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을 다니는 사람이 점집을 어떻게 다닐 수가 있냐고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팔순이 넘으신 지금까지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성당 미사를 빼놓지 않는 친정 엄마는 예전 나의 그런 물음에 '사주는 점이 아니라 철학이기 때문에 괜찮다'며 점집을 드나들곤 하셨다. 상황에 따라 '나 편한 대로' 생각하는 엄마의 태도는 우리 네 남매가 철두철미한 아빠 때문에 힘들어할 때 콧구멍에 바람을 넣어 심호흡을 하는 피난처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소령과 7남매의 모습은 낯설거나 놀랍지 않다)
나 역시 그런 엄마의 성향을 반은 닮아서 취재차 가서 굳이 내놓지 않아도 될 내 사주를 내놓는 일에 망설임이 없었다. '엄마가 괜찮다고 했어.' 이 말은 하느님도 그러라고 한 말과 동일시되었다.
한편으론,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다하지 않는 내 성격에 이 유명한 사람들이 굳이 시간 들여 사주를 봐준다는데 거절하면 후회막심일 것 같았다. 내 사주는 내가 제대로 본 적은 없고 엄마가 간헐적으로 보고 오셔선 궁금증에 대한 구체적인 답은 없이 뭉뚱그려서 "좋단다. 아주 잘 산단다.." 하는 진짠지 거짓말인지 모를 말씀만 하셔서 최소한 나쁘진 않겠지... 하는 믿음은 있었기에 덥석 내놓은 것도 있었다. 담당 피디 역시 사주 보는 일을 매우 즐겼기에 역술인을 만나러 다니기엔 최고의 팀웍을 이뤘다. 여기서 들은 상대방에 대한 이야기는 '무덤까지 발설 금지'라는 조약도 달았다.
당시 24세, 꽃다운 나이였던 내 관심사는 자나 깨나 '연애와 결혼' 뿐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남자친구가 바글바글 했던 5살 위의 대학생 언니를 보면서 나는 막연히 대학만 들어가면 남자가 끊이질 않고 저렇게 인형을 선물받나 보다 생각했었다. 비쩍 마른 데다 두꺼운 안경을 쓰고 집과 학교만 오가던 나에게 언니의 화려한 대학 생활과 연애는 핑크빛 꿈을 심어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까만 피아노 위에 언니가 남친들로부터 받은 인형선물이 하나둘씩 늘더니 거의 산처럼 쌓여 새 인형이 올 때마다 옛날 인형들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걸 보는 것은 반드시 대학에 들어가야만 하는 이유가 됐다.
그런데 나는 대학 1학년을 앞둔 미팅자리에서 만난 첫사랑과 6개월만에 헤어지고나머지 시간은 그를 그리워하는 것으로 대학 4년을 보냈다.선물이라면 그 애와 주고받은 이십 여통의 편지와 학보들??(너무 풋풋한 추억이라 지금도 갖고 있다)
이렇게 초라한 연애 성적으로 보아 연애 사주에 무슨 마가 끼었거나고독수가 있는 게 분명하다고 확신했다.( 첫사랑이후론 대학 졸업때까지 두 번 이상 만나볼 맘이 드는 남자가 진심 단 한 명도 없었다. 지금 돌아봐도 한심하기 짝이 없다 ㅠㅠ)
사주(四柱)는 생년월일시를 '간지'(干支)로 계산하여 길흉화복을 보는 것이다. 년월일시(年月日時)가 그 사람의 기둥이 되는 사주, 각각의 간지 두 글자씩 모두 여덟 자로 나타냄으로 팔자라고 한다. 사주는 간지로 나타내는데 간은 열 가지이므로 십간이라 하고 사주의 윗글자에 왔으니 천간이라 한다. 지는 12가지이므로 십이지, 또 사주의 아랫칸에 쓰이니 지지하고 한다. 천간은 갑을병정 무기 경신 임계(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의 10가지, 지지는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의 12가지다. 이는 또 음양과 오행으로 나뉘고 방위와 계절을 나타낸다. 천간과 지지기 처음 만나는 갑자부터 계해까지 육십갑자가 되는데 사주는 육갑으로 표현된다. (*이상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참조)
이런 복잡 난해한 도식에 따라 쫙 펼쳐진 내 사주팔자를 보며 과연 무슨 덕담을 들을지 기대로 가득 차 마른침을 꼴깍 삼키곤 했다. 복권 당첨, 꽃가마 태워줄 왕자님 등장 등 감동적이고 극적인 일들이 내 인생을 덮칠 거라는 점괘를 꿈꿨지만... 아쉽게도 기억에 남는 말은 '초년운 좋았고~ 결혼은 최대한 늦게!'란 말뿐. 간헐적으로 연락을 주고 받는 남자들 중 결혼 상대는 없는 모양이었다.(이 때 남편과는 아는 오빠로 만나던 사이)
이상한 건 사주를 푸는 역술인보다 신 내린 무당이 내 사주 보기를 더 힘들어했다. 지금까지도 혹시 내가 가톨릭 신자이기 때문일까 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어쨌든 담당 피디와 나는 각자의 사주를 넣으며 수십 명의 역술인을 만나며 의외로 감이 좋지 않은 역술인은 또 걸렀다.유명세가 있다고 다 진짜는 아니었다. 진짜 가짜의 구분은 잘 보고 못 보고의 차이도 있지만 왠지 진실하기보다는 의뢰인을 떠보고 상황에 따라 뭔가 지어낸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어떤 내용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해야 할까'에 대한 수많은 회의도 이어졌다. 조연출과 나의 귀가 시간은 거의 한밤중이거나 심지어 새벽 한두 시 일 때도 자주 있었다. 서울역 노숙자의 사주는 과연 노숙자라고 나올 것인지, 대통령이라는 대운을 잡은 김영삼 대통령과 시까지 같은 사람들은 어찌 사는지~ 브레인스토밍 중에 많은아이디어가 나왔다.
그러던 어느 날, 담당 피디가 신문 기사를 건네며 "이 두 사람 생년월일시 알아와!가능한한 빨리!." 라는 주문을 했다.
사회면 몇 줄짜리 기사였다. 젊은 두 남녀가 이룰 수 없는 사랑에 아파하다가 두 명 다 저수지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는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