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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이 Oct 20. 2021

크림이는 공주님 2편

ㅡ알고 보니 무수리였어...

우리 공주님이 벌써?!


크림이가 우리 집에 입성하여 온 집안을 들썩거리게 만든 지 한 달이 채 안되었을 무렵이었다. 그동안 크림이는 가끔씩 “아옹~” 하는 간드러진 울음소리로 집사들의 애간장을 녹이곤 했는데, 어느 날, 그 예쁜 목소리가 다소 날카롭게 바뀌었다. “니야아옹~, 니야아아옹~” 하며 한, 두 옥타브쯤 높은 톤의 울음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뿐만 아니라 허리를 바싹 낮추고 엉덩이를 뒤로 뺀 채 기어 다니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짚이는 바가 있었으나 나는 보고도 눈을 감고, 듣고도 귀를 막았다. 한낮엔 잘 놀고 잘 자고 얌전해져서 마음을 잠시 놓으면 밤에 또다시 날카롭게 울고 마루를 기어 다니며 괴로워하곤 했다.

유난히 추운 3월 초, 날씨만큼 스산한 마음으로 나는 결국 크림이를  이동장에 실어 쿠키의 단골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수의사 선생님은 껄껄 웃으며 말씀하셨다.

“아이고, 우리 공주님이 벌써 어른이 되셨구먼, 발정기가 온 거지 뭐 허허허.”

고양이들은 원래 추운 겨울에는 발정을 잘 하지 않고 크림이는 발정을 하기에는 아직 월령이 어리지만 요즘 따스한 아파트에 사는 냥이들은 성숙이 빠르다는 것이다. 발정기 증상은 교미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냥이들에게는 매우 괴로운 경험이고 아직 어린 크림이가 임신, 분만, 육아를 감당하는 것은 무리라고 하셨다. 결국 수의사 선생님이 권하시는 대로 이제 6개월 된 크림이는 중성화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큰 수술을 해야 하는 어린 크림이도 안쓰러웠지만 또 하나 맘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우리 집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크림이가 아픈 수술을 겪으며 우리들을 아프게 만드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아직 친해지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수술 후 집에 온 크림이....너무아팠을텐데도 비틀거리고 넘어지면서 화장실을 갔다.대부분 배변실수를 한다는데도 크림이는 너무 깔끔했다..눈물이 앞을 가렸다.


중성화 후 수술부위에 입을 대면 염증이 생긴다고 옷을 입히기도 하는데 수의사선생님이 괜찮다고 하셔서 크림이는 맘껏 상처부위를 핥았다.


자고 자고 또 자며 크림이는 하루가 다르게 원기를 회복했다.
2주일정도 후, 다시 건강해진 크림이~고마워♡

크림이는 무슨 종일까


크림이의 귀는 아주 작고 심지어 접혀있다. 처음 봤을 땐 이상해 보였으나 내 고양이가 되고 나선 귀엽게만 보인다. 얘는 무슨 종이래?? 남편은 우물쭈물하며 아메리칸 숏헤어랑 뭐랑 섞인 거리고만 했다. 뭐, 무슨 종이라고?? 여러번 물어도 잘 모르는 얼굴이다. 아무리 봐도 아메리칸 숏헤어 믹스는 아닌 걸로 보였다.

입양을 결정한 이후  남편은 전주인에게 궁금한 어떤 것도 물어보질 못했다. 무슨 종인지 중성화는 했는지 파양은 왜 했는지 정확하게 묻는 일이 마치 얼마 안 된 지인에게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라든지 또는 연봉이나 재산  등 내밀한 정보를 캐는 것처럼 어려워했다. (혹시 왜 이런지  아는 분?)

나는 이해할 수 없었으나 차라리 크림이에게 묻고 말지... 하고 넘겼다. 그래도 늘 출생의 비밀에 대한 궁금증은 가시지 않는 법.

쿠키 앤 크림이의 사랑스러운 시너지에 빠져 정신이 혼미해있다가 7개월이 지난 최근에서야 네이버에 물었다. 왜 이제야 네이버에서 찾을 생각을 했을까... 네이버는  '스코티쉬 폴드'라 했는데 정말 사진이 우리 크림이랑 똑같았다. 그ㆍ런ㆍ데.. 청천벽력 같은 사실을 접해야 했다.

 종은 접힌 귀를 만들기 위해 인공교배를 거듭한 결과 관절염이 심하게 와서 걷지도 못하는 유전병을 갖게 된 종이라는 것이다. 예방법도 치료법도 없는 병이라 이런 종은 사람들이 결코 찾지도 사지도 말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동물 애호가들이 많았다. 이렇게 이쁜 애가  그런 비밀이 있었다니...

천진하게 놀고 있는  크림이를 보니 가엾어서 미칠 것 같았다.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도 100프로 발병도 아닌데 어때~하며  데려왔을까? 그래도 다른집 안 가고 책임져줄 수 있는 우리 집 와서 다행인걸까...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뒤집었다.


알고 보니 무수리였어...


나는 단점이 참 많은 인간인데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는 성격이 젤 큰 단점이다. 한 가지 걱정되는 사실을 알면  그 걱정거리가 어느 정도 사라질 때까지 그 걱정만 한다. 단골 수의사 선생님부터 대여섯 명의 수의사들과 통화하고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다행스러운 한 가지 사실은 태어난 지 1년이 넘으면 확률이 많이 줄어든다는 것.

우리 크림이는 태어난 지 1년 하고도 3개월 접어드니까  괜찮을 거라  믿기로 했다.

아 그리고 또 한 가지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됐다. 크림이가 내 새끼가 되어 이쁘다 이쁘다 했는데 객관적으로 보니 못 생겼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너무 이쁘면 '미인박명'인데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크림이는 게으르고 목욕하자면  질색팔색 한다. 벌써 몇 달이 되었다.  공주가 아니라  무수리가 아닐까...

우리 무수리 크림양은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 것 같다.


*P.S  동물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진짜 동물 사랑꾼'들이 많아지길 바랍니다. 인위적으로 만들지도 말고 어떤 특정한 종을 고집하지도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여자 얼굴이 이게 뭐여...?건강한것 빼곤 볼게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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