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눈앞에서 보고도 듣고도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이번 일이 그랬다.
조연출과 배우는 그래도 프로였으므로, 당장 엎드려 빌고 그 자리를 떠나고 싶었지만 아니라고 할아버지 신이 잘못 아신 거라고, 땀을 뻘뻘 흘리며 변명하고 잡아떼서 겨우 그 위기를 모면했다고 한다. 정말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그 위급한 상황을 밖에서 여과 없이 듣고 있던 담당 피디는 기가 막혀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이었고, 차라리 내가 방송국이라고 섭외를 했기를 바랐다고 했다.
그일 이후 담당 피디는 SBS임을 밝히고 그 박수무당을 만났다. 박수무당의 말인즉슨, 신이 내린 지 오래되지 않을수록 신기가 강한데, SBS에서 방문한 날 아침에 자기 애들 두 명이 난데없이 코피를 흘렸다는 것이다. 애들이 코피를 흘릴 때는 꼭 좋지 않은 일이 있었는데, 시험당하는 일은 가장 나쁜 일 중 하나라 그날 내내 신경을 곤두세우고 손님을 봤다고 한다.
그 인터뷰를 하는 중에도 그는 대단한 신기를 발휘했다. "지금 피디님 통장에 5천만 원이 들어왔어요."라는 말도 했는데 그것은 사실이었다. 은행에 신청한 5천만 원 대출금이 들어온 것이다. 정확히 그 시간에!
점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지어내기도 힘든 역술인과의 영화 같은 일화가 하나씩은 있는 것 같다. 그 박수무당 이야기는 점에 관한 방송을 두어 번 다루며 직접 듣고 본 중 최고여서 전화번호를 저장해뒀다가 그다음 해에 개인적으로 그를 찾아갔다.
20대 중반 청춘이었던 내게 역시 초미의 관심사는 결혼과 일이었다. 방송일은 나한테 잘 맞는건지 계속하는 게 좋을지, 그리고 연을 이어가고 싶은 남자가 두어명 있었는데 어느 사람이 좋은 인연일지 궁금했다. SBS도 맞추었던 박수무당 안의 그 할아버지 신이 내 짝을 정확하게 짚어주겠지 싶었다. 내 질문에 그는 한참을 고뇌하는 것처럼 보였다. 일 년이 지났을 뿐인데 신기가 다 떨어진 건가? 아니면 혹시 남편 자리가 없네.. 하는 잔인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가? 갑자기 너무 두려워져 나는 그의 대답을 듣기 전에 뛰쳐나가고 싶었다. 고민 고민하던 그가 힘들게 입을 열었다.
" 음...족두리가.. 족두리가보일락 말락 하는데... 글쎄. 자세히는 모르겠고. 남자는 원래 만나던 사람이 더 나은 것 같아. 그리고 일은 열심히 하는 게 좋겠다. 노는 것보다는 일해야 좋은 팔자야."
"그러면 내년 정도는 결혼한다는 얘기인가요?"
당시 우리 부모님은 나를 시집을 못보내 좌불안석이었고 남자는 딱히 없었지만 나 역시 결혼을 빨리 하고 싶었다. 다그치듯 물었지만 그는 같은 말만 반복했다. 정확한 신기로 제작진을 뒤집었던 신당동 박수무당은 힘들어 보였다. 그 이후로, 나는 한참동안 점집에 발길을 끊었다.
(그로부터 5년간 나는 남편을 만났다 헤어졌다가 선을 십수번 보다가 이별했던남편이 매달려 서른에 결혼했다...)
세상에 유명하다는 역술인들, 죽은 사람도 다 알아내고 속임수도 알아내고 심지어 통장에 돈이 입금되는 순간도 포착한 그들은적어도 나에겐 별 도움이 되질 못했다.
지인끼리 점집을 소개할 때 저마다 '끝내주게 잘 본다. 소름이 끼치게 맞더라 ' '너한테만 특별히! 알려주는 거다.'호들갑을 떨며 대단한 비밀 알려주듯 하지만 타인의 모든 걸 맞춘다고 내 것도 맞춘다는 보장이 없다.
