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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이 Jan 17. 2022

사주팔자를 믿으시나요? 6

방송 제작의 비화 여섯 번째 이야기

빠져나갈 수 없는 블랙홀에 던져진 듯, 정확히 똑같은 단계를 밟아 나는 이번엔 진짜로 김영삼 대통령 사주와 같은 분을 찾았다.

이번엔 그분의 댁으로 촬영을 갔다. 큰 부자는 아니지만 노년에 와이프와  부족함 없이 단란하게 사시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장성한 자식들도 자리를 잡아 큰 걱정거리가 없으셨다. 그는 마치 김영삼 대통령이 많은 고난과 고초를 겪은 후 대통령이 된 것과 같은  궤도로 크고 작은 풍파를 겪었지만 이제는 평화를  누리고  계셨다. 한 나라의 대통령은 되지 못했지만, 그분은 소중한 가족의 대통령으로, 아내와 자식의 존경을 받으며 나름 만족한 인생을 살고 계신 모습이었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처음엔 단순한 궁금증과 호기심으로 접근한 사주풀이에 대해 많은 생각을 가지게 됐다.  사주풀이를 '운명 방정식', '인생방정식'으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사주는 통계인 만큼 같은  년월일시라면 어느 정도의  바운더리, 즉  그 사람의 인생길이 고속도로냐 갓길이냐 혹은 오솔길인지 험난한 등반길인지는 어느 정도 정확히  오는 것 같다.

이 얘기는 반대로 (개개인의 환경과 특성을 고려하지 않으면) 전반적인 서술이 비슷한 탓에  '바넘 효과'일뿐이라고 단정 짓는 사람들도 많다. 바넘 효과는 보편적인 묘사들이 자신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인데 1940년대 말 심리학자 버트럼 포러가 성격 진단 실험을 통해 바넘 효과를 처음으로 증명한 까닭에 ‘포러 효과’라고도 한다. 포러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각각 성격 테스트를  한 후 똑같은 결과지를 주었더니 대부분의 학생들이 자신의 성격과 일치한다고 대답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미래가 불안하고 어떻게든 그 불안한 미래를 달래기 위해 역술인의 말을 들으면 어떤 이야기를 들어도 다 내 이야기라고 끼워 맞추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애매모호한 말은 어느 누구에게나 들어맞기 때문에 '인지 편향'(*사람들이 비논리적인 추론으로 잘못된 판단을 하는 것)을 갖게 된다고 한다. 이것도 맞는 말이다.

사주풀이를 지나치게 맹신하면 검사 결과에 따라 상대방을 쉽게 판단하거나 오해할 수 있고 자기 자신을 그에 따른 한계나 속에 가두는 부작용이 뒤따를 수 있다는 것은 공감을 한다. 또한 사람들의 심약한 마음을 이용해 옳지 않은 방법으로 잇속을 챙기는 상술 가득한 역술인들도 너무나 많다. 점집을 찾을 때는 유명하다고 소문난 곳만 찾을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역학을 공부하며 마음 수양을 하고 정진을 게을리하지 않는 분을 찾아가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누구나 스스로 자기 자신에 대해 완벽하게 알고 이해할 수는 없다. 사주 풀이도 단지 내 미래를 맞추느냐 못 맞추느냐의 일차원적인 생각은 접어두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사주 학적 관점으로 보고, '내가 적어도 어느 길 위에 있는지', '조심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인생 전반에 대한 조언으로 듣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특히 운이 약할 때나 나쁠 때 대비하는 차원으로 새긴다면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진정한 역술인은 결코 극단적인 언사를 하거나 운을 바꾸는 비법, 예를 들면 부적이나 굿을 권하는 일도 없다고 한다. 운명은 바꿀 수 없으나 미리 알고 조심해서 대처하는 것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재물운이 나쁘다는 해에 굳이 사업을 하거나 확장할 필요는 없을 것이고 유독 건강을 조심하라는데 술 마시고 담배 피울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쁘기만 한 사주, 좋기만 한 사주도 없는 법이니 사주상의 풍파나 고난에 무릎 꿇고 한탄만 하기보다 의지와 노력에 따라 이겨내겠다는 마음으로 접근하는 것이 사주풀이를 하는 분이나 듣는 분이 가져야 할 자세일 것이다.




방송을 통해 본격적으로 사주나 점에 관심을 가졌었으나 멀리하게 된 계기 역시 방송이었다.

이 프로그램이 끝나고 무당이 등장했던 또 다른 프로그램에서 나는 당시 매우 유명한 '신당동의 박수무당'을 섭외한 일이 있다. 그의 신기를 테스트해보기 위해 방송국이라고 하지 않고 일반인의 고민 상담으로 위장해 예약을 잡았다. 그때 마흔이 갓 넘은 조연출과 엑스트라 배우 협회에서 조연출의 어머니 역을 맡은 할머니 배우가 몰래카메라를 들고 그를 찾았다. 결혼해서 애가 둘이나 버젓이 있는 조연출은 그날 장가를 못 간 노총각이 되어 "언제쯤 혼인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으로 노모와 점집을 찾은 것으로 설정했다.

그 박수무당의 신기가  대단하다면 조연출이 유부남이라는 것, 거짓말이라는 걸 맞출 거라 생각했다. 그들을 들여보내고 담당 피디는 봉고차에 앉아  몰래카메라와 연결된  이어폰으로 현장 상황을 듣고 있었다.

나는 방송국 사무실에  머물러 있었는데 갑자기 당담피디에게 전화가 왔다.

"감이씨!!!! 혹시 SBS라고 섭외한 거야???!!" 그는 화가 나있었다.

"그럴 리가요? 당연히 일반인이 점 보러 가는 걸로 섭외한 거죠!! 근데 왜요?!."

말이 끝나기 전에 피디는 다급한 듯 전화를  끊었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무슨 일이길래 그런 전화를 했는지도 몹시 궁금했다. 저녁에 촬영을 마치고 전해 들은 이야기는 사실이라고는 믿기 힘든 기절초풍할 에피소드였다.

조연출은 "감이씨, 오늘 나 죽을 뻔했다."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은 듯 그는 떨고 있었다.

그 배우가 '우리 노총각 아들 때문에 제가 잠을 못 잡니다... 우리 아들 언제나 결혼할까 노심초사예요' 했더니, 갑자기 그 점쟁이가  감았던 눈을 번쩍 뜨더니

 '지금 거짓말하는 거 아니지요?' 하며 손으로 노트에 무언가를 쓰더란다. 노트엔 S... B... S!!!

이어서 하는 말이 "지금 할아버지 신이 대로(大怒)했다. 내 뒤에 도끼 칼 방망이 등 무기가 가득한 거 보이지. 나는 그러고 싶지 않은데 할아버지가 화가 나서 휘두르면 나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왜 거짓말을 하느냐"며 불같이 화를 냈다는 것이다.

조연출과 엑스트라 할머니는 SBS라는 글씨, 그리고 그 뒤의 즐비한 흉기들에 너무 놀라 잠시 숨을 멈췄다고 했다. 세상에, 정말 얼마나 무서웠을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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