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이 Feb 23. 2022

엄마 손은 약손

그 말은 과학이다.

3주 동안 집을 비웠다가 돌아왔다. 집 안은 곳곳이 엉망이고 무엇보다 내 손이 떠났던 우리 쿠키와 크림이의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가족 모두가 없던 일주일 정도는 친정 가족들이 우리 집에 온기를 채워주었고 그 후엔 남편과 딸이  집에 있어서 사실 나는 쿠키 앤 크림이에 대한 걱정을 전~혀 하지 않았다.

집 안이 어질러진 거야 어차피 자가격리를 하며 치우면 되니 별 일이 아닌데, 생기와 윤기가 2프로 모자라 보이는 털북숭이 두 마리를 보니 가슴이 먹먹했다. 어서 빨리 녀석들에게 예전의 활기와 웃음을 되찾아주고 싶었다.


마중나온  남편 차를 타고 오면서 집이 가까워올수록 가슴이 뛰었다. 크림이야 내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큰 신경을 안 썼을 테고 쿠키는? 쿠키는 어떨까. 어떤 반응일까, 10년간 단 한 번도 이리 오래 떨어져 있어 본 적은 없었는데.

때때로 언니 엄마와 카톡으로 전화를 하면 쿠키가 힘이 없고 말랐다고 걱정을 듣긴 했다. 하지만 남편에게 물어보면 '무슨 소리냐'며 '내가 얼마나 잘해주는데... 그제도 산책을 했고 어제도 했고 오늘도 할 거야' 라며 즐겁게 잘 지낸다고 했던 것이다.


현관문 비번을 급히 누르며 집에 들어갔더니 쿠키가 현관 앞에 이미 나와 있다.

예전에  며칠씩 여행을 다녀와 언니네 집에서 돌봐주던 쿠키를 찾으러 가면, 방방 뜨면서 엄청 짖어대곤 했던 쿠키.

"뭐야!! 어디 갔다 이제 온 거야!!!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나 화났어, 집에 안 갈 거야!!"

그런 말을 하는 것 같다고 언니랑 나는 한참을 웃곤 했는데, 이번엔 쿠키가 꼬리를 흔들며 반기긴하지만 조금은 조심스럽다.  까맣고 동그란 눈으로 나를 지그시 바라보면서 오랫동안 냄새를 맡는다.

오랜 시간을 떠났던 엄마가 진짜 맞는지, 기다리다 기다리다 체념한 얼굴.

체념을 하고 마음 정리가 되면 그 사람을 보아도 슬프기만 할 뿐 막 반갑지 않듯이,  그런 느낌을 받았다.

나는 쿠키를 껴안고 뽀뽀를 해주었다.  

"우리애기 잘 있었어?!" 쿠키를 안았더니 앙상하게 말라있다. 얼른 몸무게 체크를 해보니 6킬로에서 조금 넘기도 했던 쿠키의 몸무게가 5.8로 줄어있었다. 이렇게 조그마한 아이에게 200~300그램도 큰 것일 터였다. 윤기를 잃은 털 안으로 여기저기 뼈가 잡히고  눈곱은 잔뜩 끼어있고, 그리고 무엇보다 귓속 상태가 심각했다.

귀염증이 심해 주사를 세 대나맞았던 쿠키

3주 전 해외로 나가기 전에 쿠키 귀의 염증이 심해 주사를 맞고 먹는 약과 귀 청소제를 처방받아 왔었다. 열흘 간 약을 먹어야 하는데 6일 정도만 먹이고   온 가족이 미국을 가야 했다. 연세 많으신 엄마에게 이런 것까지 부탁할 수는 없어서 일주일 후, 먼저 한국으로 오는 남편에게 쿠키 귀 청소 시범을 보이며 산책과 더불어 귀 청소를 꼭 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약도 먹여달라고 했다. 무슨 말만 하면 '알았어...'라는 말을 자동반사처럼 뱉는 남편을 믿은 내가 바보지. 또 속았다.

중간중간 '귀는 어때' 물어보면  "귀를 까 보니 괜찮은 것 같던데.."라고 희미하게 대답을 했다. 자신감 없는 목소리가 불길했지만 그냥 믿고 싶었다. 그리고 돌아오기 전날 딸아이가 쿠키 안부를 묻는 내게 사실을 귀띔해주었다.

"아빠가, 쿠키 귀에 약 넣는 게 무서워서 못하겠다고 나보고 하라 했는데 나도 몰라서 안 했어."


(사실 그럴 줄 알았다.)


쿠키 귓속은 더 상태가 나빠져 있었다. 짐 풀기는 뒷전으로 하고 쿠키 귀부터 살폈다. 안이 빨갛고 부은걸 보니 맘이 찢어졌다. 달래가며 약을 넣고  알약도 쿠키간식에 싸서 억지로  먹였다.

