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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이 Aug 23. 2022

바하마 바하마 2

뉴욕에서 드디어 바하마로

 뉴욕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지난 1 , 시애틀로  향하는 비행기 안이 텅텅 비어 눕코노미하며 승무원들에게 괜히 미안했던 그때가 꿈이었나 싶었다. 불과 4개월 만에 비행기 안은 미어터질 지경이 된 것이다. 도착지던 경유지던 뉴욕 가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구나, 새삼 놀랐다.

뉴욕까지 14시간의 비행을 이렇게 좁아터진 좌석에 묶여 갈 생각을 하니  즐거움은  휘발되고 한숨부터 나왔다. 그래도 조금 있으면 식사가 나온다는 남편의 격려에 다시 맘을 다잡고 영화에 집중하려는데 내 옆에 앉은 승객이 가만히 있질 못하는 거다. 나보다 적게는  4살에서 6살 정도  많지 않을까 짐작되는 외모의 그녀는 이륙하기도 전부터 목 운동을 하고 팔다리를 움직이며 온몸을 주무르고 토닥거리고 난리가 났다. 계속되는 옆사람의 움직임이  너무 거슬리고 힘들어졌다. 심지어 내 팔에 닿기도 여러 번.

 '무슨 문제 있으신가요? 왜 그렇게 가만히 있질 못하시는지요.' 마음속으로 수백 번을 물었다. 저기요, 소리가 나오다 멈췄다. 그녀의 행동이 도저히 정상이라곤 생각되지 않았고 어디가 심히 아픈 사람 같았다. 심지어 중얼거리기도 하는 것 같았다. 처음엔 폭발할 듯 짜증이 났지만 나중엔 아픈 사람인가 보다 하며 연민도 생겼다. 하지불안증후군처럼 가만히 있으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병이라도 걸렸나 보다 생각되었다. 나중엔 그녀가 움직임이 없으면 무슨 일이 난 건 아닌지 걱정이 되어 살피기까지 하는 여유마저 생겼다. 그리고 끊임없이 두 손과 팔다리를 가만두지 못하는 그녀를 보며 한 가지 깨달았다.


역시 오길 잘했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더 나이가 들어서 긴 비행을 할 때 어디가 불편해서 남에게 피해를 주기 전에.


 골프도 치지 않고 식성도 성격도 다른 남편과 내가

그럭저럭 잘사는  이유는 어쩌면 여행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일 년에 두어 번 이상 남편을 따라 세계  이곳 저곳을 함께 다니고  그 나라의 맛있는 음식들을 즐기다 보면 ㅡ심지어 비행기 기내식까지 ㅡ 그동안의 크고  작은  갈등이  해소되기도 한다.

기내 식사를 흡족하게  마치고 와인이나 맥주의 힘에 기대 쪽잠도 자고 영화도 한편을 보고 나면 혹시나 하며 남아있는 시간을 체크해보는데 맙소사, 아직도 10시간이 남았다. 온몸에 쥐가 날 것 같아 통로를 걷고 화장실을 가고 화장실 쪽 공간에서 간단한 체조도 한다.  답답함과 지루함에  네댓 번은 일어나  몸을 풀어보지만  신기하게도 남편은 한두 번 일어날 뿐 잠도 참으로 잘 잔다. 혹시 이코노미 증후군이 와서  실신한건 아닌지   혼자 공포스러운 생각에 사로잡혀 깨운 적도 있을 만큼.  

해외 방문이 잦은 그가 비즈니스로 업그레이드를 몇 번을 하고도 남을 마일리지를 안 쓰고 계속 모으는 이유다. 조금 더 힘들어지면 쓰잔다. 글쎄... 나는 정말 많이 힘들었는데. 몇 년 만에 이런 비행을 하는 건지, 확실히 내 체력은 예전 같지 않았다. 나잇값을 그대로 실감했다.




JFK 공항은 북새통이 따로 없었다. 공항은 지저분하고 수많은 인파로 넘쳐났다. 깨끗하고 널찍한 인천공항이 그리웠다. 무턱대고 외국을 좋아하던 때가 있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한국이 최고다.

바로 다음 날 오전 9시에 바하마행 비행기를 타야 했기 때문에 공항 근처 호텔에 머물렀다. 초저녁에 롱아일랜드에서 달려온 카타리나 부부와 드. 디. 어 만났다. 진짜 그대로인 두사람.


우리가 도착한 날은 5월 30일, 미국은 '메모리얼 데이'라 모처럼의 공휴일이었지만 막히는 거리를 달려 우리를 만나러 온 그들이 정말 고마웠다. 두 부부는 우리호텔에서 멀지 않은 식당 중 가장 맛있고 좋은 식당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예약하고  대접해주었다.

시애틀에서 리따 언니 부부를 만났을 때도 그랬지만, 어쩜 이들과의  시간은 금세 십 수년 전 세인트루이스로 되돌아갈까. 남편들끼리는 본 지 10년도 넘었고 개인적 연락조차 없었지만, 우리 네 명은 남편이 한국에 돌아가기 전 세인트루이스 카타리나 부부의 집에 초대받아  밥 먹고 새벽까지 술 한잔 기울이며 도란도란 이야기하던 그때 같았다.

주로 카타리나와 나의 대화가 주를 이루지만 말수가 적은 두 남자들이 던지는 적시적소의  위트로 끊임없이 웃음이 터지는 것도  똑같았다. 나와는 반대로 사람 사귀는 일에 무관심하고 사람들을 만나면  금방 피곤에 절어 쓰러지는 남편이 리따 언니 부부와 카타리나 부부를 만나고 돌아와선 늘 기적 같은 말을 한다. "정말 너무 좋은 사람들이야. 이 분들을 만난 일은 내 인생의 축복 같아."


멋진 핫플에서의 맛나고 즐거웠던 식사


비행의   피곤함을 카타리나 부부와의 만찬으로 날려 보내고, 다음날 아침 우리는 바하마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3시간 반의 비행 끝에 창 밖으로 바하마의 바다와 섬이 보이자 나의 온몸이 벅찬 기대로 깨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낫소 공항에 내려 만난 바하마의 풍경은 제주도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야윈 야자수들과 훅 밀려드는  더운 공기, 큰 감동 없이 우리는 택시를 타고 아틀란티스 리조트로 향했다.  멋진 리조트에선 빵빵 터지겠지, 나는  풍선을 불듯 설렘을 부풀렸다. 그런데 낫소를 가로질러 가는 길 도로 바깥쪽 곳곳에 웅덩이가 파여있고 물이 잔뜩 고여있었다. 어제까지 엄청난 폭우가 내렸다며 기사는 우리가 머무르는 동안은 태양의 신과 함께 하길 빌어주었다. 그날도 비는 안 왔지만 하늘은 꽤 흐렸다. 바하마는  5월부터 우기라던데... 내 마음속엔 날씨에 대한 기대감과 불길함의 싸움이 시작되고 있었다.


바하마의 멋진공항 그리고 비구름가득한 전경



*잠시 딴얘기지만 이번 달  중순, 조카의 결혼식 때문에 카타리나 부부가 한국에 와있어요. 내일은 우리 부부가 그들을 만나 대접하는 날이에요.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벌써 재밌어서 웃음이 나네요. 식사하고 우리 집에 와서 쿠키와 크림이를 볼 계획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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