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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이 Jan 27. 2022

우리는 각자 몇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을까?

'악녀에 대하여'를 읽고

아리요시 사와코의 '악녀에 대하여'라는 소설을 읽었다. 사업의 여왕 도미노코지 기미코는 어느 날 갑자기, 빨간 드레스를 입고 추락사한 채 발견된다. 어느 유명 작가가 그녀의 죽음이 자살인지 타살인지 수수께끼 같은 그녀의 삶에 대한 취재를 하고자 27명의 주변인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는 내용이다. 초등학교 동창부터 그녀가 만나 사귀었던 남자들, 보석감정사, 후원자, 디자이너, 변호사, 그녀의 집사, 그녀가 속했던 유명 클럽의 사람들, 방송국 피디, 엄마와 두 아들까지, 그들의 인터뷰를 보다가 나는 고개를 갸우뚱, 다시 앞사람의 인터뷰를 보곤 했다. 그리고 과연 한 사람의 얼굴은 몇 개일 수 있는가에 대해 흥미와 의문을 품게 되었다.  흔히 내가 아는 나, 남이 아는 나, 내가 모르는 나, 남이 모르는 나 가 있다고 하는데 이 책에서는 한 여자를 두고 27명의 인터뷰이가 각기 다른 말을 한다. 심지어 두 아들조차도 상반된 이야기를 하는 그녀는 과연 누구일까?  그녀의 정체를, 작가는 결국 27명의 인터뷰 글을 읽은 독자의 판단으로 남겨두었다.


"박꽃같이 하얀 얼굴, 낭랑하고 격식 차린 귀족의 말투"

"조용조용 작은 목소리, 양가의  규수 같은 태도"

"얼굴도 예쁘고 은은한 목소리의 하얀 꽃 같은 친구"

"순종적인 척하다가 뒤통수친 섬뜩한 여자"

"지독하고 악질적인 꽃뱀." 5천만 엔을 요구한 악당"

"착하고 불쌍한 새댁"

"순수한 소녀, 결백한 여자."

"마음이 아름답고 투명한 분."

"참하고 기품 있는 아가씨로 봤는데 해코지하는 악덕한 여자"

"저를 믿고 집안일을 맡겨준 천사 같은 사모님"

"특별한 몸을 가졌던 멋진 여자"

"입만 벌리면 거짓말이 술술 나오는 사기꾼"

"세상없는 우아함을 가장해 가짜 보석으로 등쳐먹은 사업가."

"깨끗하고 올바르게 산 아이."

"몇십 년을 이어온 첫사랑이자 내연녀."

"그런 여자가 내 어머니라니 창피해요. 제 부인과 저를 너무 괴롭혀서 어머니의 죽음엔 관심 없어요..."

"어머니는 멋지고 순수했고 사랑스러운 여자였어요."


27명의 인터뷰이들은 본인의 주관에 따라 그녀를 각각 이렇게나 다양하게 증언했다.

거의 꼬리가 아홉개인 구미호 수준이다.


그들의 모든 인터뷰를 종합해 그녀의 삶을 정리하면:

밑바닥의 삶에서 최고의 호사를 누리는 삶으로 변모한 스즈키 기미코는 마치 속세엔 관심 없는 청순가련한 얼굴과 우아한 말투로 나이와 태생의 비밀을 숨기고 자신을 신비스럽게 포장한다. 필요한 남자들을 유혹해 임신한 후 (정확한 아버지를 모르는지 아는지) 그들 모두에게 당신의 아이라고 속여 돈을 갈취한다. 누군가는 놀라서 그 책임을 벗어나기위해, 누군가는 너무 기쁘지만 결혼을 할 수 없는 처지라서 그녀에게 돈을 보낸다.

