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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이 Jan 14. 2022

사주팔자를 믿으시나요? 5

방송 제작의 비화 다섯 번째 이야기

모두들 입을 떠억 벌리고 아무 말을 못 했다.

제일 놀란 사람은 노숙자 그분이  아니었을까. 방송에는 안  나갔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며  역술인은  그 자리에서 그에게 도움이 될만한 여러 조언도 힘도 주었다고 한다. 걸인 사주라고  맞춘 그 역술인  역시 원래 명성이 있는 분이었지만 이 방송으로 입지가 더욱 탄탄해졌다.


이처럼 같은 사주를 보고도 정반대의 풀이가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 '관상'에 보면 관상가 내경(송강호)이 흐르는 강물을 보며 마지막에 한 말이 있다. '그냥 수양은 왕이 될 관상이었다. 난 사람의 얼굴을 봤을 뿐 시대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라고.

사주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역술인의 경험치와 끝없는 공부, 또 사주의 일간과 전체를 함께 보고 판단해야 하는데 형식적인 사주풀이에만 급급하거나 시대의 흐름을 보지 못한다면 전혀 맞지 않는 점괘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사주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함께 변하고 살아 움직인다. 사주 풀이를  보면 사주에 살(煞)이 없는 사람은 없다. 도화살을 예로 들어보자. 도화살은 예전엔 남녀 모두 성욕이 왕성하고 바람기가 다분해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아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연예인이나 유투버가 직업선호도 상위권에 랭크되는 이 시대에서는 이성의 주목을 끌 수 있고 연예인이나 유투버로 대성하기에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살이 되었다.  

그러나 좋고 나쁜 사주를 떠나 사주가 아무리 좋아도 감사와 노력이 없다면 허울뿐인  사주가 되고 최악의 사주라도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사람 앞에선 운명의 힘도 무릎을 꿇게 되지 않을까?



연출팀이 촬영에 매진하는 동안 나는 미리 짜둔 성안에 따라 섭외를 하고 또 다른 촬영을 위한  일을 진행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김영삼 대통령의 사주와 시까지 똑같은 사람을 찾는 일.

대통령과 같은 사주를 타고난 사람의 인생은 어떨까. 호기심과 흥미가 동하는 질문이다.


유명한 사람의 생년월일은 여기저기 노출이 되어 있다. 그땐 인터넷이 없어서 잡지와 책을 뒤지던 중 어떤 책에 나온 김영삼 대통령의 생년월일시를 갖고 일에 착수했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 당시 94년엔 '안녕하세요~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인데요~'라고 시작하면 범죄에 관련된 당사자만 빼고 경찰서, 검찰, 신문사까지 모든 세상이 프리패스였다. 방송국 프로그램의 힘이 막강했다.

  대통령과 생년월일이 같은 사람의 명단을 얻기 위해선 그 당시 '내무부'에 협조공문을 보내야 했다.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와  구성안을 첨부해 팩스로 보내고 이러이러한 사람을 찾고 있으니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우리 프로그램에 큰 호의를 보이며 함께 파이팅을 외쳐주던 공무원의 도움으로 대통령과 생년월일이 같은 100여 명의 명단과 연락처를 받을 수 있었다.

문제는 시(時)였기에 일일이 전화해서 기획의도를 설명하고, 죄송하지만 태어난 시(時)가 어떻게 되시냐고  물어야 했다. 수십 명이 넘어가도록 단 한 사람도 대통령과 같은 시가 나오지 않았다. 앵무새처럼 똑같은 말을 반복하다 보니 지쳐 쓰러질 지경이었다. 안쓰러운지 다음 편 방송 준비를 끝난 팀의 작가 언니가 도와주기도 했다.


 60~70통을 돌렸을까. 드디어 대통령 사주와 정확히 일치하는 분을 만날 수 있었다. 그분은 서울 **동에 살고 있는 분으로 사주가 대통령과 일치한다는 얘기에 적잖이 흥분하셨다. 다음 날, 바로 인터뷰 약속을 잡았고 점잖고 귀티 나 보이는 노신사 한 분이 나타났다. 작은 방에 조연출이 인터뷰 세팅을 끝내고 담당 피디가 등장해 인터뷰를 시작하려는데 그분이 망설이듯 말씀하셨다.

"그런데 말이요.. 내가 알기론 아무리 생각해도 대통령 생일은 모월 모시인데... 제대로 알아본 거 맞아요?  나랑 같은 생일이었음 내가 모를 리가 없지... 영광스러운 일인데..."


나는 그만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동안 뭘 한 거지? 다시 알아보니 그분 말씀이 맞았다. 잘못된 정보가 담긴 책 하나를 보고 진행한 나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크로스체크가 필요했는데, 막바지에 접어든 진행 일정상 긴장도 풀리고 타성이 젖어 '책에 나온 거니 맞겠지...' 하며 확신한 것이 참사를 불러온 것이다. 담당 피디는 그 노신사분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 후 나에겐 화내지 않고 한마디만 던졌다.

 "다시 찾아야겠네." (더 무서웠다...)

아... 다시... 그 지난한 과정을 또다시.

그 노신사와 담당 피디에게 그저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모기만 한 소리로 조아리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조연출은 세상 불쌍한 얼굴로 넋이 나간 나를 위로했다.

"아이고 고생 많았는데... 좀만 더 힘내요."


 만일 그분이 알려주시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잘못된 방송이 나갔더라면 정말 그 후폭풍을 어찌 감당했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땐 인터넷이 걸음마 단계라 지금 같은 돌팔매질은 안 맞았겠지만 어쨌든 프로그램의 명성이 무색해지고 나는 정말 그 대가를 어찌 치렀을까... 상상만 해도 무섭고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일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분은 더 큰 불행을 막아준 나의 귀인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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