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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Jul 15. 2018

지리산 이야기

악양 / 애양을 만나다



늘 머물게 되는 가장 아끼는 한 곳이 있다.

떠나 있어도 문득 그리워 지는 곳, 지리산

그 중에서도 악양.

토박이들은 애양이라고 부르는 곳.

애양을 처음으로 만나고서 나도 이내 이 곳의 포근함에 빠져 버렸다.

그렇기에 내게 지리산은 곧 애양이다.


따사롭고 풍요로운 햇살이 가득하고 물이 맑으며 든든한 봉우리들이 감싸 안고 있는 이 곳.

그래서 그 안의 사람들도 유독 평화롭고 여유롭고 따스한 곳.

그 뛰어나고 전형적인 아름다운 풍광으로 소설을 드라마화한 < 토지 >의 최참판댁의 배경으로 나왔던 곳.



이 곳을 처음 찾아간 때는 지난 8월 말이었다.

지난하고 더운 여름의 끝무렵에 문득 지리산이 너무도 그리워지는 시점이었다.

정말 어제와 완연히 다른 오늘일만큼 급작스럽게 가고픈 마음이 안에서 끓고 있었다.

지리산은 내게 늘 그런 곳이다.

어느 날 가만히 조용히 따스하게 마음 속에 그리운 곳으로 자리하여 기분 좋은 느낌을 주다가

갑자기 당장 달려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곳.

그 곳만의 풍요와 여유로움이 주는 충전이 절실하게 필요해진 때였다.


애양의 숙소 이야기


그렇게 이틀 전에 급작스럽게 검색을 하다가 알게 된 곳이 바로 이번에 머물게 된 숙소였다.

녹차를 만드는 다원과 숙소를 겸하는 곳이었다.


그렇게 늘 마음 속에 기분 좋은 바람이 일렁이게 하는 곳 지리산으로 내려 갔다.

나는 나의 이런 즉흥성과 무모함을 사실 꽤 사랑한다. :)

덕분에 계획에 전혀 없던 지리산을 8월이 끝나갈 마지막 즈음에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악양의 숙소에 도착하니 아무도 없는 느낌이다. 

"사장님!"

불러도 답이 없다.

흠.. 그러면 해가 내려 가고 있으니, 동네 살짝 보다가 맞은 편 동네에 있는 형제봉 주막으로 바로 가자 싶었다. 그렇게 경사진 길을 내려 오다가 눈 앞에 드리워진 지리산 자락이 너무나 아름다워 

"우와!! :)"

하고 소리르 지르는 순간,

"헉!"

하고 말았다.

그만 차의 앞바퀴가 내리막길의 높은 턱에 걸쳐져 버렸고 그렇게 차의 범퍼 부분이 땅에 닿여 버렸다.

차의 앞부분만 댕강 앞으로 툭 떨어져 버렸다고 해야 할까?

처음 느껴 보는 요상한 느낌이었다.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너무 황당해서 '헉!' 그 이상의 말이 더이상 나오지를 않았다.



그때 윗쪽 정자에서 우리를 지켜 보고 계시던 할머니께서 세월이 소복히 내려 앉은 흰머리의 외양과 달리 후다닥 가장 먼저 달려 오셨다. 어찌나 빠르시던지. :)

그렇게 나는 그 곳에서 이 곳 주민들을 다 만나 뵙게 되었다.


"(손뼉을 마주치시며) 아이고 아이고!! 내 또 이럴 줄 알았지! 내 며칠 전에도 저기 정자에서 차가 빠지는 걸 봤었지. 보는 내가 얼마나 간이 떨린다고. 내가 그렇게 이 길을 고쳐야 된다고 해도. 놀랬제? 마이 놀랬을끼다. 이걸 고쳐야 될낀데."

"아이고. 또 이래 됐네."

"아 그 전에도 이런 적 있었어요?"

"그라모. 이 삼일 전에도 이랬었지. 똑같았어 지금이랑."


"아이고. 또 이랬어?"

'네, 안녕하세요.^^;'

"아 난 저기 뒷 집 살아."

(악수하며) '오랜마이네. 우째 지냈노?'


이런 풍경이 서너 번 벌어 지면서 서로 인사 나누시며 이런저런 얘기들을 두런두런 나누고 계신다.

이미 내 주변에 열 분 가까이 머무시거나 지나가신다.

"사람 불러야 겠네."

멀리서 OO 보험 담당자분께서 오셨다.

누가 봐도 기계로 차 앞 부분을 들어야 할 상황에서 그 분은 정말 신박할 정도의 방법으로 나무 판때기를 차 앞에 공궈서 놀라울 만큼의 비법으로 차를 제 자리로 돌려 놓으셨다.

정말 백년은 감수한 느낌이었다. 휴....

이 얼렁뚱땅한 상황이 나와 악양의 첫 만남이었다. :)



그러다 그 중 유난히 먼 듯 가까운 듯 계속 우리의 자리를 함께 지키고 계신 한 분이 계셨다.

이 상황과 그렇게 관련이 없으신 것 같은데 그래도 무던히 툭툭 던지는 말로 관심을 끝까지 가져 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세상에!! 그 분이 우리 숙소 주인이셨다!!