그녀는 또 몰락한 귀족 친구의 집에 찾아가 착하고 정중한 태도로 친구와 어머니를 속여 보석도 빼낸다. 그렇게 마련한 종잣돈으로 부동산에 투자해 부를 쌓고 이름을 바꾸고 친엄마를 양모로 둔갑시킨다. 어느 귀족의 자제인데 사정상 채소가게에 업둥이로 보내졌다며 눈물을 보인다. 그녀의 품위에 모두들 그녀의 말을 믿게 된다. 상류층만 드나드는 소사이어티 클럽과 스포츠 클럽에 가입해 동정심을 유발하고 예쁜 말과 우아한 행동으로 사람들을 미혹한다. 그녀의 겉치레에 취해 결국 그녀를 떠받드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휘황찬란한 보석으로  치장한 그녀는 결국 세상을 쥐고 흔든다.  방송에 나와 본인의 삶은 최선을 다해 사랑했고 아름다운 것을 추구했을 뿐이라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해맑은 얼굴로 조용하게 말한다. 작은 목소리는 주먹을 불끈 쥐고 소리 지르는  것보다 더 울림이 크다.

그녀를 믿었던 사람들, 호감을 가졌던 사람들은 그녀의 말이 진실이라고 생각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녀의 두 아들조차 전혀 다른 평가를 하는데 그녀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장남은 어머니의 죽음에 안도할 정도로 아들을 괴롭히고  며느리에게 가혹했던 나쁜 엄마로,  상대적으로 별 기대가 없던 차남은 그저 어머니가 사달라는 것 다 사주고 돈도 풍족하게 달라는 대로 주던 쿨하고 좋은 엄마로 기억한다.


사람이, 각자의 상황에서 맺어진 인연에 따라 이렇게 극과 극의 모습으로 다를 수가 있는지 매우 놀라웠고 경악스러웠다. 또한 우리가 누군가에 대해 이야기할 땐 아무리 상대방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려 해도 결국은 우리가 겪은 만큼의 좁은 주관에 의해 판단을 내리게 된다는  것도 깨달았다.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다를 수 있는지, 갑자기 떠오른 충격적인 사건이 있다. 98년부터 2005년까지 100여 명을 성폭행한 발바리 이중구라는 희대의 악마, 그가 잡혔을 때 나는 그의 끔찍한 범죄와 함께 가족과 이웃들의 반응 때문에 큰 충격을 받았었다. 가족들에게 그는 착하고 성실한 가장이었고 부인과 사이도 좋았으며 대학을 다니는 딸도 둔 그냥 평범한 사람이었고 이웃들에겐 말수 적고 예의 바른 조용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평범한 인간의 모습으로 하루를 보내다가 밤이 되면 새벽까지 흡혈귀처럼 혼자 사는 여자들의 원룸을 뒤지며 몹쓸 짓을 한 짐승이었던 사내라니. 무려 8년간을 가족과 이웃의 눈을 가리고 악행을 저지른 악마였으니 지금 이 순간에도 180도 다른 모습들로 인생을 채워가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가장 조심해야할 부류의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악녀 기미코에 대한 소설이나 연쇄 강간범 발바리처럼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른 얼굴을 갖고 있을 것이다.

가족 그룹과  사회적 그룹을 나눈다면  그 두 그룹에서의 온도차는 있을 것이라 단언한다.

가족은 가족이므로  여과 없는 언행을 많이 보고  들었을 테니까. 그럼에도 온도 차이는 있을지언정 책의 주인공처럼 이렇게 다양하고 다른 평가가 나올 수는 없을 것이다. (만에 하나 그렇다면 정말 가까이해선 안 되는 무서운 사람이겠지 싶다.)

우리는 우리에게 잘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단것은 삼키고 쓴 것은 뱉는 인간의 본능상 당연한 일이지만 그 사람의 과거나 남에게 보이는 전혀 다른 행동들을 간과해선 안된다. 지금은 나에게 잘하지만 어떤 특정한 상황이 되면 그 역시 나에게도 같은 발톱을 드러내게 될 것이므로.

