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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은 Jan 01. 2023

오늘 밤에 독감이 사라지다

엄마 손은 약손

컨디션 안 좋아 보이네.

- 엄마, 목이 좀 간지러워. 딱히 어딘지는 모르겠는데 빈혈처럼 어지러워.


아침밥을 먹고 있는 진아의 안색은 평상시와 달랐다. 밥 뜨는 속도가 느리고 얼굴이 핼쑥했다. 필시 몸 어딘가가 안 좋다. 진아는 몸 상태가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만사를 제치고 학교를 쉬어라고 할게 뻔한 엄마의 눈빛을 피해 학교 갈 준비를 주섬주섬했다.


참지 말고 불편하면 당장 조퇴해.


일 년에 단 한 번뿐인 사복데이. 그리고 학교 축제다.

동아리별로 다양한 체험과 공연을 즐긴단다. 진아는 학교 수업, 동아리활동, 급식시간,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것들 등 중학교 생활에 만족감이 높다. 중학생이 되어서 처음으로 축제라는 것을 하는 오늘은 애매모호한 컨디션이었지만 학교에 가야 한다. 사회동아리에서 하는 미니올림픽을 며칠전부터 기대하고 있었다. 진아가 주최자이기 때문에.

 



오후 1시 36분

연말 감사인사를 전할 곳이 있어서 단골 비건 빵집에서 선물할 빵을 고르는 중이었다.

카톡 카톡 카톡. 연달아 전송되는 카톡소리가 왠지 불길하게 느껴졌다.


엄마, 어디야. 나 아파서 조퇴했어.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이런 노래가사처럼 아침부터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었다.

버티다가 결국 조퇴했구나.

급히 계산을 하고 빵이 담긴 종이 가방을 낚아채듯 받아 들고 허둥지둥 집으로 갔다.


39.4도 고열에 어지러움을 호소하는 진아를 근근이 부축해서 병원으로 이동했다. 이렇게나 몸을 가누기조차 힘든데 왜 이제야 조퇴를 한 것이며, 학교에서 집까지는 어떻게 걸어왔을까.


의사 선생님은 더 물어볼 것도 없다며 독감키트를 가져왔다. 긴 면봉을 아이의 콧구멍에 넣고 냉혹하리만치 거세게 휘둘렀다. 기나긴 180초의 시간이 흘렀을까 인정하고 싶지 않은 A형 독감 판정을 받았다. 고열로 힘들어하는 아이를 보시며 의사 선생님은 효과가 빠른 플루 주사와 수액을 권하셨다.


진료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진아는 그대로 방에 들어갔다. 잠이 든 건지 몸을 침대에 올려둔 건지 모를 정도로 한 마디 말없이 뒤척임도 없이 39.4도에서 39.7도를 오가며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인 밤을 보냈다.





생후 80여 일이 지났을까

어느 날 늦은 오후 모유수유를 한 후  배 위에서 잠이 든 아이의 이마가 따끈했다. 체온 37.7도 동네 소아과에선 신생아 열은 위험하다며 대학병원에 가서 자세한 진료를 받아보라는 소견을 주셨다. 부랴부랴 대학병원에 갔지만 당일 진료 접수가 끝났고 응급실 접수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응급실에서 회진 중인 소아과 선생님을 기다리는 동안 열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아이에게 해주는 조치라고는 달랑 기저귀 하나를 걸치고 차가운 침대에서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이 모습에 화가 난 남편은 아이를 데리고 당장 집으로 돌아와 버렸다.


시골에 단 하나 있는 대학병원은 오진이 잦아서 애먼 사람 잡는다는 소문이 난 병원이었다.(이사를 해서 지금은 어떤지 모름) 그런 소문에 남편도 아마 불신했는 것 같다. 집에 오자마자 아이의 옷가지를 챙겨서 옆 도시에 소아과 병원 응급실을 찾았고 그 병원으로 이동하는 중 급격하게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체중이 고작 4.5 킬로그램에 40.2도 고열로 맥없이 처진 아기를 안고 당장에 숨을 멈추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함과 공포심에 휩싸여 눈물에 두 볼이 따가운지도 몰랐다. 고작 내가 할 수 있는 건 1초라도 빨리 병원에 도착해서 의사 선생님께 이 아기를 진료해주십사 하는 것뿐이라는 사실에 애간장이 탔다. 가는 도중 병원에 미리 전화를 해 두었고 위급한 상황이라 우선적으로 진료를 받았다. 뇌수막염이었다.




아이가 안 아프고 큰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마는 온갖 바이러스와 공생하는데 어찌 병치레 없이 말끔히  클 수 있겠나. 지금도 초보엄마이긴 매 한 가지지만 초 초 초보엄마일 때는 아픈 아이를 보면 어찌할 바 몰라 안절부절했다. 아이가 단체 생활을 시작하고 유행하는 전염병이 돌 때마다 병치레 횟수가 늘어났다.


미세하게 차이나는 체온, 훌쩍이는 콧물, 컹컹 기침소리, 가르랑 기침소리, 쐐쐐 숨소리.

엄마는 이제 아이의 증상을 보면 어느 병원을 가야 할지 입원을 할지 통원을 할지 대충의 지도가 그려진다.

켜켜이 경력이 쌓이고 엄마는 반 의사가 되어가고 엄마 손은 약손이 되어간다.


태아 때부터 보던 <임신출산 육아 대백과>  증상별 민간요법을 아직도 활용한다.


오늘 밤을 새우고 나면 새 해가 밝아온다.

고열로 뒤척임 없이 반듯하게 누워 숨을 근근이 쉬고 있는 아이의 이마에 찬 물수건을 올린다. 그리고 팔목과 넷째 손가락을 번갈아 문지르며 이야기한다.


너는 생명력이 강한 아이야.

2.3 킬로그램으로 4주나 빨리 세상에 태어났지만 제 힘으로 호흡을 했고

고작 생후 80일에 40도가 넘는 고열도 거뜬히 이겨냈거든.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됐을 때 39.4도가 넘는 고열을 잘 견뎌냈어.

넌 내일 아침엔 말쑥하게 나아서 '엄마 배고파 밥 먹고 싶어'라고 말하겠지.

그럼 엄마는 네가 좋아하는 들깨배추된장국을 준비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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