남편과 딸이 원망스러웠다. 특히 남편은  쿠키사랑이 지대한 사람인줄 알았는데 어쩜 이리 무신경할까. 무슨 말에도 '알았어. 오케이.걱정마. 물론이지' 같은 듣기좋은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예스맨인 남편은 막상 행동력은 제로에 가깝다.  '아니, 알았다더니 아직 안했어? 그러면 앗 까먹었어. 지금할게'  직장일은 완벽을 추구하지만 집안일엔 말만 던져놓고 뒷전이다. 24년을 살아도 자꾸 놀란다. 물론 일하랴 밥하랴 청소하랴 쿠키 산책에 목욕까지 손 하나 까딱하지 않은일을 겸하느라 힘들었을 줄은 알지만 말못하는 쿠키에게 세심한 신경을 써주지 않은 건...그래, 믿었던 내 잘못이다. 내탓이요. 내탓이다.




지난 2주는 영국에서 아들과 보냈다. 작년에 혼자 영국에 간 아들이 지내는 기숙사와 학교, 식사, 공부 등이 궁금했다.  사진으로 보고 기숙사를 택했는데 역시 사진만 그럴듯한 1인용 기숙사였다.  게다가 한국에서 비교적 방정리를 잘하는편이라 딸보다 더 깔끔한 아이로 알고 있던 아들에 대한 기대는 기숙사 방 '꼬락서니'를 보고 유리컵 깨지듯 산산조각이 났다. 경악스럽다는 표현 외엔 할 말이 다. 한국 갔다가 미국 갔다 하느라 두 달을 비우긴 했지만 화장실 상태는 공중변소 수준으로 청소 한 번을 안 한 듯 여기저기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샤워 커튼이고 바닥이고 세면대 변기까지, 보기만 해도 병이 걸릴 것 같았다. 책상도 바닥도 엉망진창이었다.

아직도 친정엄마는 언니 집이나 우리집에 오시면, 50이 훌쩍 넘은 두 딸들 부엌 냉장고부터 열어 청소해 주신다. 아들방을 보니 친정 엄마 맘이 이렇구나,

바로 공감이 됐다.

 나도 그냥 말문을 닫은 채 아이 손을 잡고 기숙사 앞의 테스코(슈퍼 이름)에 가서 청소도구와 세제, 고무장갑을 사서 마스크를 쓴 채 청소를 했다. 청소를 하며 뭐 매일 살 때야 이 정도는 아니었겠지만 어쨌든 여길 혼자 돌아왔다면 얘는 대체 어떻게 살았을까 생각하니 눈물이 다 났다.

내가 따라오길 백 번 잘한 것 같았다. 그다음은 몰에 가서 청소기를 샀다. 아이방이 있는 2에서 쓰는 공용 청소기가 있었지만 더럽고 엉망이어서 얘가 전용으로 쓸 수 있는 작은 청소기를 구입해 카펫을 밀었다. 화 낼 힘도 없어서 차근차근 타일러가며 청소를 했다. 화장실은 이렇게 치우고 카펫이니 이걸로 밀어라...그 담엔 옷장 정리, 책상 정리.

아들의 학교와 기숙사

내가 머무는 동안은 아들 보고 기숙사 근처에 예약한 내 호텔에서 먹고 자라고 했다. 기숙사 오피스에 내려가 샤워 커튼을 갈아달라 청소기를 바꿔달라, 공용 부엌 청소상태에 신경 써달라, 갈 때마다 요구를 했다. 그 담엔 오피스에 내가 나타나기만 하면 어쩔 줄을 몰랐다. 나는 그냥 아들 따라 근처 우편함에 따라간 건데...

그렇게 기숙사를 왔다 갔다 하며 치우고 서 너번은 아들과 공용 부엌에서 후레쉬한 등심을 사다가 직접 구워 먹고 햇반과 가락국수를 곁들여 주기도 했다. 그리고 설거지 하는 법, 식기 정리하는 법도 가르쳤다. 사실 그렇게 먹는 것이 비용도 싸고 건강에 가장 좋긴 하다.


수업과 숙제로 바쁜 아들과 여기저기 당일치기 구경도 다니고 홀로여행도 하고 기숙사에 짬짬이 들러 청소와  요리를  하며  2주를 보냈다. 귀국할땐  아이가 그 상태를 유지하며 잘 지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아이도 말은 안 했지만 공항버스 정류장까지 나를 데려다주고 돌아서 가는 모습이 너무 쓸쓸해 보였다.(나만의 생각일지도)




크림이 이야기도 빼놓을 수가 없다. 내 사랑을 시험에 들게 하는 시크한 크림이는, 내가 집에 오자마자 쿠키와 애정을 뿜 뿜 나누고 있을 때 소파에 앉아 지긋이 지켜보고 있었다. 한참을 쿠키와 정을 나눌 때까지. 보통 다가가면 잽싸게 자리를 피하는 크림이는 그 자리에 진득히 앉아있다가  내가 안아 들자 가만히 안겼다!