많은 친구들이 있지만, 사귄 시간과 관계없이 특별한 감정을 갖고 만나는 친구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서로를 믿고 서로의 아픔을 드러내고 상의할 수 있다는 것. 내 아픔을 내보일 수 있는 사람들은 인간관계에 꾸밈이 없고 실은 이미 그것을 극복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만큼 자신에게 당당하고  공감능력과 배려심도 남다르다. 반대로 아무리 오랜 시간을 보아도 끝까지 속내를 터놓지 않고 겉보기에 아무렇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있다. 친구가 아니라 필요할 때 연락하는 '지인'으로 남게 된다.

 스쳐간 지인 중 하나는 '척'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특히 돈 많은 척, 실제로 시댁 재산이 어마어마하다고 알려지긴 했는데 내가 볼 땐 본인이나 본인 친정의 재산이 아니라 돌아서면 남이 되는 남편의 재산일 뿐인 것을 내 재산인양 떠벌리다니, 좀 딱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겉치장 요란하고 자랑은 잘하니 사람들은 잘 모으는데, 없는 사람은 깔보고 밥값 술값 내는 데는 그렇게 인색할 수가 없었다. 자랑을 말든지 밥값 술값을 잘 쓰든지, 둘 중의 하나는 했어야 했다.

또 아는 '척' 잘하는 사람도 있었다. 깊이 공부한 것을 강조하면서 앞에선 상냥한 얼굴을 하고 뒤에선 저 사람이,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단정했다. 문제는 죄다 뒷담화일 뿐,누구 칭찬 한마디 하는 건 들어본 적이 없다. 초창기 나에겐 잘했었는데, 남의 험담을 줄줄 듣다 보니 입방아에 오른 사람들이 이상해보이는 게 아니고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이상해보였다. 뿐만 아니라, 내 앞에선 웃고 있지만 내 얘기는 또 누구에게 어떻게 말하고 다닐까 생각하니 두려워지기까지 했다. 인간에 대한 공부는 오래 한 것 같은데 본인이 인간 되는 공부는 안 한 것 같았다.



이 소설의 인터뷰 중에서 기미코에 대한 표현이 공통적인 것이 있었다.  은은한 목소리와 조용조용한 태도, 격이 있는 분위기, 내가 갖지 못한 것들이라 매우 부러웠고 책을 읽으며 상반된 견해가 나오면 다시 앞사람의 인터뷰를 들여다본 것은 독자인 나도 모르게 이런 그녀가 나쁜 사람 일리 없다고 세뇌당한 것이었다. 겉치레와 말하는 솜씨는 첫인상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 증명된 순간이었다. 보통 이런 사람들은 어딜가나 주목을 받고 호감을 얻기도 하는데 이런 우아함이 무언가를 감추려는 포장인지, 스스로를 단련한 노력인지 감별해낼 줄 아는 센스가 필요할 것이다.


문득  나 자신이 매우 궁금해진다. 나는 몇 개의 얼굴을 가지고 살까?

예전의 초등 동창들부터 대학 동창들까지, 학부모들을 포함해 일하다가, 운동하다가 이래저래 소중한 인연을 맺은 사람들, 그들은 나에 대해 무엇을 말할까. 그들이 보는 나는 많이 다를까?


크게 다를 것도 없지 싶은 게 나는 어디서나 비슷한 평가를 받지 않을까 생각하니 그것도 조금 울적해진다.

속생각이 겉으로 그대로 드러나는 단순한 감이, 행동보다 말이 앞서는 감이, 뱉은 말 주워 담지 못해 쩔쩔매는 감이, 화도 잘 내고 웃기도 잘하는 감이, 사람보다 개와 고양이 더 좋아하는 감이... 쓰다 보니 자아비판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속과 겉이 다르고, 우아한 척하고, 포커페이스라 속을 알 수가 없고, 있는 척하면서 인색하기 짝이 없다는 이야기보다는 백 배 나은 것 같다.


너무 많은 얼굴을 가진다는 것은 그만큼 자기 본연의 얼굴에 자신감이 없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여러분은 몇 개의 얼굴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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