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친절한 마음
내 안에 많은 스토리가 있고, 이해하기 힘든 다양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지금의 나를 형성했다. 우리가 만나는 편의점 알바, 서점주인, 동네 언니, 주민 센터 공무원도 그들만의 서사를 가지고 복잡한 인간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내 마음이 너그럽고 친절할 때는 타인의 말에 뾰족함을 발견해도 그냥 넘어가거나 오늘 컨디션이 안 좋나 하면서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내가 조금만 예민하거나 정서적인 여유가 없을 땐 타인의 뾰족하려는 기미만 보여도 방어하며 발끈한다.
어젯밤 남편의 한마디 말에 내 기분이 안 좋다는 것도 모른 체 오늘 하루를 쀼루퉁하게 살아가다가 오후쯤 내가 오늘 왜 뒤틀려있지 하고 생각해 보면 어제의 신랑의 그 말 때문이었다는 걸 그제야 깨닫듯 나도 모르는 내 상태의 원인이 오늘의 나를 지배했다는 걸 알면 오늘 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뾰족함을 드러냈었나 되짚어보곤 한다.
오늘 짧게든, 길게든 만난 사람들. 그들만의 오늘 사연이 뭔지는 모르지만, 더 깊이는 그 사람을 구성한 그 인생의 구체적인 서사를 모르지만, 내가 이해받고 싶은 만큼 나도 그들을 이해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친절한 마음으로, 너그러운 마음으로. 분명 이런 내가 이런 이유가 있듯이 그들도 그들만의 이유가 있어 이렇게 행동하고 말할 거라고. 크게 나쁜 의도는 아니었을 거라고.
특히나 우리가 스쳐 지나가듯 가볍게 만나는 다양한 많은 사람들은 그냥 그림이 아니고 기계도 아니고 복잡한 사연을 지니고 있는 나와 같은 인간, 사람이라는 걸. 이 말도 안 되는 당연한 진실을 잊고 그들을 대할 때 우리는 복잡하게 계속 누르라고 하는 키오스크를 두고 기계를 원망하듯, 꼭 급하게 프린트해야 할 때 뭐가 그리 오류가 많은지 잘 되질 않는 프린터를 대하듯 대하지 않는지 반성해 본다.
"예쁘게 봐주세요."라는 말. 부족할 수 있고,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고, 오해의 소지가 있는 말이나 행동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밉게 아니고, 예쁘게 봐달라는 이 말. 같은 말을 해도 밉게 보기 시작하면 무슨 말을 해도 밉게 보인다. 조사 하나까지 시비를 걸 수 있을 정도로 치밀하게 싫어할 수 있는 게 사람이다. 그렇지만 예쁘게 보기 시작하면 생각보다 나를 화나게 할 요소는 많지 않고 웬만한 시비와 공격에도 너그러워진다.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저 좀 예쁘게 봐주세요." 저도 이렇게 살고 싶다. "예쁘게 보려고 노력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