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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이 Jan 12. 2022

사주팔자를 믿으시나요? 3

방송제작의 비화 세 번째 이야기

세상을 등진  20대 남녀의 사주를 알아낸다는 것은 그 부모님을 통해야만 하는 일이다. 특히 시를 알아낼 방법은 부모님 이외는 없다. 하지만 자식을 먼저 보낸,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부모님께 어떻게 전화를 해서 부탁을 할 수 있을까. 애꿎은 신문 기사만 수십 번  읽었다.

신문이 너덜너덜해지도록 보고 또 봐도 도무지 방법이 떠오르질 않았다. 다른 팀 보조작가 언니들, 메인작가 언니들, 조연출과도 상의했다.  그 사람들이라고 뾰족한 수가 있을 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각자의 방송 진행 준비로 바빠서 진지하게 남의 것을 생각해줄 여유도 없었다. 조연출은 능력 있는 만큼 성격 급하고 욕심 많은 피디를 따라 아침부터 밤까지 촬영 다니느라고 핼쑥해진 지 오래였다. 태어나서 그렇게 막막해본 적이 없었다. 세상에 나 혼자였다. 나 혼자 생각해서 나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에 목이 메었다. 밥을 먹어도 화장실을 가도 ' 이 일을 어찌 풀어가야 하나'  생각뿐이었다. 일에 치여 항상 잠이 부족하던 나는 기면증 환자처럼 아무 곳에서나 고개를 처박고 졸기 일쑤였는데 잠도 잘 못 잤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머리를 쥐어뜯으며 어떤 방법이 있을까만 생각했다. 나중엔 가짜 생년월일시를 적어낼까 그런 생각까지 했다. 빨리 알아내야 그 두 사람 사주를 갖고 점 보러 간다는 피디의 다그침에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본 책에서 억울하게 죽은 사람

위령제를 절에 부탁해서 올리면 좋다는 글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

지금은 기억이 정확히 나진 않지만  신문기사에 따르면  사고 장소는 충청도 어디였다.  

먼저 그 사건을 취재한 기자에게 전화를 해서 그 두 젊은 남녀의 대략적인 집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그들은 같은 동네에 살았으므로 근처의 절을 수소문해 사주를 알면 죽은 두 사람의 위령제를 지내줄 수 있냐고 물었다. 절에선 가능하다고 해서 얼마간의 돈을 송금하기로 하고 심호흡을 수십 번은 한 뒤 그 두 남녀의 집에 차례로 전화를 했다. 20대의 나,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기에  철도 없었고 어리석었다. 화를 내면 어쩌나 그냥 전화를 끊어버리면 어쩌나 오로지 그 걱정에  덜덜 떨면서 나는 거짓말을 했다.

그분들께 여기 무슨무슨 절인데, 두 분의 영혼이 안타까워 위령제를 지내드릴 테니 년월일시를 달라고 부탁했다. 자식을 잃은 부모는 이미 모든 일에 초연하고 담담했다. 그분들은 바로 대답해주셨다. 심지어 여자 쪽 어머니는 고맙다는 말씀도 하셨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두  남녀의 사주를  얻고,  절에 얼마간의 송금을 하고 위령제를 지내 달라고 부탁했다.  방송을 위해, 두 남녀의 넋을 기리기 위해 위령제를 부탁한 것은 그땐 최선의 길이라

생각하고 스스로 뿌듯하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또한  나 역시 장성한 자식이 둘이나 있는 입장에서 돌이켜보기엔 마음이 아픈 일이다. 시청자들을 몰입하게 만드는 방송은 가끔 그렇게 잔인한 수단이 동원되곤 한다.


만일 그 두 남녀가 막바지에  마음을 고쳐먹고살았더라면, 지금 나와 비슷한 연배일 것이다. 사랑을 이루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쩔 수 없는 그 사람들의 숙명이 있었겠지 싶으면서도 덧없는 상상을 해본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그렇게 얻어진 두 남녀의 사주를 갖고 연출팀은 유명하다는 점집부터 거리의 점집까지 찾아다니며 분석을 의뢰했다. 그러나,  같은 사주를 보고도 풀이는 천양지차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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