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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이 Jan 13. 2022

사주팔자를 믿으시나요? 4

방송 제작의 비화 4

피디는 두 사람의 사주를 갖고 **동 사주 포차가 모인 거리를 걷다 제일 연배 많고 경험이 많은 역술인에게  궁합을 보기로 했다. 한참 두 남녀의 사주를 풀던 역술인은 '매우 좋은 사주이며 서로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천생연분의 궁합'이라고 소개했고 그 역술인의 얼굴은 가려진 채 방송에 나왔다.


모여대 앞에서 신기를 받아 잘 맞춘다고  유명세를 타던  ***도사는 댕기 머리를 하고 흰 한복을 입고  큰 눈을 깜빡이며 말한다.


 "이 두 분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지 않습니까." 첫새벽에 졸린 눈을 비비며 연출팀이 찍어온 비디오를 보며 프리뷰를 하던 나, 잠이 깨며 소름이 쫘악 온몸을 훑었다. 스타 역술인의 탄생 순간이었다.

방송이 나간 직후 타 방송국의 고위직부터 유명한 연예인들까지도 제작팀을 통해 이 도사를 찾는 문의가 폭주했다. 그리고 며칠 후 이미 일 년 치 예약이 다 찼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도사는 담당 피디를 은인으로 모시고 이후에도 아름다운 인연을 만들어간 것으로 안다.


평택에서 신점으로 유명한 평택 할머니도 같은 의견이었다. 시골 어느 거리에서나 마주칠 만한 수더분한 인상의 평택 할머니는 작은방에서 벽에 기대앉아 점을 보았다. 두 사람의 사주를 내밀자, 말이 없더니 팔을 들어 사선으로 내리는 동작을 했을 뿐이다. 그 의미를 묻는 피디에게 고개를 저으며 딱 한마디  던졌다. "죽었어."


이 할머니는 이미 평택에서 입소문이 날 대로 난 분이어서 따로 전화번호도 없고 섭외도 못했다. 연출팀은 무조건 평택 그 마을로 가서 주민들에게 평택 할머니를 수소문했더니 어렵지 않게 만났다는 후일담을 전해 들었다. 방송이 나간 후 평택 할머니의 전화번호는 (본인의 부탁으로) 비밀로 했지만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평택으로 몰려가 알음알음 할머니를 찾아냈고 이후 병원에 입원하고 말았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다. 프로그램의 파장과 점에 의지해 불안한 미래를 알아보려는  나약한 사람들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된 슬픈 에피소드였다.




여전히 정신없던 어느 날, 그것이 알고 싶다 사무실로 행색이 초라하기 그지없는 남자분이 찾아오셨다. 담당 피디와 약속을 했다고 했다. 알고 보니 연출팀이 직접 서울역을 찾아 섭외했던 사연이 있는 노숙자 분이었다. 한 때는 자기 사업도 했던 분이지만 사업이 망하고 빚도 못 갚게 되자 부인과는 이혼하고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노숙까지 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 정도 인생의 롤러코스터가 있다면 사주팔자에는 나오지 않을까 싶었다. 일단 우리는 그를 번듯하게 꾸며주기로 했다. 그분은 목욕을 하고 때도 밀고 미용실에서 머리도 다듬고 화장도 했다. 방송국 의상실에서 제일 좋은 옷을 대여해 입히니 처음의 그 모습은 온 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 검정 사각의 007 가방까지 들자 그는 마치  성공한 사업가 같았다. 본인 스스로도 과거의 모습이 생각났는지 거울을  보며 감회에 젖어있는 듯 보였다.

 노숙자에서 멋진 사업가의 모습으로 변신한 그는 연출팀과 함께  사주팔자를 보러 출동했다.


용하다는 역술인들을 찾아 그가 직접 사주를 보았는데 하나같이 말년운이 좋다는 해석뿐이었다. 외모를 보고 설마 해서 걸인 사주로 나온 점괘를 돌려 말한 건지, 경험치가 낮아 그의 사주가 그렇게 풀렸는지는 알 수 없다. 점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역술인의 대부분은  의뢰인의 외모 표정 걸음걸이 하나로도  심리상담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를테면 40~50대의 주부가 근심 어린 표정으로 점집을 찾을 때는  십중팔구  남편의 바람이나 사업 문제  아니면 아이들의 학업성적으로 좁혀 봐도 무방하다는 식이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의 점괘는 그렇게 나온다고 했다. 그 말이 전혀 틀린 말 같지  않았다.


 그렇게 여러 명의 역술인을 만나던 중  단 한 사람, 서** 역술인은  그의 사주를 오랫동안 응시하다 말문을 열었다.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담당 피디가 더 정확한 해설을 요구하자 그 역술인은  어렵게 내뱉었다.  "이 사람은 걸인이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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