이 무뚝뚝함과 일관성 있는 관심의 중간 그 어디쯤이 무언가 낯설었다.

하지만 뭔가 모르게 마음이 편해 지는 부분도 있었다.

포근한 숙소를 기대했는데, 아니려나 싶은 느낌이 살짝 오기 시작한다.


그나저나 아마 그 길은 아직도 그럴 것이다.

아직도 할머니는 늘 마음을 졸이시며, 가끔 내달려 내려 오셔서 걱정을 하실테고

사람들은 '또 빠졌네' '얼른 고치야 된다' 하시면서도 또 그 곳을 지나가시는 분들과 잠시 모이고 반가운 얘기를 나누시는 장소가 되고 있을 것 같다.



여름 끝자락에 만난 악양의 해바라기


그만 이 곳의 주인분과 아들의 선함과 여유로움, 포근함의 매력에 빠져 버렸다. 

이탈리아에서 막 돌아 오신, 이 곳에서 가장 활발하고 싹싹하시고 추진력 있으신 젊은 피인 여사장님은 무려 부녀회장님이셨다.

그 분의 어머니같고 이모같은 따스함과 센스, 유쾌발랄함에 이 곳은 넘치게 여유롭고 따스한 곳으로 반짝거리게 되었다.


'창밖의 여인은 이만 사라지겠습니다.'

하고 돌아서 나가실 때 어찌나 빵 터졌던지. :)


여사장님이 숙소에 돌아오신 이후, 이 곳은 다원의 이 사진처럼 싱그러워졌고 밝고 기분 좋은 공기가 넘쳐 흘렀다. 그녀는 악양과 이 곳, 금향다원의 해바라기였다. 


세상에!

심지어 같은 창원 분이시다.

그 중 익숙한 지명을 얘기하시고, 몇 없었던 중학교 고등학교 이름을 얘기하시는데 어찌나 반가웠던지.

지리산 산골짝에서 너무나 이모같은 말투와 성격을 지니신 고향 분을 만날 줄이야!! 

악양은 내게 얼마나 더 따스해 지려고 그러는 것인가!! :)


이젠 내 집같은, 늘 그리운 곳, 금향다원.


저 황토방 구들의 매력에 한 번 빠지면 벗어나기 힘들다. 다음 날 몸이 그렇게 가뿐할 수가!!


9월의 지리산, 9월의 애양을 만나다!


9월의 지리산은 아직 여름의 기운이 완연했지만, 저녁에는 높은 산지대에 위치해서 서늘한 바람도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하는, 응축되어 있던 한여름의 에너지를 모두 다 분출하고 아주 조금씩 풍요로운 가을로 접어 들 준비를 하는 시기였다.

이 시기의 지리산은 배롱나무가 만들어낸 진분홍색과 파란 하늘이 대비되어 더없이 아름다웠다.

2년 전 남원 자락의 지리산에서 만났던 배롱나무로 인해, 나의 가을의 지리산은 곧 배롱나무가 어우러진 풍경이되었다.


악양의 더없이 풍요로운 들판.
나의 사랑 배롱나무와 탐스러운 석류를 만났다
화엄사는 언제나 그 자리에. 더없이 아름답고 편안한 사찰. 이 곳을 와야 지리산을 왔구나 싶은 곳이다. 
이렇게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풍경이 우리 나라 곳곳에도 얼마나 많은지. 저 겹겹의 기와의 선이 더없이 고상하고 아름답다.


지리산은 가는 곳마다, 가는 시기마다, 가는 시간마다 너무나 다양한 모습을 보여 주어, 그 아름다움에 아득해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그렇게 만났던 곳이 이 곳이다.

시골에 있는 외할머니집같은 곳.

이번 봄에도 그렇게 갑작스럽게 달려 갔더랬다

왠지 가야 할 것 같은 느낌.

이번에는 심지어 1박 2일이었다.

그 남쪽의 봄기운을 내 안에 담아야만 할 것 같아 여느 때처럼 급작스럽게 결정한 지리산 행이었다.



트립에 외국 친구들이 오면 우리는 한 절의 아름다운 전통 다실에서 다구를 이용하여 녹차를 천천히 내려서 함께 음미하는 시간을 갖는다.

우리가 마시는 녹차가 오는 곳이 바로 남쪽의 지리산 하동이었다.

우리 나라에서 차가 최초로 재배된 지역인 시배지가 자리한 곳이다.



우리는 이 녹차에 대해서 궁금해 졌었다.

직접 차나무를 만져 보고 싶었고, 찻잎을 따보고 싶었고, 가능하다면 차를 만드는 과정에도 참여해 보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념무상의 단순 작업에 나를 맡기고 내 생각을 내려 놓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서울로 올라 와서 사장님과 문자를 주고 받으며, 이런 말씀을 드리니 마침 일손이 정말 필요한 상황이라고 시간될 때 내려와서 도와줄 수 있느냐고 물으신다.

세상에!!!

늘 원했던 것이었는데, 정말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고요?


아 설렜다!! 너무!!

이제 빨리 내려갈 날짜를 잘 정하고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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