하던 딸아이는 눈이 동그래졌다.


 "엄마, 완전 금수저 고양이었나 봐. 짐 좀 봐. 와! 샤워기까지 있어. 우리 쿠키랑 비교되네."

그러게... 참으로 많은 짐이었다.

고양이 캣타워  외에 각기 다른 모양의 고양이 집만 네 개, 전용 샴푸 2개, 사료도 종류별로 두어 개,

각종 간식, 빗이 달린 전용 샤워기,

지어 고양이 전용 드라이어까지 있었다.

끝이 아니다.

우리가 쓰는 수건보다  보송보송한 고양이 타월 7장(순간 낡은 우리 수건이랑 바꿔 쓸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ㅠ)

고양이 전용 화장실, 화장실용 두부 모래, 

크래처 두 개, 소리 나는 장난감,  낚싯대,  

깃털 같은 놀잇감도 열 개 가까이 되었다.  

입이 떡 벌어졌다.

방 하나가 고양이 짐으로 금세 차고 마루까지 내줄 판이었다. 

10여 년 간, 물어뜯는 스무 개의 인형 장난감과

건조한 사골 뼈다귀, 산책할 때 입는

하네스 두 개와 얼마 전 바꾼 두 번째 침대가

전 재산인 쿠키에게  괜스레 미안했다.

그래도 우리 쿠키는  줄줄 넘쳐흐르는 사랑을 받았으니 안빈낙도의 삶이지.

부잣집 고양이 성격은 까칠하겠지,

돈으로 키운 자식 잘되는 것 못 봤어,

우리 쿠키는 구김살 없고 상냥하고~^^

정신 승리해봤다.


 원래 어수선한 집 안은 바로 난장판이 된  느낌이었다. 이 정도로 고양이 용품을 갖추고 키웠다면

소중하게 키운 고양이일 텐데 이렇게 보내는 전주인 마음이 느껴져 짠했다.

 또 어느 정도 자란 저 고양이는 갑작스레 영문도

 모르고 남의 집으로 왔으니 얼마나 낯설고 슬플까. 더군다나 한 배에서 나온 형제 고양이가 같이 있었다고 하던데 말은 못 해도 울고 있을 것 같았다.

짐을 대충 펼치고 케이지 안에 한동안 갇혀있던

고양이를 영접할 시간. 


낯선 동물의 냄새에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쿠키를 꼬옥 끌어안고 진정시켰다.

모두들 침을 꼴깍 삼키며 조심스레 이동장 문을 열었다. 눈부시게 하얀 고양이가 레드카펫 위를 밟는 여배우 마냥 사뿐사뿐 걸어 나왔다.

크림이와의 첫 만남이었다.


호위무사와 세 명의 집사


집에 오자마자 크림이는 우리 집을 바로 접수했다. 나만 제외하고는 실물 고양이를 키워본 경험도 아니, 가까이서 보거나 만져본 경험도 없는 가족들이 촌스럽게 웅성거렸다.

랜선 집사 2년 차였지만 백문이 불여일견.

주워들은 고양이 지식과 상식은 풍부해도 남편은 적잖이 긴장한 모습이었다.

쿠키의 찐친 우리 아들은 일부러 더 관심을 두지

않았고, (쿠키가 상처 받을까 봐 그런 것 같았다) 나와 딸 남편은 번갈아 고양이 방에 들어가

누가 누가 잘하나 내기하듯 고양이에게  잘 보이기 바빴다.

쿠키는 굳게 닫힌 고양이방 앞에서 콧물까지 흘리며 킁킁거리고 나도 좀 보자!!

하며 울부짖었다.


 


가뜩이나 작은 방에 고양이 짐을 들여놓자 너무  좁아져서 한 번에 두 사람  들어가 앉아있기도

버거웠다.

 누가 들어가 있으면 5분이 지나기 무섭게  교대하고 좀 쓰다듬어보자며 문을 두드려 댔다.

북새통이었다.

나중엔 고양이 왕팬 우리 언니까지  달려와  합세했다. 크림이는 단번에 우리 집 공주로 등극했다.

크림이는 세모 지붕이 있고 푹신한 방석이 놓인 침대에 올라가 우아하게 누워 집사들을 관찰하는 것 같았다.

 여러 사람이 정신없이 드나들어도 크게 불안해하거나 경계하지 않았다.

워낙 성격이 느긋하고 온순한 고양이었다.

(부잣집 고양이었지만 우리 쿠키만큼 성격까지 좋은, 다 가진 고양이라고 할 수 있겠다!)


몸을 한껏 늘려 비스듬히 앉아 그루밍도 하고 집사들을 내려다보기도 하다가 깃털이나 방울을 흔들어주면 눈이 까맣게 돼서 바로  사냥놀이에 열중했다. 살살 목 부위를 만져주면 금방 골골거리고 배를 까뒤집고 누워 귀염을 떨었다. 

츄르를 까주면 얼른 달려와 쪽쪽 핥아먹고 밥도

물도 맛있게 먹었다.

