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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Jul 06. 2023

불타는 원숭이

아들의 센스

첫째 아들은 나를 '불타는 원숭이' 이렇게 부른 적이 있다. '불타는'은 화를 많이 내서. '원숭이'는 내가 원숭이띠라서. 아놔. 엄마 보고 불타는 원숭이라니. (지금은 '대마왕 UMMA'라고 부른다.) 그렇지만 뭔가 너무 와닿고, 참신해서 신랑이랑 나랑 빵 터졌었다. 


초등학교 2학년 참관수업에 참여했다. 선생님께서 '엄마는 000, 아빠는 000' 이런 글을 써보자고 했다. 난 순간 두려웠다. 엄마는 불타는 원숭이라고 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애들은 그런 거 재밌게 써서 주목받고 싶은 심리가 있다는 것을 알기에. 선생님과 다른 엄마들에게 무슨 망신인가. '불타는'도 그렇긴 하지만, 원숭이가 원숭이띠라서 그런 거라고 변명할 수도 없고. 어쩌지 싶었다.

 

첫째가 날 본다. 내가 손가락으로 하트를 그리며 아부를 했다. 최대한 화내는 엄마가 생각 안 나도록. 첫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모양으로 말한다. "엄마 내가 잘 써줄게" 그제야 안심이 됐다. 그런데 영우가 잘 생각나지 않는지 계속 고개를 갸웃갸웃거린다. 그러더니 날 한번 힐끔 본다. 그리고 스스슥 쓰더니 제출하고 자리에 앉았다.


담임선생님께서 아이들이 쓴 글들을 읽어주셨다. '엄마는 솜사탕', '엄마는 아기고양이' 뭐 이런 식이다. 드디어 아들 차례. 난 떨렸다. 도대체 뭘 썼을까? 선생님이 읽어주신다. '엄마는 엄마는 하얀 목련, 아빠는 아빠는 포근한 토끼, 초희는 초희는 귀여워.' '하얀 목련'이라고 하는 순간 선생님과 모든 학부형들의 눈이 도대체 누가 하얀 목련인지 찾느라 바쁘다. 나는 고개를 돌리며 내가 아닌 척, 나도 그 하얀 목련 찾는 척을 했다. 그 와중에 아들은 뿌듯한지 날 보며 씩 웃는다. '내가 알아서 잘 써줬지?' 뭐 이런 느낌으로다가. 


하얀 옷을 입고 가길 너무 잘했다는 생각과 함께 목련이라니. 그것도 하얀 목련. 과분한 표현에 민망하기까지. 고맙다 아들아! 불타는 원숭이가 아니라 하얀 목련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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