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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이 Dec 27. 2021

어쨌든 명랑 골프!

업그레이드된 명랑 골프를 기대하며

나의 친구들 언니들과 하하호호 즐겁게 치는 골프 사교도 좋았지만 승부욕 있는 남녀 동창들과의 라운딩도 의미가 있었다.

예전에  유난히 공을 잘 치던 초등 동창 여자 친구에게 비결을 물었더니, 영업일 때문에 남자들과 주야장천 골프를 다녔더니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봐주지 않고 스코어 따박따박 세는 문화에 길들여지다 보니 정확하게 샷을 치는 방법을 터득했다고 했다. 남편과의 라운딩이나 부부동반 라운딩을 하는 친구들도 실력이 좋았다. 보통 남편들은 대놓고 와이프를 구박하고 스코어에 욕심을 부리니 와이프도 스트레스를 받아 열심히 연습하고 남편과 경쟁을 일삼으면서 자연히 실력이 일취월장할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남편은 욕심만큼 되지도 않고 멤버들도 윗사람들 모시고 치다 보니 재미가 없었는지 일찌감치 골프를 접은 상태였다.

(내가 골프를 못 치는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났다. 남편이 안치는 탓)


나는 멀리건도 자꾸 쓰고 여러 번 치니까 잘 치는 남녀 동창들과 팀이 꾸려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렇게 치면서도 큰 자극을 못 받은 게 사실이었다. 왜냐면, 나는 모든 일에 악착같은 승부 근성이 없는 데다가  잘하는 사람을 시샘하기보다 적극적으로 리스펙 하고 칭찬한다. 그런 친구들의 샷을 구경하고  함께 치는 것으로 좋았다. 시간이 가면 나도 저렇게 되겠지 하는 연한 기대도 있었던 것 같다. 또한 동창 골프보다 늘 편안하고 친숙한 친구들 팀, 언니들 팀과 어울려 다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았기에 팀에 대한 배고픔이 없었다. 막말로 힘들면  여기서 안쳐도 그만이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내게 생각 골프의 계기를 마련해준 고마운 친구들을 만난 것은 행운이라 생각한다.  필드에서 초보들을 맡아 레슨 조교라 불렸던 친구는 늘 웃음을 잃지 않고 차근차근 가르쳐주었다.  산으로 언덕 밑으로 굴러간 공도 찾아주느라  애썼다. 그때 그 친구한테 배운 퍼팅의 기본을 아직도 써먹고 있다.

만일 골프학 박사학위가 있다면  아마 그 친구가 따놓은 당상이라고 생각할 만큼 골프에 진심이더니 결국 싱글을 했다.


  대놓고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은 친구들도 있다. 학교 동아리 때부터 알고 지내던 동창 하나는 욕심이 많아 본인 공 잘 치기도 바쁜 앤데, 나와 같은 팀이 되면 30년 지기 동창인  내가 너무 못 치는 게 안타까워서 한 샷 한 샷 레슨을 자처했다.

"천천히 들어 올리고 사정없이 후려쳐라."

"반스윙만 해."

"연습장을 가면 필드라 생각하고 드라이버부터 차례로 채를 바꾸면서 쳐봐."

"일단 목표를 드라이버 120~130 내고 하이브리드나 아이언으로  100,  그담에 어프로치  따박따박만 쳐도 스코어가 90대는 돼."

잘 치는 날엔 칭찬하고 기뻐하다가도  내가 또다시 무너질 땐 애꿎은 프로 탓도 했다.

 "프로를 바꿔. 너한테 빨대 꽂은 거야."  까칠하기 이를 데 없이 팩트 폭행을 날렸다.

 또 어느 날은 도저히 못 보겠던지 "감이야. 너는 골프를 접는 게 어떻겠니." 하는 권유도 했다.

레슨은 하고 필드는 제법 나가는데 실력이 제자리인 게 너무 안타까웠나 보다.


정모에서 친해진 또 다른  동창애는 15년 전 싱글까지 치던 골프를 접고 자전거만 타는 애였다. 기회가 닿아 창고에 있던 골프채를 갖고 정모에 등장하기 시작한 건데 한 번도 연습 없이 정모만 나온다고 했다. 그러면서 100 언저리의 스코어에 대한 변명삼아 한다는 말이,

"그래도 매일 연습한다는 감이 너보다 내가 더 잘 친다. 너  연습하고 레슨 받는다는 거 사실이니"라고  놀려먹고 으스대는가 하면 한 번은 나와 같은 팀에서 18홀을 돌다가 진지하게 물은 적도 있다.

