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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은 Dec 20. 2022

생일 알림 설정하시나요

울 집엔 김영감 있어요

영감이 찾아오기를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다.
몽둥이를 들고 영감을 찾아 나서야 한다.       
   - 잭 런던 -

영감을 찾아 나서려고 했어요. 고약한 감기로 누워서 하루를 나열하다 보니 쓰고 싶은 글감이 떠올랐어요.




상 받았다.

일 년에 딱 한 번 손가락 하나 까닥 안 해도 되는 상.

생. 일. 상.



    김영감은 매년 생일상만큼은 손수 정성껏 차려주겠다고 선언했었다. 결혼하고 첫 번째로 맞이하는 생일이었다. 생일 전날 미역국을 끓이겠다고 호기롭게 미역을 물에 담가놓고 잠들었다. 상차림 준비를 하려고 새벽 일찍 일어난 김영감은 싱크대를 보고 기겁했단다. 미역이 불어서 스텐 볼을 넘쳐났다. 미역 물은 끈적끈적하고 미끄덩했다. 뭔가 단단히 잘못된 것임을 자각하고 놀란 마음에 쓰레기통을 뒤져서 꺼낸 빈 봉지에 적힌 글씨는 다시마. 다시마 한 봉지를 밤새 불린 것이었다.


그렇다. 미역인지 다시마인지 마른 것을 본 적이 없던 미역국을 먹기만 한 사람이었다. 계획에 차질이 생긴 김영감은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생일밥 먹기는 고사하고 지각할 것 같았다. 급한 마음에 도움을 주려고 하지만 한사코 마다한다. 신경질을 내며 혼자 할 수 있단다. 그냥 3분 미역국 하지. 출근 준비를 마치고 부르기만 하면 나갈 태세로 초조하게 안방에서 대기했다.


드디어 문이 열렸다. 헛. 웃음이 터져 나왔다. 휴대용 가스버너 위에 큰 불판과 소고기 두 팩, 케이크, 그리고 밥과 미역국이 식탁에 차려져 있었다. 아무리 고민해도 할 줄 아는 게 없었고 이게 최선이란다. 미역인 줄 철석같이 믿었던 다시마 때문에 새벽부터 얼마나 당황했을까.  불판에서 갓 구운 육즙 터지는 소고기를 먹고 출근한 기억이 난다.




김영감은 며칠 전부터 생일에 뭐가 먹고 싶은지 물어봤다. 말해도 결국 본인이 할 줄 아는 거 할 거면서. 생일 전날에 몸살 기운으로 온몸이 욱신거려서 일찍 누웠다. 밤 12시가 넘도록 달그락달그락 탁탁. 깊은 잠에 들기가 어려웠다. 새벽까지 선잠을 자다시피 했는데 새벽 5시 30분에 탁탁 달그락달그락 또 소리가 들린다. 김영감도 일 년에 한 번 차리는 상차림 때문에 잠을 못 잤겠지. 잠귀 밝은 나 역시 밤새 설쳐대서 몸살 기운이 더 심해진 기분이었다. 나가자니 부를 때까지 나오지 말라고 하고, 누워있자니 잠은 안 오고, 책 보자니 머리가 아팠다. 7시 즈음 반갑게 부르는 소리


18년 생일과  19년 생일
22년 생일과 21년 생일

잡채 말고 다른 메뉴 개발 좀 해주라. 몇 년째 이것만 계속 먹고 있어. 올드보이에서 만두 먹는 최민식배우도 아니고.


이번 생일은 코가 꽉 막히는 바람에 아무 맛을 느낄 수가 없었다. 모두가 조화롭게 같은 맛이다.  맛.

와우! 환상적인 맛입니다. 솜씨가 날로 좋아지네요. 잡채 대가 되시겠어요. 매년 먹어도 새롭잖아.

김영감 최고!!! 이런 리액션쯤은 혀끝에서 맛을 느끼기도 전에 자동발사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잖아.




생일이라 함은 24시간 내가 주인공이 되는 일 년에 딱 한 번인 날. 달력에 빨간색으로 동그라미 표시를 해두고 생일이 들어선 달의 1일부터 설레었다. 어떤 선물을 받을까 재미있는 무엇을 할까.


이렇게 살았던 사람이 카카오톡과 밴드라는 신기한 어플을 사용하게 되었다. 생일 알림 설정 기능이 있어서 생일임을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타인에게 공개된다. 카카오에 친하지 않은 어정쩡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 생일 친구라고 뜨면 한참을 망설인다.

생일 축하 메시지를 날려. 말어. 하기에는 오버스럽고 안 하기에는 생일 친구 표시가 신경이 쓰이고.

음료 쿠폰 보내기 해. 말어. 커피 두 잔만 할까. 케이크 한 조각을 더 추가할까


카카오는 선물하기라는 기능을 기가 막히게 잘 만들어놨다. 시즌별, 연령별, 성별, 가격별, 랭킹별. 때로는 덜 친한 사람에게서 음료 쿠폰이 날아오면 고맙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리 세심하게 사람을 챙기지 못해서 상대의 감사함을 놓치는 경우가 종종 생겼다. 내 생일 표시를 보면 나와 어정쩡한 관계인 사람도 이런 고민을 하겠지. 언제부턴가 생일 알림 기능을 해제했다.


올해 생일에 가족을 제외한 카카오 친구로 저장된 사람 중에서 단 두 명이 생일 아침에 축하의 문자를 보내주었다. 인간관계가 이렇게 협소한 사람이었나. 타인에게 내 존재가 이토록 미미했나.  타인과 나의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위해 꺼둔 것인데 왠지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억지 축하는 받고 싶지 않은 마음과 은근히 나를 챙겨주길 바라는 이중적인 마음을 가진 인간이 투명하게 보인다.




사진 주인 카카오선물하기 케이크, 글 주인 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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