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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Aug 01. 2023

지랄병 도진 엄마의 고해성사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첫째를 낳아 집으로 데려오고 들었던 생각이 잊히질 않는다.'이제 난 죽을 때까지 이 존재의 엄마로 살아야겠구나.' 그것이 기쁨의 고백이 아니었다. 염세적인 성향이 큰 나는 누군가에 얽매여 이 생의 삶에 집착하지 않길 쭉 바라고 살아온듯하다. 그런데 아이가 생기니 난 이제 무슨 일이 있어도 건강해야 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잘 살아야 한다는 중압감, 집착이 부담스럽게 나를 짓눌렀고 그래서 나온 고백이었다.


어제 또 또.. 단전에서부터 갑자기 끓어오르는 빡침으로 아이들에게 화(화라고 하기엔 너무 비열하고 괴팍하고 저질스러운)를 냈다.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고 독재자, 폭군처럼 그야말로 지랄을 떨고 애들을 재웠다.


그 분위기에서 아들이 하는 말.. "엄마 난 지금 내 감정이 슬픈지 기쁜지 좋은지 싫은지 모르겠는 마음인데 왜 그럴까?" 난 움찔했다. 그렇게 표현하는 아들을 보니 엄마 때문에 마음이 안 좋은데 어쩔 줄 모르겠다는 싸인으로 보여서.. 평상시에는 그냥 무심하게 내 상태에 대해 신경 안 썼던 애가. 그렇지만 난 그 어렵게 건넨 말을 씹고 아이들에게 부탁했다. 엄마 기분이 너희들 때문에 이런 게 아니니(시작은 그러했으나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왜 이모양인지 모르니) 엄마가 추스를 수 있게 시간을 달라고, 나를 자극하지 말아 달라고, 그냥 내버려 두라고...


그리고 잠들었고 저녁 내내 얼음처럼 차갑게 굴며 곁을 안 주던 내가 잠결에 둘째를 안고 귀와 팔을 내어준다.(둘째는 귀와 팔을 만지고 자는 걸 좋아한다) 아침이 되었고 어젯밤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캠프를 보냈다. 내 갑작스러운 지랄병도 아침이 되니 사라져 고요하다.


캠프에 넣어놓고 해변을 따라 운동하면서 '난 참 왜 이럴까' 평생의 내 숙제이자 십자가.. 이젠 지겨워서 누군가에게 말하기도 민망한 나에 대한 자책을 한 바가지.. 아니 윤동주도 아니고(미리 사과.. 감히 윤동주에 빚대어서) 나는 왜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건가.. 이 괴로움이 내 삶을 갉아먹는 기분이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운전하고 집으로 가고 있었다. 갑자기 아는 동생에게 톡이 왔다. 거긴 새벽 2시일 텐데.. 오래간만에 취했는데 언니에게 좋은 태양이 떠오르길 간절히 기도한다고, 살면서 고마운 사람 몇 없는데 언니는 찐이라고, 보고 싶다고.. 순간 위로가 됐다. 내 찐이 엉망진창이라 괴로워한 거지만 대외적으로라도 이런 모습도 있다면 다행이라는 생각. 내가 연기를 잘하나 이런 생각. 나는 내 생각보단 좋은 사람인가 보다라는 생각 여러 생각이 들었다.


요즘 읽는 책에서 나온 말.. "대부분의 정신적인 병은 성공적인 성숙과 영적성장을 위해 부모에게서 받았어야 할 사랑의 결핍이나 결함 때문에 생긴다" 정신적인 병이라고 거창한 게 아니라 현대인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기만의 정신적인.. 음... 그냥 병이라고 하자. 암튼 대충 짐작은 했었지만 정신과 의사가 그렇게 말해주니 더 명확해졌다. 나이가 40이 넘어서까지 부모탓을 하는 건 너무하지 않냐는 말도 일리가 있지만 확실한 건 어떤 이유에서건 그 한계를 이겨내지 못한 그 당사자는 계속 힘든 굴레 속에 나를 가두고 허우적대며 본인을 탓하며 산다는 것이다. 내가 경험한 대로는 싫고 또 그래서는 안된다는 걸 아니까 더 많이 사랑하며 키우고 싶은데, 가진 게 너무 없고 있는 것 마저 약간 왜곡되어 있어서... 주려니 찔끔 남은 것까지 박박 긁어 주느라 고갈되면 가끔 아니 자주 깊은 빡침과 함께 큰 분노가 퐈이어! 이게 내 육아의 반복이다.


가끔 쥐 잡듯이 혼낼 때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의 눈을 본다. 무섭고 두렵다. 저 아이의 우주에 내가 지금 어떤 짓을 하고 있는 건지. 과연 회복가능한 것인지. 아이의 평생에 나와 같은 족쇄를 채우는 짓을 하고 있는 건지.


매번 그랬듯이 다시 마음을 다잡고 다잡자. 육아의 쳇바퀴는 끝나지 않았고 난 또 이 과정을 반복할 테니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부디 그 간격이 좀 길어지길,  부디 그 과함이 줄어들길 바라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낮에도 역시나 잔디 깎는 소리가 바람에 스치운다. (미국 주택의 오전은 잔디깍는 소리로 종종 시끄러운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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