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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Jun 25. 2018

처음 만난 지리산

하동부터 함양까지

늘 머물게 되는, 가장 아끼는 한 곳이 있다.

떠나 있어도 문득 그리워 지는 곳, 지리산


이 곳을 제대로 깊게 처음 방문한 것은 작년 딱 이맘 때였던 5월 말.

지금까지 그 사이에 5번을 드나 들었으니, 평균적으로 2.5개월에 한 번 꼴로 이 곳으로 달려 갔다는 뜻이다.


불교 사진과 글을 의뢰받다

지금으로부터 딱 1년 전.

그 즈음 나는 불교 매거진 측으로부터 글을 의뢰받게 되었다. 동시에 가장 마음이 잘 맞는 절 친구가 같은 매거진측으로부터 표지 사진을 의뢰받게 되었다.

표지사진이라!

갑자기 고민에 빠졌다. 월간 매거진의 인상을 결정하게끔 하는 중요한 역할 아닌가.무엇보다 이 잡지의 성격에 맞는 대표 사진의 이미지를 잘 설정해서 그 느낌을 무언의 한 컷으로 담아내는 것이 필요했다.

그리고 절이라!

늘 불교 관련 사진을 찍어 오고 큰 스님들을 담아 오며 여러 사진들을 두루 찍어 오던 친구였지만, 뭔가 기분 좋은 새로운 긴장감이 느껴졌나 보다.

우리는 어디를 어떻게 찍을지 고민했는데 바로 한 곳으로 모아졌다!

바로 세월의 묵직한 아름다움을 가득 담은 사찰들이 가득 모여 있는 불교의 중심지 경상도!

그 중에서도 지리산이었다!

인도 동생의 사진에서는 산 아래로 구름이 낮고 짙게  휘감아 흐르며 훨씬 더 웅장한 느낌이었다.

사실 그 사이에 하나의 계기가 더 있기는 했다.

인도에서 만났던 아끼는 동생이 문득 지리산 자락에 있는 사진을 올렸는데, 그 모습이 한때 내가 너무나 좋아했던 마날리라고 하는 인도의 히말라야 자락의 느낌과 너무나 비슷한 것이다.

새벽녘에 눈을 떠 그 사진을 보게 된 나는 비몽사몽이었지만서도 본능적으로 여기를 꼭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무언가 일상에 젖어 들면서 설렘이라는 것이 줄어 들고 있었던 상황에서 이 곳이 모처럼 나의 두근거림을 되살려 줄 불씨가 되어줄 것만 같은 강렬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직관을 믿는 사람이었고, 이것이 지리산과의 제대로 된 첫 인연을 이어 주는 계기가 되었다.


지리산의 사찰과 음식 (음식은 늘 가장 중요한 즐거움! :)) 에 대한 책들을 한가득 쌓아 놓고 방문해야 할 곳들을 추려 가기 시작했다.

그러면도 동시에 실감했다.

인식하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이 곳 지리산에 대해서 참 많이 모르는구나 하는 사실.



여행자들의 종착지, 지리산?

배낭 여행을 다닐 때면, 그렇게 자연이 좋아 사람이 좋아 떠돌던 사람들이 한국으로 돌아 와서 지리산의 품에 안겨 있는 경우가 많았다.

'도대체 그 곳의 매력이 뭐길래, 다들 지리산이래?'

싶었다, 처음에는.


창원이 고향인 내게 지리산은 여름 휴가로 가는 계곡이 있는 산자락이었으며, 친구 아버지가 조그만 집을 짓고 계시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 그런 친숙해서 적당히 가깝고 내가 알던 바는 실제로 거의 없었기에 적당히 먼 그런 곳이었다.


더구나 지리산은 '어머니와 같은 산'이라고 일컬어 지는 곳이 아니던가.