"감이야... 니 골프채를 팔아 자전거를 사서 자전거 타보는 게 어떻겠니. 내 생각엔 네가 타본 적 없다 해도 자전거가 더 쉬워 보인다."

어프로치를 사방팔방으로 보내던 나는 자전거를 권유하는 말에 주저앉아 까르르 웃었다. 다들 기다렸다는 듯 박장대소했다. 같은 마음이었나 보다. 쳇. 그 밖에도 지긋이 지켜보다 헤드업을 지적하며 몇  마디 해주거나 그립부터 스윙까지  꼼꼼하게 짚어주던  동창들도 있다.

그들은 나와 골프를 치며 나를 우쭈쭈 해주고 격려하는 친구들 언니들 팀에 대한 비난도 서슴지 않았다.

"감이 네가 그분들이 던지는 달콤한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니 그 모양인 거야. 그 팀에서 빠져나와 여기서 제대로 치기 시작하면 금방 늘 텐데..."

나를 깔볼 때마다 '니 친구들 팀에선 이 구력에 이 정도면 잘하는 거라고 칭찬 듣는다고, 너네가 뭘 아냐'라고 박박 우겼더니 들은 말이다.

갑자기, 친구들이 니들이 돌려 말하고 예쁘게 포장한 말들을 내가 못 알아들은 건 아닐까? 의구심도 생겼다.

동창들의 놀림,  팩트 폭격, 격려 등은 알게 모르게 골프에 대한  내 생각과 자세가 바뀌는 계기가 되고   시간이 갈수록 이제 어느 정도는 쳐야 그것도 매너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다 함께 즐기려면 실력도 갖추고 내 스코어를 조금씩 갱신하는  나와의 경쟁이 골프라는 운동인데 스스로와의 경쟁에서 참패한 건 아닌가 하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 것이다.


어쨌든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이제 나도 잘 치고 싶어.


골프는 생각을 많이 하는 운동이다.

어드레스, 에이밍, 그리고  백스윙을 할 때도 코킹은 잘 됐는지, 오른팔이  옆구리에 붙는 듯  내려오며 공을 향한 클럽의 각도는 어떻게  되는지, 공에 임팩을 가할 때 오른팔이 펴지며 채는  던져지는지, 그 순간 손목 릴리즈가  되는지 그리고 피니쉬는 제대로 하는지.

하지만 실제 공을 치는 시간은 십여 초에 불과해 백스윙 신경 쓰다 보면 벌써 공은 날아가고 없다.

티샷 때 티가 왠지 높거나 낮다는 생각, 애가 시험인데 지금 어떻게 볼까, 갑자기  기분 나빴던 일이  떠오르거나, 내가 차문은 잠갔나 등  행여라도 다른 생각이 끼어드는 찰나 그 샷은 망가져버린다.

너무나 예민하고 한시도 긴장과 집중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 운동. 장담할 수 없는 운동,  끊임없는 자기와의 경쟁을 하며 다른 사람들과 어우러져야 하는 운동. 그래서 또 매력적인 것이 골프다.


일단 친구의 조언을 듣고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프로를 바꿨다. 그간 바꾼 프로도 세 명인데 내 스윙이 완전히 잘못됐다는 것이다. 헉!! 그간 뭘한거지??싶었다. (나는 진정 그들의 호구였을까 하는 슬프고 비통한 마음도 잠시 들었다.)


오른팔을 못 펴고 온몸을 돌려 친 후에 몸이 뒤집어지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온몸에 용을 써서 치는 게 골프가 아닌데 내 모습이 그랬다. 백스윙 후 급하게 내려오는 것도 문제였다. 백스윙을 천천히 제대로 해서 오른팔을 펴고 채를 던지면 채가 지나가며 공이 맞는 게 원리인데 나는 공을 세게 후려칠 생각으로 모든 과정을 멋대로 해석하고  꼭 해야 하는 동작도 생략했다. 프로는 입에서 단내가 나게 많은 설명을 하면서 최선을 다해 나를 가르쳤다.

잘못 익힌 스윙과 그간 내가 가진 잘못된 생각들, 공만 세게 후려치려는 습관은 일 년이 넘은 것이라 좀처럼 쉽게 바뀌지가 않았다. 연습장에선 조금씩 바뀌는 듯하다가도 필드에 서면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예전 버릇대로 공을 치고 징징거리며 돌아왔다.

