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베란다가 통하는 문이 있는 이 방 창가엔 크림이의 화장실이 솔솔 부는 바람과 눈부신 볕을 쬐며 자리해 있고 좀 떨어진 구석엔여름용 강아지텐트와 크림이 식당이 있다. (식기와 사료통)
가끔 야옹~하며 다리사이에 부드러운 몸을 비비며 우는 어감이 배가 고픈 것 같아 '우리 크림이, 밥 줄까?' 물어보면 잽싸게 그 작은방으로 앞서 달려간다. 그러곤 식기 옆 텐트에 쏙 들어가 밥을 퍼줄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사료를 떠서 손에 놓아 먹여주곤 한다. 그럼 또 당연한 듯 텐트 안에서 맛나게 받아먹는 공주 같은 크림이. 사료를 먹을 때마다 손에 닿는 차가운 분홍 코와 까끌한 혀의 감촉, 그리고 와그작 와그작 씹어먹는 귀여운 소리에 전율이 일곤 한다.
마루로 나오면 큰 창가 , 해가 잘 드는 곳에 크림이의 캣타워와 초록 숨숨집이 있지만 요즘 크림이의 쉼터는 소파와 안방 침대, 언니 침대, 오빠 침대다.
그리고 마침내 크림이는 단 한 곳, 그동안 침범하지 않고 남겨두었던 쿠키의 전용침대까지 차지하고 말았다.
여기 참 좋은데 왜 자꾸 뭐라구래...뻔뻔해도 이쁜 크림이.
주인따라 고양이 집사가 된 나의 착한 쿠키.
마치 원래부터 내 침대 인양 자연스러운 포즈로 누워있는 크림이의 뻔뻔함은 참 이상하게 밉지가 않다. 아니 그냥 웃음이 나오고 심지어 예쁘고 귀엽다. 순하고 착한 쿠키도 주인을 따라 어느새 크림이의 집사가 되었는지 지 침대를 뺏기고도 화를 내거나 내쫓지 않고 양보한다. 쿠키도 잘 때는 내 침대를 나눠쓰니까 착한 마음에 자기 침대를 크림이와 같이 쓰는 것이리라.
제 집인데도 엉거주춤있다가 결국 못버티는 쪽은 항상 쿠키다.
비단 집 안만 점령당한 것은 아니다. 크림이는 온 가족의 마음까지 함락시켰다.
크림이의 늪과 같은 매력은 무엇일까.
일단 눈같이 희고 고운 털빨이다.
푹신푹신 잘 깎아놓은 최고급 양탄자 같은 보드랍고 촘촘한 털은 손이나 얼굴을 갖다 대는 순간 이내 폴폴 날리는 털 먼지도 개의치 않게 된다.
헤어볼은 크림이가 아니라 내가 뱉어야 할 지경이다...
또 작고 귀여운 얼굴이다. 크림이의 얼굴은 어찌나 작은지 저러니 머리가 나쁜 게 당연하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쿠키와 나란히 있으면 쿠키 얼굴이 세 배는 더 크다. 크림이는 얼굴 소멸 여배우 같아서 이쁘고 쿠키는 머리 큰 공부 잘하는 총명 둥이 같아서 이쁘다.
뿐만 아니라 작은 얼굴에 자리한 핑크색이 비치는 작은 귀와 핑크 코, 그리고 손과 발의 핑크 젤리는 종일 보고 쓰다듬고 입을 맞추어도 하루가 짧다.
스코티쉬폴드의 특징인 작은 귀와 핑크핑크 코와 손발의 폭신폭신한 핑크젤리.
나 이제 자려구요..
마지막으로 모든 고양이가 가진 시크한 성격이다.
주인만 보면 설레발을 치며 내 그림자인지 니 그림자인지 구분이 안 가게 딱 붙어서 사랑을 갈구하는 강아지와는 달리 크림이는 아주 가끔씩 몸을 비비고 얼굴을 문지르며 사랑을 표현한다. 눈을 가늘게 뜨고 갸르릉 소리까지 내며 애교를 떨 때 집사들은 이게 웬 횡재인가 하며 모든 일을 멈추고 가슴을 두근거리며 목도 쓰다듬어주고 뽀뽀도 해주는데 그러는 동안에도 크림이가 언제 그랬냐는 듯 매정하게 뒤돌아서 가버릴까 전전긍긍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또 한 가지가 있다.
크림이는 목욕도 산책도 안 하고 혼자 어찌나 몸을 다듬고 씻는지 언제나 향기롭고 부드럽다.
특히 손과 발을 얼마나 열심히 핥고 뜯고 다듬는지 코로나 시대에 참으로 적절한 청결을 유지해서 매우 기특하다.
얼마나 열심히 손가락 발가락 사이사이까지 핥고 뜯고 빠는지 모른다. 물론 몸도 얼굴도 꼬리도 똥꼬도 매우 열심히 그루밍한다.
친구들은 쿠키가 가엾다고 하지만 내 보기엔 쿠키도 크림이의 매력에 빠져 집사가 된지라 질투도 내려놓은 듯하다. (착각일까) 그래도 쿠키는 알겠지. 10년간 우리 가족과 동고동락하며 희로애락을 나눠온 우리들만의 그 두텁고 견고한 사랑과 정은 제 아무리 크림이가 예뻐도 그 경중을 비교할 수가 없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