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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이 Dec 25. 2021

명랑 골프 잔혹사

골프는 스코어다

2년전 어느 더운 여름, 대학 동창에게 카톡이 왔다. "우리 대학에서 입학 30주년 행사하는 것 알고 있지?3월부터 발족식을 해서 진행중이야 " 금시초문이었다. 중간에 미국도 다녀오고 폰번호도 여러번  바뀌고 sns도 안하다 보니 극소수의 동창만 간간이 연락되고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정말 내가 대학 입학한 지 30년이 되었다. 하긴...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30년도 더 지나있었다.  하필이면 30주년 행사일까 따져보니, 일리가 있었다. 대학 졸업하고 자리 잡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그 아이가 어느 정도 크는 시간. 대학이고 동창이고 다 잊고 직장에  가정에 몰두하다가 주변을 기웃거릴 여유가 생기는 시간이 30년은 묵어야 할 것 같았다. 4천명이 넘는 졸업생 중에 400~500여명이 참여중 이라고 했다. 참여도와 운영 회비가 절실하니 집행부를 맡은 동창들은 동문찾기에 혈안이 돼있었다.  얽히고 설킨 인맥을 총동원해  10여프로. 다들 어디서 뭐하다 50대가 되었을까. 과에서 동아리에서 지내던 동기들 소식도 궁금했다. 흥미가 돋았다. 사주에 실컷 놀라고 했는데 놀 일이 굴비 엮이듯 줄줄 엮이는구나... 생각했다.

30주년 행사를 하는데 수없이 많은 동호회가 있으니 동호회부터 참여하라는 닦달이 이어졌다. '50대의 봄'을 맞아 골프채 잡고 친구들 언니들과 막 골프를 치러 다니던 참이어서 '물 들어온 김에 노 젓자.'는 심정으로 골프 동호회를 찍었다. 이내 카톡방에 초대되고 정모에도 초대되었다.

카톡방은 100여 명의 동창들로 득실거렸다. 인사 한 줄하면 이미 떠들고 있던 사람들의 대화가 이어져 내 인사 뒤로 금세 수십 개의 톡이 도배되었다. 그 와중에 환영인사를 건네는 이들도 많았다. 골프동호회에선 10명에서 15명 정도가 아는 동창, 90프로는 처음 만나는 동창들이었다.

 예전의 나라면 얼씬도 했을 테지만 골프의 바다에 풍덩 빠지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 생전 남자라곤 남편뿐이었는데 50대에 낯선 남자들을 동창으로 만나다니 급 설렌 맘이 컸다고도 부연하겠다.)


2주 뒤, 설렌 맘을 안고 먼저 스크린 정모에 나갔다. 낯을 가리는 탓에  아는 친구들 몇몇을 심어놓고 나갔다. 50대에 처음 보는 남자애들, 여자애들이 방 몇 개를 잡아서 터놓고 스크린 게임 중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동창'이란 이름으로 '마치 알던 애 오랜만에 만나듯'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대해주었다. 신기했다. 같은 학교 간판 달고 있는 게 이런 건가 싶었다. 그냥 어디서 많이 보던, 낯익은 체형과 얼굴의 친근한 50대 아저씨 아줌마들이 대부분이었다.(설렘은 사라지고 편안함만 남았...)

중식 분식 맥주를 한 상 가득 차려놓고 스크린 중간중간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정말 골프에  열정이 대단한 친구들이 많았다. 이들의 친절한 조덕분에 긴장을 누그러뜨리고  나는 이내 처음 간 스크린에 열중할 수 있었다.


문제는 필드 정모였다. 대학 동호회 라운딩은 그간 내가 익숙한 보드랍고 다정한 사교의 장이 아니었다. 집행부도 스코어에 따라 정한듯 회장부터 총무 세명이 모두 스코어가 70~80대라 했다. 생초보라 소개하자, 다들 괜찮다, 스크린 치는 거 보고 파악했으니 나오기만 해라, 누가 누가 다 가르쳐줄 것이다 하며 정모 라운딩에 쭈뼛대는 나를  친구들 언니들과 다름없이 포근하게 초대했으나 막상 현장은 달랐다.