세상 이치가 그렇듯이. 옆집 철수 1등 만든 과외 선생이라고 내 자식도 1등 만든다는 보장 없고 여느 탤런트들 예쁘게 만든 성형외과 의느님이 나를 그렇게 예쁘게 바꿔주는 건 불가능하다.
왜? 누구나 가지고 태어난 고유의 것들이 있고 그것은 남들과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부모라면 다들 같은 마음이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때때로 궁금하고 불안할 때가 종종 있기 마련이다. 큰 애 학창 시절, 주변 학부모들 몇 명이 아이의 적성이나 진로문제에 대해 점 보러 다니는 분들이 있었다. 부화뇌동하여 한두 번 가봤는데 이건 뭐, 어딜 가든 아이 사주가 서울대 의대는 따놓은 당상 격으로 나왔다. 기분이 업되고 날아갈 것 같긴 한데... 아이 하는 냥을 보면 찜찜하기가 짝이 없었다. 서울대는커녕 서울에 있는 대학만 가도 알렐루야~를 외쳐야 할 것 같이 공부를 안 했다.
너 같은 애가 무슨 대학을 가냐고 모진 말도 퍼부었지만 모의고사 점수가 잘나오니 마음은 살얼음판이어도 여전히 점괘를 믿고 싶었다.
하지만 '수능은 과학'이었고 내 마음 한켠의 불안감은 적중했다. '아이일에선 엄마가 점쟁이'라더니 내가 딱 그랬다. 결국 아이는 재수하면서 정신을 차렸고 자기가 원하는 학교에 갈 수 있었다.(*서울대 아님)
성당에서 만난 신문기자를 하던 언니는 공부 잘하는 큰아들이 어느 대학을 넣으면 붙을까 해서 답답한 나머지 용하다는 점집을 갔는데 그분이 ㅅ으로 시작하는 대학은 죄다 틀렸고 ㄱ으로 시작하는 북쪽에 있는 대학이 좋다고 했더란다. 성적도 좋고 해서 서울대는 안되고 고대는 가겠구나 했는데 절대 안 된다던 , 서울대 아닌 다른 ㅅ대학을 갔다.
초인간적인 힘에 의한 인간의 길흉화복을 운명이라 한다면 이 운명에 대해 궁금하고 미래를 알고자 하는 인간의 마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같다. 신화나 종교, 철학 사상까지 운명을 느끼고 받아들이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리스인들은 인간의 운명을 실을 잣는 클로토, 인간의 일생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라케시스, 그리고 생명의 실을 끊어버리는 아트로포스의 세 여신이 관장한다고 생각했다. 불교에서는 업을 뜻하는 카르마, 인과응보라 받아들이고 순응하는 방식으로 운명을 맞는다. 하지만 과학의 발전으로 이러한 운명은 체념하고 따르기보다는 극복하는 쪽으로 포커스가 바뀌어왔지만 그래도 여전히 인간의 삶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하다.
수없이 많은 역술인들을 만나고 직접 부딪혀보고, 혹시나 하며 미련을 놓지 못해 또 찾아다닌 부끄럽고 일천한 경험이지만 어느 누구도 나의 앞날을 맞추고 길을 보여주지 않았다. (단 충고와 조언을 주고 내가 그 조언을 받아들인 적은 있다.) 듣고 싶은 말이 있고 바라는 일이 있다면 그것을 이루도록 스스로 노력해야 했음에도 나는 운명이나 기도에 기대어 해결하려는 어리석은 행동을 해왔다.
그래서 이제 나는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다가올 내 운명이 궁금하다면 섣불리 누군가를 찾기 전에, 주어진 상황에서 나는 얼마나 최선을 다했고 깊이 생각했으며 기도하는 자세로 살았는지 먼저 되돌아보자. 내가 주인공인 내 인생을 남에게 묻기 전에 나를 사랑하고 열심히 살아내자. 좋을 때나 나쁠 때나 겸손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만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런 사람의 운이 어찌 나쁠 수가 있을까.
아니, 실은 남에게 묻기 전에 우리는 스스로 내 운명의 답을 어렴풋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단 확인받고 싶어 가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