히말라야 자락을 여러 차례 드나 들면서, 나는 내가 웅장하고 남성적인 악산에서 훨씬 더 편안함을 느낀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터였다. 그 차이는 에베레스트 지역과 안나푸르나 지역에 대한 나의 느낌에서 분명히 드러나는 것이었다.

(물론 두 곳 다 이 세상 다시 없을만큼 내게 가장 아름답고 귀한 곳이다. :))

나 또 그 지역의 기운, 에너지 이런 거 무지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그건 본능적으로 느껴지게 마련인데, 그냥 내가 편안하고 뭔가 좋은 느낌이 가득한 곳이 곧 내게 맞는 곳이라는 생각이다.

그런데 지리산은 험하다기 보다는 매우 완만한 능선으로 넓고 길게 이어지는 산자락이고 누구든지 따뜻하고 포근하게 품어주는 더없이 여성스러운 느낌의 산이 아니던가.



일단 남쪽으로 달렸다!

모든 것이 반짝반짝 빛나는 새싹과 신록의 계절 5월에 그렇게 우리는 차를 몰아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갔다.

그렇게 가장 처음 들른 곳이 바로 이 곳!

칠불사!

가야시대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모두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얽혀 있을 만큼 더없이 오래된 고찰이며 선찰의 느낌이 한가득인 곳이다.

이렇게 고즈넉하고 정갈하며 조용한 느낌이 물씬하는 절일 것이라고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었다.

이 곳이 지니고 있는 느낌이 너무나 좋았다.


절 친구인 우리는 이 곳에 앉아 잠시 마음을 비우는 시간을 가졌다. 머리가 명쾌해지면서 기분 좋게 맑아지는 느낌. 한없이 한없이 시간을 보내고 머무르고 싶어지는 곳이었다.

이렇게 해야 더 가지런하고 애정어린 눈으로 절을 볼 수 있고, 훨씬 더 나은 결과물 또한 얻을 수 있다고 친구는 이야기한다.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


부처님 오신날이 조금 지났던 5월의 어느 날의 칠불사. 입구부터 단아하고 정갈한 느낌이다.
작지만 고즈넉했던 경내.
5월의 계절에 맞게 절 안팎으로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해 있었다.

음식과 술은 그것이 무엇이든, 고된 노동 후의 것이 가장 맛있는 법! :)

그렇게 숙소로 돌아와 멋진 풍광을 눈앞에 두고 맛깔스러운 음식과 이 곳만의 막걸리와 함께 세상 행복한 저녁 시간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을 맞았다.



(지리산 음식 부분은 이 다음 글에서 자세히!

여행에서 음식은 가장 소중한 부분이니까 :))



장미향을 지니고 온 그녀, 장미 언니!

우리는 장미 언니라는 묘령의 여인을 만나게 되었다. 불가리아에서 장미향을 담아 온 그녀, Rose!


그녀와의 첫 만남이 얼마나 재미있었던지.

맑디 맑은 공기 덕분인지 아침에 나답지 않게 일찍 눈을 뜬 나는 숙소 테라스로 나와 마을을 둘러 볼 참이었다. 그 때 어디선가 국악 소리가 들려 오고, 저 멀리 한 여인이 밀짚모자를 쓰고 아침잠도 없이 벌써부터 녹차잎을 따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어찌나 차분하고 능숙하게 일을 하고 있던지.

나는 단번에 알아챘다. 저 분이 사장님의 사모님이구나!! :)


하동 녹차밭의 너무나 흔한 아침 풍경

그런데 반전!

사실 그녀는 우리 숙소의 매니저로 머물고 있는 언니였다.

