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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이 Mar 13. 2022

무례한 이웃에 대처하는 법

그를 고소한 이유

얼마 전에야 그 사실을  알았다. 행패를 부리고 협박을 해서 고소를 당했던 그 나이 지긋한 옆 동 남자가 이사 갔다는 것을. 그것도 아주 오래전에.


날벼락


몇 년 전, 설을 앞둔 어느 저녁의 일이다.  운동을 하려고 나가려던 나는 경찰차 두어대가 우리 아파트 단지에 있는 것을 보고 의아했다. 119는 간혹 와서 아픈 사람을 싣고 가도 경찰차 출동하는 건 처음 봤기 때문이다. 호기심이 일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니 현관에 막 남편이 들어서고 있었다.

" 저 경찰차 왜 온 거야? 봤어?!"

어두운 표정의 남편이 남의 말하듯 말했다.

 "저거 내가 부른 거야."  


나는 운동이고 뭐고 집에 가는 남편을 따라 올라갔다.

내가 차린 밥을 먹으면서 남편이 자근자근하는 이야기는 기도 안찼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이런 것이리라.

십수 년을 살면서 법 없이도 사는 순해 빠진 남편이 그토록 우울한 건 처음 보았다. 모욕과 체념의 얼굴.

"그냥 내가 참으면 되지..."


자초 지종은 이러했다.

오래된 아파트 단지라 늘 주차장이 모자란데 화단 쪽으로 전면주차를 권유하는 곳이었다.

나는 그것에 동의가 안됐다. 운전도 미숙한 데다가 주차장 자리가 모자라니 옆으로 세운 차가 더 많은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옆으로 아무렇게나 세운 차들을 밀고 그곳을 후진으로 빠져나온다는 것은 양쪽에서 차가 와도 사람이 걸어와도 아이가 뛰어와도 사각지대가  너무 커서  위험하다.

나무도 좋고 꽃도 좋지만 혹여라도 발생할 주차장 내 사고나 인사사고보다 더 중요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제대로 돌보지 않은 오래된 아파트의 화단은 아파트의 나이만큼 비죽이 자란 소나무들만 간신히 버티고 있을 뿐 화단의 가치도 상실한 지 오래였다.

후면 주차를 한 경우는 조금씩 앞으로 나와 시야를 확보하면서 얼마든지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남자치고 운전을  잘 못하는 우리 남편이나 나는 항상 후면 주차를 했다. 물론 주민들도 전면 주차하는 사람 후면 주차하는 사람 자기 맘대로였다. 무려 30년이 넘은 아파트이니 주차 자리가 비좁아 전면이건 후면이건 그런 걸 따진다는 것이 무의미했다.

그러나 5-6호 라인에 이 아파트를 분양받아 40년 가까어머니와 아내, 아들과 살고 있는 그 아저씨는 생각이 많이 다른 사람이었나 보다.

그리고 바로 그날 저녁, 후면 주차를 하던 우리 남편이 처음으로 그와 그의 가족들과 맞닥뜨렸다.

(이사와 살면서 처음!! 본 사람들이다.)


술에 취한 그 아저씨는 다짜고짜 쌍욕을 하면서 전면주차를 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입에 담을 수 없는 쌍소리에 우리 남편은 일단 휴대폰 녹음 기능부터 켰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는 맞장구를 치며 자기 아들 말대로 하라고 추임새를 넣고 그의 와이프와 아들은 부끄러워하며 그를 말렸다고 한다. 와이프가 그를 진정시키려 하며 이만 들어가자고 하자  그는 냅다 와이프를 발로 걷어찼고 넘어진 그녀는 당혹스러움과 모멸감에 아들과 함께 자리를 떴다. 그의 어머니도 같이. 설 밑이라 사람도 별로 없는 주차장에 주사를 부리는 정신없는 인간과 우리 남편이 있었다. 응당 나서야 할 경비는 원래 주사 있던 그 아저씨를 피해 죽은 듯 초소에서 구경만 하고 있었다.

남편은 위협마저 느껴 결국 그 주정뱅이의 말대로 전면주차로 바꿔야 했다. 그럼에도 그는 끝까지 남편을 쫓아와  너 같은 ** 집을 알아둬야겠다며 따라오고 밀치고 행패를 부렸다는 것이다. 나와 아이들 생각에 불안해진 남편은 결국 112를 불렀다.

