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을 살리는 힘
고통을 피하려고 할수록 오히려 더 힘들어질 때가 있다. 상처받기 싫어서 사람을 멀리하고, 실패가 두려워 도전을 피하고, 불안을 없애려고 모든 걸 통제하려고 하지만, 그 결과는 오히려 삶이 더 좁아지고 공허해지는 경우가 많다.
고통을 피하면 할수록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줄어들고, 새로운 가능성도 사라진다. 또한 계속 피하기만 하면 마음은 더 약해진다. 작은 불편함도 견디기 힘들어지고, 사소한 비판이나 실패에도 크게 흔들리게 된다. 결국 평범한 일상 속 문제조차 버겁게 느껴지게 된다.
반대로, 고통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상처받을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고, 실패할 수도 있다는 걸 받아들이면 삶의 범위가 더 넓어진다.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예 아프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아픔이 있어도 계속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이건 쉽지 않다. 하지만 완전히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아주 작은 용기 하나로도 충분히 시작할 수 있다.
한 사람의 생명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한 사람을 살린다는 것은 그 사람의 과거와 미래, 그리고 앞으로 만들어갈 수많은 관계와 가능성을 함께 지켜내는 일이다. 그래서 한 생명을 구하는 일은 그만큼 큰 의미를 가진다.
우리는 종종 큰 목적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진짜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 앞에 있는 한 사람을 외면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된다. 작은 관심과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큰 힘이 될 수 있다.
힘든 상황에 있는 사람을 외면하지 않고 손을 내미는 그 마음이 결국 세상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 생명을 존중한다는 것은 거창한 일이 아니다. 지금 내 옆에 있는 한 사람을 소중하게 대하는 것, 그 사람을 숫자가 아닌 한 명의 존재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렇게 한 사람을 끝까지 존중할 때, ‘인류’라는 말도 비로소 현실에서 의미를 가지게 된다.
내게는 대학 시절부터 같은 동아리에서 함께 활동하였고 지금까지 수십 년간 알고 지낸 친구가 있다. 삼수를 해서 비록 나보다 나이는 4살이 많지만 서로 존댓말을 한다. 나는 진정한 친구를 말할 때 그 친구를 떠올린다.(그 친구는 나를 어찌 생각할지는 모르지만)
그 친구에겐 많은 아픔이 있고, 현재도 정신적인 아픔으로 인해 사회생활을 못하고 있다. 시골에서 부모님과 같이 농사지으며 생활한다. 그런데 그 친구에게 가끔 '망상'이 찾아온다. 망상이 오면 일하다가도 일하기가 어렵고 밖에서 그 증상이 오면 활동의 제약을 많이 받는다.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다.
집에서 그런 증상이 오면 가만히 혼자 괴로워하면 되지만 밖에서 그러면 주위 사람들도 있으니 낭패다. 근데 흥미로운 것은 그 증상이 왔을 때 나랑 통화를 하면 금방 사라진다는 것이다. 참 오묘한 사실이다.
혼자 그 증상이 오면 1시간에서 심하면 몇 시간을 고통당해야 하지만 나랑 통화를 하면 단 1-2분 만에 대부분 그 증상이 사라진다. 그 친구한테는 내가 '구세주'와 같은 존재일지 몰라도 내겐 그렇게 크게 다가오진 않는다.(나도 참 못된 인간이다)
그 친구에게 난 큰 고통을 금방 없애줄 '용한 의사' 지만 난 그냥 그렇다. 통화하고 그 친구한테서 그 증상이 사라지면 전화를 끊고 그저 아무렇지 않게 내 일상 속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한 사람을 구하는 것이 온 인류를 구하는 것'이라는 오늘 글을 보고 머릿속이 좀더 환해진다.
'그래 난 한 사람을 구하는 게 아니라 인류를 구하고 있었구나!' '이렇게 엄청난 일을 하고 있었는데 미처 그걸 몰랐네!' 전에도 속으론 약간의 자부심은 있었지만 오늘 이 글을 통해 더 깊은 자부심과 뿌듯함, 지금보다 더한 자존감을 갖게 될 것 같다. "아싸! 난 엄청난 일을 하고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