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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이 Apr 19. 2022

오해와 기대

수상한 이웃,그 남자


우리 아파트에 도무지 출퇴근 시간을 알 수 없는 한 남자가 있다.  오전에도 오후에도  그는 우연히

  몇 번씩을 나와 마주친 일이  있었는데, 그 이유는 단지 앞 쓰레기통 앞을 서성이며  흡연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곳은 애연가인  남편도 즐겨 찾는 곳이지만 여하튼 남편이고 누구고  추우나 더우나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곳에서 담배 연기를 내뿜는  사람들이 나는 탐탁지 않다.  특히 그  남자는 직업이 없는지 프리랜서인지 더부룩한 머리에 표정을 감추는 큰 검정 뿔테 안경을 쓰고  노오래진 흰 티와 낡은 청바지 같은 후줄근한 옷차림으로  시도 때도 없이 담배를 피웠다. 막연하게 나는 그가 홀로 사는 사람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가족이 없고 직업도 불분명한 남자 이웃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범죄에 연루된 캐릭터로 나오곤 하는데 현실도 다르지 않을 거란 선입견에  어쨌든  그가 불편했다.

내가 골라 입히지 않으면 패션 테러리스트인 남편도 구겨진 바지에 보풀 투성이  후디를 걸치고  담배를 피우러 나가곤 해서 나는 그 남자 얘기를 하며 괜한 오해를 살 수 있으니 조심하라며 주의를 주곤 했다.  물론 남편도 그 남자를 알고 있다.  대화는 나눈 적이 없지만 사계절 내내 쓰레기통 앞에서 특히 저녁 시간에  숱하게 만났겠지. 하지만 남편은 동지의식이 있는지 그에 대해  어떤 편견도 없었다


그러나 웬걸, 알고 보니 그는 내가 친분이 있는  동대표의 앞집에 사는 사람이었고 동대표 아주머니에 따르면 그는  키 크고 날씬하고 게다가  미모까지 갖춘 직장인 와이프에 두 딸도 있는 번듯한 가장이었다.  또한 무직자라기엔 유지비만도 어마어마하게 드는 고급 외제차가 두 대나 있었다. 와이프와 딸들이 있고 잘 사는 사람이 이웃인 건 매우 다행스러웠지만 그럼에도 늘 쓰레기통 앞에서 담배를 태우는 그를 마주칠 때면 처음 받은 좋지 않은 인상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순식간에 풀린 오해


그러나 그 남자에  대한 의심과 불신은 한순간에  바뀌었다. 어느 어스름한 초저녁,  나는 여느 때처럼 쿠키와 산책 중이었는데  별안간 쿠키가 줄을 당기며 코를 킁킁거렸다.  10여 미터  앞에서   남자가 주먹만 한 강아지를  부서질까 날아갈까 소중하게 껴안고 단지의 풀들을 냄새 맡게 하며 아주 천천히 걷고 있었다.  마치 막 태어난 아기를 다루듯이 손길 하나 걸음  하나도 사뿐사뿐 부드러웠다.

나는 중년의 사내가 강아지를  대하는  보드라운 행동에  마음이 흐뭇하고 말랑해졌다.

뒷모습을 보고 설마설마했지만,  그가 맞았다.

남자였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강아지를 애기 보듯 사랑스럽게 대하는 그 모습에서 오스카 와일드의 '거인의 정원'에 나오는 거인이 떠올랐다.  겨울만 계속되던 정원에서 마침내  그가 마음을 열고 아이를 안아 든 순간 새가 울고 꽃이 피고 봄이 온 것처럼.


그의 강아지는 비숑이라 우리 쿠키의  1.5배  크기로  무럭무럭 사랑스럽게 자랐다. 그 강아지가 자라는 동안 나는 그 남자와 그의 아내 그리고 딸들이 산책시키고 애지중지하는  모습을 가끔 보았다.  그러나 그 강아지의 산책과 케어는 거의  남자의 몫이었다. 어느 날은  좁은 산책길에서 그를 마주치자 나도 모르게 그간의 오해에서 비롯한 미안함과 반가움에 강아지에게  인사를 하기도 했다.