신기한 건 어린 시절 나는  집고양이가 하도 할퀴어서 손등과 팔에 상처투성이었는데 크림이는 안고 뽀뽀를 퍼부어도  싫다고 니야옹~하는 울음소리는 낼 지언정  손톱 내는 걸 본일이 없는 점이었다.

 혹시 전주인이 손톱을 제거한 건 아닌가 하는

호러무비를 혼자 상상하며 크림이 손 안을 뒤져봤지만  뾰족한 손톱이 열개 그대로 있었다.

흔히들 얘기하는 순해빠진 개냥이가 크림이었다.

자기 쓰던 짐이 그대로여서  그런 걸까.  크림이는 우리 집에 금방 적응하는 듯했고 수려한 외모와 달리 도도하지 않고 꼬시기 쉬운 공주였다.

집사들은 더욱 신이 나서 뒷바라지에  열을 올렸다. 아들을 제외한  식구가 몇 날 며 칠 그 작은 고양이 방을 서성이고 들락거렸다.

자다가도 눈만 뜨면 시간도 안 보고 고양이가 궁금해 크림이방으로 달려갔다.


쿠키는 하루종일 크림이만 졸졸졸, 호위무사 같다.


집사들만 분주한 건 아니었다. 쿠키의 관심사도 오로지 크림이었다. 개와 고양이의 격리기간 내내  

크림이방 문 앞에서 보초병처럼 먹고 자던 쿠키는  자나 깨나 크림이 꽁무니만 쫓아다녔다.

 도도한 크림이가 걸으면 뒤에서 아장아장  걷고

크림이가 침대에 오르면 텀을 두고 지도 올라와

조금 떨어진 곳에 엎드려 뚫어지게 크림이만 바라보았다.  크림이는 쿠키 보란 듯 무용수처럼 뒷다리를 높이 쳐들고 열심히 그루밍을 하거나 뜨거운

쿠키 눈빛을  신경  안 쓰고 늘어지게  잠을 잤다.

조금씩 조금씩 낮은 포복으로 다가가는 쿠키,

그러다가 너무 가까워지면 크림이는 싫다며  

하악질을 하고  냥 펀치를 날리기도 했다.

 냥 펀치에 얻어 맞고 한 번은 부아가 났는지 왈왈 짖어 크림이 가슴이 콩당콩당 뛴 적도 있다.

 워낙 순하고 착한 쿠키는  그렇게 또 크림이 주변을 맴돌았다.

천상 머슴 같았다. 좋은 말로 호위무사.


쿠키 입장에서 크림이가 가장 이해가 안 가는 것은 크림이의 날렵함일 것이다.

 바닥에서 책상으로 침대로 날개 가진 새마냥  풀쩍풀쩍 날아오르는 크림이.

또 그 높은 캣타워도  타워까지 세 걸음에 뛰어오르는 크림이의 모습은 쿠키에겐 말 그대로 저 세상의 선녀같이 보였을 것이다.



관찰, 또 관찰해도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흰 동물. 쿠키는 크림이가 잘 때 냄새도 맡아보지만...



나 좀 봐주라.



크림아 날 좀 바라봐


개냥이라 해도 쿠키에 비하면 한참 냉정하고

도도한 크림이라 크림이의 관심과 사랑을 받기 위해 세 집사는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했다.

남편은 냥이의 야행성 주기에 맞추어 (마침 갱년기라 잠이 없는 것을 이용) 새벽에 잠 안 올 때 틈만 나면 크림이 화장실을 청소하고,

밥을 주고, 크림이와 놀아주는 것을 택했고, 나와 딸은 츄르 주기, 화장실 청소 (근데 남편이 너무 치워서 치울 것도 없을 정도ㅠ),

크림이 빗겨주기,  노트북 비비고  막 밟아도

화 안 내고 내버려두기, 혹시 침대에 올라오면 얼른 침대 내어주기. 식탁에 올라오면 혹시 불편한 거 없나 치워주고 컵에 물 부어 놓기, 크림이 맛있는 것 주기 등 크림이 비위 맞추기에 여념이 없었다.


밖에 나가 놀다가도 쿠키 크림이가 뭐하는지 궁금해서 빨리 집에 가고 싶어졌다.

부리나케 집에 돌아오면 꼬리 치는 쿠키에게 "쿠키! 안녕!" 이라고 말하며 뽀뽀를 하지만 이미 눈은 크림이가 어디 있나 찾게 됐다.

 160센티가 넘는 캣타워 탑 위에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을 때가 크림이 찾기가 제일 수월했다.

 그대로 탑으로 직진해 키발을 서서 크림이에게 인사를 건네고 탑의 구멍 사이로 나온 크림이의 하얀 발을 덥석 잡고 핑크 젤리에 뽀뽀를 퍼부었다.

크림이는 귀찮다며 새침한 표정을 하고 낮은 소리로 냐옹~하며 발을 얼른 숨기지만 목소리도 행동도 너무 귀여워서 죽을 지경이었다.


 집사들의 굽신거림과 쿠키의 뜨거운 관심과 눈빛을 양분 삼아 크림이는 잘 크고 잘 적응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에게 온 지 한 이나 되었을까. 크림이가 갑자기 이상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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