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주 Mar 07. 2024

정답기도 하여라

feat. 선제리아낙네들

동쪽으로 쭉 뻗은 출근길을 가다 보면 저 앞으로 기러기들이 줄지어 한강으로 간다. 아침 먹으러 가나보다. 일을 마치고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끌고 서쪽 집으로 들어오다 보면 그들도 하루를  잘 보냈는지 ‘끼룩끼룩’ 거리며 산으로 향한다. 이들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하늘이 높아지는 늦가을이 오면 어김없이 찾아온다. 저 북쪽 시베리아에 잘 있다가 찬 서리 맞으며 추운 겨울을 찾아, 먹이가 많은 한강을 찾아, 쉴 곳이 있는 작은 산을 찾아 작년에 이어 올해도 또 온다.


아이와 산책을 하다가 하늘에서 반가운 소리가 들리면 고개를 들어 쳐다본다. 어김없이 그들은 왔고, 끼룩끼룩 소리를 내며 우리 또 왔다고, 반갑다고 인사하는 듯하다. 그러면 우리도 잘 지냈었다고 별일 없었다고, 잘 쉬다 가라고 손 흔들며 화답해 준다. 기러기 덕분에 하늘을 한 번 더 보게 된다. 아이와 나는 가끔 저 무리와는 잠깐 떨어져 뒤따라가는 아이들에게 어서 가라고, 함께 하라고 응원의 소리와 손짓을 한다.


김포에 사는 즐거움 중 하나가 매년 겨울마다 기러기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줄지어 나란히 가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보통 맨 앞에서 나는 기러기가 대장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맨 앞에서 난다는 것은 공기저항으로 인해 체력 소모가 심해서 혼자서는 계속 맨 앞을 날 수가 없다. 단체로 비행할 때는 우연히 가장 먼저 날게 된 기러기를 꼭짓점으로 해서 V자나 W자의 형태로 날아간다고 한다. 맨 앞에서 나는 기러기가 만드는 기류를 뒤의 기러기가 탈 수 있게 되어 에너지를 아끼고 오래 날 수 있게 된다.   


나는 기러기를 볼 때마다 고은 시인의 ‘선제리 아낙네들’이 생각난다. ‘밤 기러기 드높게 날며 추운 땅으로 떨어뜨리는 소리 하고 남이 아니다.’ 빈 배 요기도 못하고 시오릿길 장에 갔다 돌아오는 선제리 아낙네들의 말소리와 밤기러기 소리가 비슷하다고 한다. 그 먼 길을 오고 가는 고된 길을 혼자가 아니라 끼리끼리 나누는 고생이라 의좋다고 한다.


그 춥고 먼 북쪽 땅을 향해 얼마나 많은 밤을 쉴 새 없이 날개를 저었을까. 아름다운 선을 이루는 도열을 유지하며 어떤 약속으로, 어떤 신뢰로 서로를 의지하고 정답게 그 긴 시간을 함께 하였을까. 뒤처지는 친구 다독이며, 칭얼대는 친구 달래 가며, 함께 가자고, 가야 한다고 얼마나 많은 정다움이 그 시간들을 채웠을까.


봄이다. 다시 떠나온 북쪽으로 3,500km를 또 정답게 날아가겠지. 혼자서는 다다를 수 없다. 혼자서는 행복하지도 않다. 설정이라도 한 듯 오차 없이 도착한 그곳에서, 함께 하지 않는다면 그 기쁨을 나눌 수 없다. 김포에 기러기 소리가 잦아든다.




<선제리 아낙네들>

                                                                    -고은


먹밤중 한밤중 새터 중뜸 개들이 시끌짝하게 짖어댄다

이 개짖으니 저 개도 짖어

들 건너 갈뫼 개까지 덩달아 짖어댄다

이런 개짖는 소리 사이로

언뜻언뜻 까 여 다 여 따위 말끝이 들린다

밤기러기 드높게 날며

추운 땅으로 떨어뜨리는 소리하고

남이 아니다

콩밭 김칫거리

아쉬울 때 마늘 한 접 이고 가서

군산 묵은 장 가서 팔고 오는 선제리 아낙네들

팔다 못해 파장 떨이로 넘기고 오는 아낙네들

시오릿길 한밤중이니

십릿길 더 가야지

빈 광주리야 가볍지만

빈 배 요기도 못하고 오죽이나 가벼울까

그래도 이 고생 혼자 하는게 아니라

못난 백성

못난 아낙네 끼리끼리 나누는 고생이라

얼마나 의좋은 한세상이더냐

그들의 말소리에 익숙한지

어느새 개짖는 소리 뜸해지고

밤은 내가 밤이다 하고 말하려는듯

어둠이 눈을 멀뚱거린다

매거진의 이전글 “예쁘게 봐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