 집은  2층이라 쿠키가 산책을 할 때면 열린 문 사이로 그 비숑이 멍멍~짖곤 한다.

나는 가끔 손을 흔들어 준다. 아직도 그 남자

어김없이 쓰레기통 앞을 서성이며 흡연을 즐기지만

이제 그는 '강아지를 사랑하는  착한 이웃'  되었다.


기대


내가 오랫동안 다니는 피트니트센터엔 좋은 사람들이 많다. 지금 골프를 같이 치는 팀들 중 하나도 이곳에서 만난 착하고 예쁜 언니들이다.

운동센터를 다니다가 50이 넘어  이런 귀한  인연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고  소중하기 짝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이곳에서 오가며 인사를 나누던

예쁜 동생이 전화번호를 주며 한번 만나자고 했다.

워낙 호감이 가는 인상이라 반갑게 전화번호를 주고받았는데 프사에 예쁜 고양이가 보였다.

 혹시나하고 살펴보니 세상에! 우리 크림이와 거의 유사한 하얀 스코티쉬 폴드 고양이었다. 우리 크림이처럼  그녀의 하얀 고양이도 식탁이나 침대에 그림처럼 눕거나 앉아 있었다. 놀라운 일은 그녀는  강아지도 함께 키우고 있었다!

사진 속에서 강아지와 고양이가  침대에 몸을 붙이고 누워있었다. 맙소사!!

갑자기 마음이 덜컥 내려앉으며 맘속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올라왔다.  마치 헤어지고 못 만난 반쪽 친구를  발견한 느낌이었다.

나보다 어리고 유학생 아들딸을 둔 예쁜 사람이란 것 외엔 전혀 알지 못하지만,

나와 똑같이  강아지와 고양이를 키우는 그녀에게

호감도가 백 프로 상승했다! 어떤 사람일지 빨리 만나 대화하고픈 욕구가 샘솟았다.


나는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바로 호감을 갖는다. 유유상종이라고 친한 친구들이나 언니들 모두 하나같이 동물을 좋아한다. 말 못 하는 동물의 눈빛을 통해 그 마음을 헤아려주는 사람이 나쁜 사람 일리 없다. 옛말에도 있지 않은가. 아기와 강아지에겐 아무리 포장한다 해도 그들에겐 진심을 감출 수가 없다고. 귀신같이 안다고.

강아지나 고양이를 가족으로 받아들여  키우는 사람들은 (가끔 세서리처럼  경험 삼아 키우다가 마는 책임감 없는 사람은 제외, 버리는 데 변명이 구구절절 많지만ㅠㅠ)  그들만의 통하는 언어와 정서가 있다.

 아이들이 자랄 때처럼 동물들도 비슷한 성장기를 거치고 비슷한 총명함과 귀여운 행동으로  주인들을  기절시킨다.  웃음을 주고 행복을 주고  또 길지 않은 생애를 통해 눈물과 아픔을 주고  더 큰 세상을 보게 해 준다.


 내 남편이 내 아이들이, 나처럼 동물을 좋아해서 정말 감사하다. 가끔씩 내게 오는 행운들도 여린 생명들을 아끼고 보살피는 내 마음을 하늘이 어여삐 여겨 내린 선물이  아닐까 생각할 때도 있다. 그리고 영화 "할아버지와 고양이"에 나온 대사처럼  '내가  쿠키와 크림이를  선택해서  키우는 것이 아니라 놀라운 인연의 힘에 의해

이 아이들이  나와 내 가족을 선택했을지도 모를' 일이란 말에 깊이 공감한다.


우리와 함께해줘서 고마워~♡


PS  아직 만나지 못한 그녀와의 시간을  고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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