요즘 말로 진짜 이게 머선 129!(무슨 일이고)

쿠키 귀 청소하고 분주하게 이리저리 움직일 때도 크림이는 계속 나를 따라다니고 언제든 뻗어도 내 손길을 피하지 않았다. 나는 너무 감격하여

 "크림이 가 날 아나 봐!!!!" 했더니 남편이 "당연하지, 많이 기다렸나 봐." 하는 거다.

크림이를 보며 "정말이야?? "하고 온몸에 뽀뽀를 퍼부어도 가만히 있었다.

 '개냥이로의 변신'이라니! 그래서 그런건지  몸단장을 스스로  잘하는 고양이 크림이마저 나의 부재로 털에 윤기를 잃은 것 같았다. 흰털도 좀 회색빛이 된것  같기도.

내곁에만 머무는 크림이


쿠키 머리를 조금 잘라주고 눈곱을 정리하고 빗겨주고 전용 향수도 뿌려주고 힘이 너무 없어서 꿀도 한 스푼 먹였다.  크림이도 빗겨주고 쓰다듬어주었다.

귀국한 다음날, 벌써 쿠키 앤 크림이는 털에 윤기가 돌고, 쿠키는 밥도 잘 먹는다. 코는 촉촉해지고 눈은 생기가 돈다. 크림이는 어딨지 찾으면  옆에서 잠을 자거나 그루밍을 하고 있다(감격)



이번에 내가 없을때   vs  귀국  하루반만의 쿠키의 변화




딸내미도 나의 달콤한 격리 생활이 질투가 났는지 방점을 찍어주었다. 내가 귀국하기 전 기숙사에 입소한 딸은, 톡으로 조금만 빨리 당겨서 오면 안 되냐고 엄마랑 짐도 싸고 살 것도 많다며 징징거렸다. 귀국 후 온전히 애기들하고만 있고 싶었던 나는 " 안돼, 이번엔 아빠랑 준비해서 잘 들어가 딸, 엄마가 나중에 놀러갈게." 달래며 원래 오기로 한 날 귀국했고 딸은 아빠랑 필요한 것을 사러 다니고 혼자 짐을 싸고 아빠의 도움으로 기숙사에  들어갔다.

귀국 전 내 생각은 할 일은 많아도 혼자 있는 시간이 강제로 확보되는 격리생활에 대한 기대도 없지 않았다. 남편 출근 후 조용하고 평온한 집에서 우리 귀염둥이 두 마리와 온전히 즐겨봐야지, 은근히 신이 났다. 

하지만 막상 오니 우리 이쁜이들  상태에 맘도 안좋고 집정리를 어디서부터 해야할지 아득했다. 그렇게 이틀을 지내며  어수선한 맘을 정리하고 다시 조용한 평화를 누리려는데 갑자기 딸아이에게 전화가 왔다.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보통 톡을 많이 하니까...

이번 주 어차피 비대면 수업이라 엄마도 보고 애기들도 보고싶다며 집에 오겠다고 한다. 허허허.

몸살 기운도 있는 것 같고 잠도 잘 안 온단다. 참고로 우리나라 나이로 23세 된 아가씨다.

하루 종일 쿠키 앤 크림이와 지내며 저녁엔 남편과 맛있는 음식을 시켜먹으며 격리 아닌 리조트 생활을 즐기려고 했었는데.


착한 내 친구들은 딸도 아들도 없는 집이 적적하고 외롭지 않냐며 전화를 해주고 안부를 묻는다.

내가 예전부터 이해가 안 가는 게 '빈 둥지 증후군'이다. 도대체 그게 뭐지? 어떻게 그런 병이 있을까.  나도 걸려보고 싶은 병...

쿠키 케어에, 집안 청소에, 용건 있는 아들 전화 딸 전화, 그리고 마침내 집에 돌아오고 만 딸.

딸이 오자,  나답지 않게 갑자기 세 끼를 해먹게 된다. 그간 외국에 있으면서 외식은 너무 많이 했고 배달음식도 딸아이에게 사주고 싶지가 않았다. 딸이 없음 아침엔 커피 한잔, 오후엔 라면이나 간단한 점심, 그리고 저녁은 남편과 쿠*이츠에서 하나씩 시켜먹을 심산이었는데.

격리를 하는 건지, 집 안에 갇혀 벌을 받는 건지 도무지 분간이 안 가지만 분명한 한 가지는 깨달았다.

 요리도 청소도 취미가 없어서 자타공인 낙제점을 받은 내 손도 우리 네 명의  아이들에게만큼은  약손이구나. 아니 금손일지도. 내가 쓰다듬으면 또로롱~소리를 내며 환하게 반짝반짝 빛이 나는구나. 정신승리해본다.


남편에게 하소연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자기가 일복이 많아서 그래.'

작가의 이전글 우정엔 국경이 없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