경찰도 어찌하지 못하고 그를 달래고 얼러서 집으로 겨우 데리고 가면서 남편은 집으로 온 것이다.


내가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던 건 우리 집의 가장인 남편의 인격을 아무 이유 없이 함부로 짓밟았다는 사실이다.

나와 우리 아이들의 우산이며 보호자인 남편을 그렇게 막 대한 것은 나와 우리 아이들이 함께 당한 것과 다르지 않았다. 업무적 측면에서 본인의 과오로 상사에게 깨져도 속상할 판에 아무것도 아닌 주차 문제로 지까짓게 뭐라고 감히 남의 집 가장이자 대통령을 욕보이다니!

 재수없고 어이없는 피해를 당하고도 그저 속으로 삼키려는 남편 모습을 보니 뜨거운 분노가 솟아올랐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일단 5~6호라인에 사는 지인과 동장님에게 전화를 걸어  12층 몇호에 사는 그 사람을 아느냐고 물었다. 알지는 못하지만 할머니랑 짝을 이뤄 전면주차를 일일이 간섭하며 경비를 달달 볶는 험한 명성을 가진 사람에 대해 들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노모와 그는 그런 한심한 사람이었다.


고소장을 접수하다


다음날 아침, 나는 남편에게 경찰서에 가서 그를 고소하자고 설득했다.

남편은 더 이상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다고 주저했지만, 주차장에서 교대근무 중인 경비아저씨의 말을 듣는 순간 남편은 경찰서로 향했다.

어제 그 아저씨가 아침에 주차장에 내려와 남편의 차를 발로 툭툭 치며 앞으로 이 차를 타깃 삼아 어떻게 세우는지 지켜보겠다며 히죽히죽 웃었다는 것이다. 그 차는 나도 가끔 모는 차다.

치가 떨렸던 것은 그는 만취 상태도 아니었던 것이다. 남편의 차 넘버까지 기억할 정도로.




녹음 파일을 들은 경찰들의 표정은 복잡해졌다.

"원한이 있는 분인가요?"

"이사와 수년 살며 어제 첨 본 분이에요."

경찰들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처음 본 이웃들 사이에 일어날 일이 아닌데... 제정신이 아닌 사람 같은데 고소 후 뒷감당 괜찮으시겠어요?"

아이들이 걱정된 남편은 그냥 하지 말자고 한다.

경찰들 역시 하지 않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강력사건이 시간 단위로 일어나 그런 사건 수습하기도 정신없는데 이런 건 너무 사소한 것이다. 귀찮기만 하고.

그러나 큰 사건은 사소한 사건을 덮는 데서 출발한다. 이를테면 동물 학대를 일삼는 사람들은 곧 몇 년 안에 사람에게 그 잔인함을 겨누게 되어있다. (동물학대범에 대한 처벌과 적극적인 교화가 필요한 이유지만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요원하다 ㅠ)


"무조건 고소할게요. 큰 아이는 기숙사에 있고 작은 아이는 학교가 가까우니 제가 등하교를 잘 케어하면 돼요." 다들 주저하는 상황이라 내가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남편은 고소장을 작성했다. 모욕, 협박에 폭행죄까지 추가됐다.

고소장을 작성하며 다시금 마음이 힘들어진 남편은  정신과도 갔다. 그를 처벌하는 데 매우 필요한 한 가지 요소이기도 하다.  정신과 의사는 녹음파일을 듣더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걱정했다.


고소 이후,


그날 오후, 경찰에서 연락이 왔다. 그를 소환했다는 것이다. 그는 자기가 술을 마시고 실수를 한 것 같다며 횡설 수설했다고 한다.

심신미약으로 덮으려는 수작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음날,  그가 보인 행동은 다분히 의도적이었고 그것에 대한 경비아저씨의 진술도

받아두었다.)


그리고, 며칠 후 남편이 차를 타려는데 누군가가 허겁지겁 뛰어와 인사를 하더란다.

"아이고 선생님... 제가 누군지도 몰라뵙고...그 일은 정말 죄송했습니다.."

남편은 못 보고 못 듣는 사람처럼 차를 타고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그는 장문의 메시지도 보냈다. 전화번호는 또 어떻게 알았는지.

'주사가 있어서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너무 죄송하고 면목이 없고...어떤 벌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이것이 고소를 취하해달라는 뜻은 아닙니다.'