하루에 두 번씩 연습장에 가는 날도 있었다.

내 피나는? 노력을 프로도 모르는 바는 아니어서 많은 위로를 해주기도 했는데 어느 날은 이런 말도 해줬다.

"사실 감이님 몸으로 금방 배워 잘 치기가 쉽지 않아요. 마르고 키가 큰 데다 다리가 약간 안짱다리라 여러 가지 핸디캡이 많아요. 대신 근력이 없진 않으니 잘 배우면 드라이버가 160-180은 나갈 거예요."

(역시 골프가 안 느는 건 내 신체적 한계 때문이기도 하다.)


새로운 스윙 자세는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바뀌었다. 맨손으로, 우산으로, 막대기로 틈만 나면 연습했다. 신기한 건 조금만 바뀌었는데도 필드에서 공이 제법 잘 맞는 날이 많아졌다. 신이 나서 친김에 체력을 기르기 위해 근력 운동도 시작했다. 스쿼트를 매일 하면서 중량을 달기 시작해 15킬로까지 매고 스쿼트를 가볍게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물론 체질상 아무리 해도 근력이 잘 생기지 않는다. 내 친구들이나 지인들 중에는 운동이라곤 걷기밖에 안 하다가 등산 하루 빡세게 하면 그냥 바로 근육이 생기는 친구들도 있는데  확실히 이 친구들은 비거리가 길다 ㅠ) 

그리고 생각 골프를 하기 시작했다. 유튜브도 추천받아 열심히 보고 내게 해당하는 것들을 집중적으로 몇 번씩 보며 익히기 위해 노력했다. 백스윙 점검, 몸을 돌려 내려올 때 내 오른팔 점검, 채가 던져지나 점검. 무엇보다 공을 끝까지 보는 것도 꼼꼼히 체크했다.



1년 정도 골프 동호회에 발을 담그고 7번 정도의 정모에 참가하면서 팩트를 말하고 스코어를 중시하는 친구들 덕분에 생각부터 연습까지 내 골프 실력이 업그레이드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래도 많은 인원 새로운 멤버로 채워지는 정모는 전쟁 같아서 늘 부담이었다. 멤버 의존도가 높은 나는 정모 때마다 누구누구 붙여달라고 총무한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했고 총무는 웬만해선 요구를 들어주려 했지만  공평하지 않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해서 시간이 갈수록 나는 정모가 여러 가지로 못마땅해졌다. 또한 오픈 마인드로 동창들을 만났지만 결국 시간이 가면서  내 기준에 볼 때 도저히 용납이 어려운 언행을 하는 남녀 동창들은  걸러냈다.  나이에 좋은 사람들만 만나 웃기에도 하루가 짧은데, 굳이 이해도 안 가고 맞지 않는, 게다가  '30년 동안 알지도 못했는데 동창이란  이름으로 엮인 타인들'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일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곳에도 뜻이 맞고 생각이 맞는 좋은 친구들이 존재했으므로 정모 외에 성격 맞고 공 잘 치고 화기애애한 친구들로 자연스레 소모임들이 생겼다.

그간 못 치는 나와 팀을 만들어 꾸준히  쳐주고 격려해준  동창들, 또한 2년이 훌쩍 넘는 긴 시간 나를  늘 칭찬하며 묵묵히 지켜봐 준 친구들 언니들이 너무나 고맙다.

다들 그간 얼마나 참아준 걸까.(미안합니다. 앞으로도 조금 더 참아줘...)


동창 소모임들은 일 년에  차례 치는데 대략 1~2개월, 길면 6개월 이상 텀을 두고 필드에서 만난다. 그때마다 내 라운딩 실력이 점차 나아지는 것에 다들 기뻐해 주니 힘이 난다.

파4에서  투온 파5에서  쓰리온 파3에서 버디 찬스도 제법 갖고  파 버디할 때도 있으니

스스로도 보람되고 기쁜 일이다.

물론 아직도 들쭉날쭉하고 어머나!  하는  황당한 샷도 여전히 가끔 있다.   갤러리를 둔 티샷 위의 부끄러움 역시 아직도 남아있지만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휘둘러도 임팩트 좋은 샷이 나올 수 있도록 수많은 연습을 해야 하는 것이 나의 숙제다.


그리고 업그레이드된 진짜 명랑 골프는 22년 봄, 새로이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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