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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이 Jan 10. 2022

사주 팔자를 믿으시나요?1

방송 제작의 비화 첫번째 이야기

#1  피디가 점쟁이에게 무작정 두 남녀의 사주를 들이민다.

"이 두 사람 궁합은 어떻습니까."

생년월일시를 분석한 점쟁이가 말한다.

"천생연분이네. 잘 살 거야."


#2  같은 사주를 들고 또 다른 점쟁이를 찾은 피디, 같은 질문을 한다.

"이 세상 사람의 사주가 아닌데요. 두  사람은 살아있지 않아요....."


#3  평택에서 최고라는 할머니 점쟁이를 수소문 끝에 찾아가  사주를 들이민다.

추운 겨울 두툼한 한복 털조끼를 입고 벽에 기댄 할머니는 대답 대신 위에서 아래로 팔을 휘젓는다.

"무슨 말씀이시냐"는 피디에게 할머니가 대답한다.

"죽었어... "


#4  서울역에서 노숙자를 섭외해 그를 목욕시키고 미장원에서 머리를 다듬고 화장을 시키고  양복을 사서 근사하게 변신시킨 후 그의 사주를 보러 갔다.

사주엔 과연 그가 말년에 노숙자가 될 것이라고 나와 있을까?


#5  당시 대통령이었던 김영삼 대통령의 사주와  같은 사람은 과연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는  대통령은 아니더라도 대통령 못지않게 잘 살고 있을까?


시청자들을 열광시켰던 90년대 중반 SBS 신년특집 '그것이 알고 싶다' 사주 프로그램의  인상적인  몇 가지 장면이다. 그날 시청률은 분당 33프로까지 치솟았고 방송 당일부터 역술인들 번호를 묻는 시청자들의 전화 폭주로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티브이를 보는 입장에서는 역술인들의 전화번호 외엔 관심이 없지만, 조금 더 생각을 확장시켜보면 남녀의 사주는 누구의 사주인지, 어떤 경로로 연월일시를 알 수 있었는지, 노숙자의 섭외 과정, 대통령과 시까지 같은 사람을 찾아낸 과정도 궁금할 것이다.

이 프로그램이 내가  방송국에 들어와 보조 작가로 참여한 첫 작품이었고 정말 살과 뼈를 갈아 넣어 일한 기억이 생생해서 언젠가 이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그것이 알고 싶다의 제작팀은 5팀, 피디 조연출 보조작가가 한 팀이고 메인작가가 3명이었다. 60분짜리 프로그램 하나가 완성되는 데까지 5주의 시간이 필요한데 워낙 심층취재와 회의가 많아 그 시간도 빠듯하다.

아이템을 정하는 회의만 수 차례, 이 프로그램은 제보도 워낙 많은데 그중의 반은 본인이 억울하니 이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구구절절한 사연이었다. 가끔은 제보자를 만나기도 하는데 막상 만나면 편지 내용과는 달리 방송으로 내보내기엔 일방적인 사연이고 공공의 이익에 합하지 않아 보통은 방송의 소재가 되지 못했다.


방송 날짜에 맞춰 5~6주 전에 아이템이 정해지면 보조작가와 조연출의 고난의 시간도 함께 시작이다.

아이템을 '사주'로 정하고 내가 가장 먼저 할 일은 '대한민국의 유명한 역술인 다 모으기'였다. 막막한 일이었다. 프로그램의 품격과 시청률 두 마리를 다 잡는 소재와 내용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제작진의 목표였으므로 아이템을 잡고 누구를 섭외하느냐 어떤 내용으로 채워가느냐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고 그것의 반은 내 책임이었다. 일단 역술인은 입소문이란 데 착안했다. 점에 관심 많은 사람들은 수첩의 반을 그들의 전화번호로 빼곡히 채우기도 한다. 우리 엄마를 시작으로 엄마의 친구들이 신봉하는 점집 번호를 수집한다. 방송국 사람들, 친분을 맺은 작가 언니들, 피디, 기자들에게도 유명한 곳, 잘 보는 곳을 알아다 달라고 부탁한다. 피디와 조연출, 메인 작가언니들도 가끔씩 정보를 주었다. 그리고 하루의 대부분을 방송국 자료 조사실에 틀어 박혀서 그곳의 여성잡지 시사잡지 신문을 일일이 다 뒤진다. 신년 초면 모든 여성지, 시사주간지, 신문에 역술인들이 등장했다. 그때는 인터넷 검색을 할 수 없던, 30여년 전이었다. 정말 원시적이고 힘든 방법으로 자료 조사를 해야만 하던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었다. 일일이 자료를 카피하고 신문, 주간지, 여성지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역술인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전화번호를 챙긴다. 그들은 대부분 친절했고 어떤 기자는 덤으로 또다른 역술인들의 정보를 넘겨주었다. 유명한 분이라는데 시간상 취재는 못했지만 SBS에서 한번 해보라며.

그렇게 모은 역술인, 무당, 관상가의 번호가 100여 개. 100여 명을 모두 다  만날 수는 없으니 또다시 수차례 회의를 통해 이 점집을 추천한 이유와 사례를 일일이 판단해 추렸다. 약 50여 명이었다.




 그리고 매일 하루에 몇 명씩, 담당 피디와 수십여 명에 가까운 역술가와 무당, 관상가까지 만나고 다녔다. 예약 잡기만도 하늘에 별따기인 대부분의 역술인들은 방송국 사람들을 위해 거의 아무 시간이나 잡아주었다.

그들을 만나며 내 사주를 까보인 건 힘든 일 후의 보너스 같은 느낌이었다. 처음엔 눈빛만 봐도 내 속을 빤히 다 들여다볼 것 같은 역술인들과 심지어 잡귀가 들었다는 무당, 재벌들의 혼사 때마다 부탁을 받고 상대방의 관상을 본다는 유명한 관상가까지 만나는 것은 조금 긴장이 되는 일이었다. 게다가 나는 가톨릭을 3대째 믿는 집 안의 '미카엘라'(가톨릭 신자의 세례명)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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