 정모 참가자가 대략 24명이라 치면 24명의 스코어가 낱낱이 공개되는 필드위의 전쟁이었다. 멤버도 총무가 무작위로 정했다. 친분 있는 여자 넷이 쳐도 머리가 쭈뼛 서는 퍼포먼스 대회를 남자애들 섞어서 하려니 오금이 저렸다.


아, 내가 미쳤지. 미쳤지. 미쳤지.


이미 스크린을 두세 번 치며 내 실력은 만천하에 들통난 상태였지만 필드는 또 다른 얘기였다.

다들 친한 사이어도 남자애들끼리는 내기까지 불사하며 한 타 한 타에 목숨을 걸고 경쟁을 하는 분위기였다. 멀리건을 쓰는 것도  허용하느냐 안 하느냐 따지기도 했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신중하게 치는 애들도 있었다.

80대와 90 초반을 달리는 보기플레이어 이상의 남자애들이 유독 그랬고 유리 멘털이거나 아직 100을 넘는 백돌이들은  그런 분위기를 몹시 힘들어했다. 남자들의 질투와 욕심의 민낯을 필드  위에서 낱낱이 목격할 수 있었다. 스코어 자존심으로 시작된 조롱과 열등감은 뒷담화와 골프동호회 자체의 문젯 거리로  비화되기도 했다. 스코어가  뭐라고!! 여자들 시샘은 저리 가라였다.


물론 여자애들도 욕심 많은 노력파들은 눈빛부터 달랐다. 필드 밖에선 말랑거리다가도 필드에 서면 프로 골퍼라도 되는 냥 전투 자세였다. 캐디도 공을 빼고 치라는 어려운 러프에  공이 박혀도 시간을 잡아먹으면서까지 꼭 그 자리에서  치는 친구들도 있었다. 마음이 싸했다. 여자들하고만 놀았지만 이런 부류의 여자들은 첨만나보았다. 이걸 어쩌나. 생초보과인 몇몇 여자애들만 같은 마음으로 발을 동동 구를 뿐이었다. 


 "감이야~소풍나왔다 생각하고 편히 쳐."

언니들 친구들이 늘 내게 해준 말이다.

많이 웃고 맛난 음식 나눠먹으며 즐겁게 치는 것이 골프라고 배운 나에겐,  그  비싼 돈을 내고 인상쓰고 신경쓰느라 푸른 자연 속에서 우정을 나누며 즐길 줄 모르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했다.


경기는 시작됐고 맘 속은 후회로 끓어올랐지만  나는 스코어 따위 상관없다는 태도를 견지하며 그 시간을 즐기려고 애썼다. 샷이 멋진 친구들에게 신나는 리액션을 해주고 (남녀 불문 멋지고 부러워서 진심으로 나이스와 굿샷을 외쳤다) 정작 나는 헛스윙을 하고 공을 옆으로 보내고 바로 앞에 굴려도 '웃어라 캔디'처럼 웃었다. 뭐 속상하다고 울 수도 없지 않은가.  또 한 가지 나는 생초보 왕초보에 낯도 가리고 체력도 좋지 않으니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못하는 이유야 100 가지도 댈 수  있는 게 골프라고 하는데 실제로 나는 더 댈 수도 있었다. 연습장에선 아무리 잘 맞고 유레카를 외쳐도  필드만 나가면 모든 게 무너지는데 어쩌란 말인가! 그냥 즐기는 수밖에 없었다. 연약한 멘탈과 급한 성격 탓에 일단 드라이버 티샷은 거의 안 맞았고 그나마 장기는 벙커샷과 하이브리드 세컨드샷이었다. 필요한 채는 드라이버, 하이브리드, 어프로치, 퍼터 네 가지뿐이었다. 뒤풀이 때 스코어도 공개하고 시상도 했는데, 내 이름은 늘 마지막에 있었다. 점수를 조작해도 다들 조금씩은 만지는 분위기니 올라갈 틈이 없었다.

성격상 그런 게임에 목숨을 걸고 분해하고 잠을 못 이루는 타입이 아니라서 나는 늘 뒤풀이가 즐거웠다. 필드  위의  자책과 속상함을 맥주 한잔에 날리고  기분 좋게 집으로 왔다. 

그까짓 스코어가  뭐라구...인생엔 중요한 것들이 많은데.


그러나 한 달에 한 번 있는 정모가 거듭될수록 나도 생각이 조금씩 달라져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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