참으로 우스운 일이었다. 고소가 들어가자  꼬리를 내리는 '꼬락서니'라니.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그는 내가 가장 경멸하는 부류의 인간이었다!

이렇게 오래된 아파트에서 주차난으로 허덕이는 이곳에서 주차가 뭐라고 그와 노모는 주민들을 상대로 경비들을 상대로 이런 짓을 자행해 왔을까.

 무슨 한심한 신념인가.

고소 한 방에 이런 낮은 자세라니.  그 신념이 그토록 소중하고 옳은 것이었다면 맞고소라도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나는 관리실에도 일부 책임이 있다고 보았다. 관리 소장을 만나 담판을 지었다. 앞으로는 전후면 주차를 따지지말고 자율로 해달라고. 어차피 주차장 사정상 뒤죽박죽 자율이었지만 원칙은 전면 주차라 하니 주민들 간에 말도 안되는 갈등도 생기는 것 아니냐고 따졌다. 사실 이런 오래된 아파트에서 전면 주차만을 고집하려면 주민들이 후진으로 차를 뺄 때마다 경비원 아저씨가 책임지고 차를 다 밀어주고 봐줘야 하는데 그게 가능한 얘기가 아니지 않냐고 덧붙였다.  또한 그 사건이 일어나던 저녁,  당번 경비원 아저씨의 나 몰라라 하는 태도 역시 짚고 넘어갔다. 아무리 주민끼리의 다툼이라 끼어들기 어렵다 해도 이건 한 주민이 일방적으로 당하는 입장인데 중재는 커녕 신고조차  해주지 않은 건 직무유기 아니냐고.

(남편과 나는 추울 때나 더울 때  고생하시는 경비원 두 분에게  음료 뿐 아니라  명절 땐 떡값을 따로 챙겨드리기도 해서 솔직히 서운했다)


결국 우리 아파트 단지는 이 사건 이후 입주자 대표회의 의결을 거쳐  이제는 모든 단지가 후면 주차를 한다. 또한  남편은 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 사건이 검찰에 송치되자 옆라인 주정뱅이 이웃을 위해 선처를 부탁한다는  탄원서를 써주었다.

나는  그 아저씨가 최소한 벌금형이라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나이 되도록 세상 물정 모르고 날뛰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괴롭혀왔을까 하는 확신이 있었고, 처음 보는 주민에게 주차 문제 하나로 그런 폭력을 행사하는 그는 행여라도 갑을 관계의 을에겐 얼마나 많은 죄를 저질렀을지 상상이 가서였다. 또한 아무데서나 와이프를 폭행하는 남자,  그런 인간은  (감옥에 빈자리가 있으면) 감옥 생활도 해야 마땅한 인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부디 개과 천선하시길


벌써 몇 년 전 사건이고, 나는 그의 얼굴은 아예 본 적이 없으니 스쳐 지나도 몰랐을 것이지만 남편도 다행인지 불행인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전, 그의 이사 소식을 들은 것이다. 벌써 오래 전에 이사 갔다고 했다. 그 사실을  전하며 경비아저씨는 주차 문제로 주로 경비들을 힘들게 해서  '정말 골치 아팠던 할머니와 사장님'이었다며 속이 시원하다는 뜻을 내비쳤다.


3대가 이어 살아온 집에서 주사와 폭행으로 고소당하고 부끄러움과 치욕스러움에 떠나야 했던 것일까?

또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주된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 주사와 폭력이 처음은 아니었을 텐데 모두들 재수 없는 일로 치부하고 덮고 가다가 임자를 만나 정신을 차린 것인지 씁쓸했다. 물론 사이코 패스도 많아서 어떤 일이건 똥 밟았다 생각하고 지나치는 것이 현명한 일인 경우도 많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가 그런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갖고 있는 개선의 여지가 있는 사람이었다는 게 다행으로 느껴질 정도로 험한 세상이다.


20대 아들이 있는 아버지로서, 노모를 모시는 가장으로서 뒤늦게나마 그가 사소한 일로 이웃을 괴롭히는 일을 그만두기를,  와이프에게 함부로 손대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의 고소와 탄원서가 어떤 사람의 인생을 (늦었지만) 조금이라도 옳은 방향으로  바꾸는 일이 되었기를.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고, 우리 모두 혹시나 무식한 신념으로 가족들을 친구들을 이웃들을 무섭게 하는 건 아닌지 자꾸자꾸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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