도대체 그럼 그 익숙한 손짓과 지리산 스웩은 어디서 흘러 나온 거지??!! :)

언니는 여행하듯이 지리산에서 잠시 머물며 살아 보고 싶어 이미 세 달 정도 머무르고 있단다. 사실 언니는 작년 가을께까지 이 곳에서 원없이 머무시고, 또 훌훌 떠나셨다 사실! 장미향을 지닌 바람 같은 그녀다! :)

아끼는 인도 동생을 통해 이미 들은 바가 있어, 우리는 생각보다 처음부터 편해졌고 빠꼼이이자 최고 밝고 싹싹한 언니의 캐릭터로 만난지 20분 만에 이 곳 하동의 맛집 지도를 다 꿰어낼 판이었다.


다시 촬영 얘기로 돌아 와서! :)

우리는 이 곳에 촬영을 하러 왔다.

장미 언니가 사성암 이라는 곳을 추천한다.

이 곳에서 유명한 곳이란다.

그리고 그 전에 지인 비구니 스님께서 구례 산 꼭대기에 살고 계시는데 오랜만에 찾아 간다며 함께 가잔다. 딱히 정해진 일정이 없던 우리는 고마운 마음으로 따라 나섰다. 감사한 하루!


하동과 구례는 붙어 있다. 그렇게 하동의 끝자락에 쌍계사가 있고, 구례의 초입에 화엄사가 있는 모습이다.

구례를 가로 질러 반대쪽으로 한참 가서 산으로 차를 몰아 가니, 정말 가장 위쪽에 거짓말같이 집 하나가 있다.

그 곳에서 만난 풍경들! 아름답고 정갈하게 살아 가시는 비구니 스님과의 만남은 참으로 담백하고 그 집의 꾸밈새만큼이나 정갈했다.

온갖 꽃들이 만발하고, 수레국화와 작약이 한가득이었던 아름다운 정원

그리고 사성암으로!

솔직히 얘기한다. 이런 인위적인 건축은 자연스러움과 시간의 덧입힘을 추구하는 우리의 취향이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유명한 곳이라고 하는 것은 한 번쯤 가볼만한 이유는 된다.

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구례를 돌아 가는 섬진강이 서울에서는 느낄 수 없는 완만하고 느릿느릿한 속도로 흘러 가는 느낌이다. 모든 것이 그저 별세상처럼 멈추어 있는 느낌.

다시 해를 따라 하동쪽으로 섬진강을 따라 차를 달린다. 여유로운 5월의 남쪽 봄햇살이 그렇게나 따스하고 아름다울 수가 없다. 차 밖으로 보이는 연두빛, 초록빛 나무들의 표면은 햇살을 받아 반짝인다. 그렇게 시골길의 여유를 만끽하며 더운 한낮의 기운을 하드 하나로 축이며 시골 정자에서 한참을 보낸다.



그 다음날은 하동에서 북쪽으로 올라와 함양의 지리산 자락으로 향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궁금했던 벽송사!

우리 나라에서 손꼽히는 선찰이며, 역사적으로도 우리 나라 불교 선종의 중심지로 자리해 온 특별한 사찰이다.


이렇게나 힘이 넘치고 정갈하며 명징한 느낌이 드는 곳일 수가!

우리는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며 수많은 사진을 찍고, 앉았다가 돌아 다녔다가 또 앉았다가 하며 떠날 줄을 몰랐다. 이런 대단한 곳에 드디어 왔다는 것이 부끄럽기도 했고 다행스럽다는 느낌이 동시에 들었다.

벽송사의 아름답고 기개 어린 장군송과 미인송


바로 맞은 편에 위치한 작지만 많은 선승들이 다녀 가셨다는 금대암으로 가보기로 했다.

사실 금대암이 유명한 이유는 바로 이 전나무일 것이다. 500년이 넘었다는, 무려 40m가 넘게 곧게 수직으로 치솟은 세월의 힘을 온 몸으로 보여 주는 이 전나무!

아무리 밑에서 보고 또 봐도 그 높이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잡지 표지 사진은 벽송사에서 찍은 컷으로 결정됐다. :)


지리산은 세월의 자락이 겹겹이 내려 앉아 있는 불교 사찰들이 곳곳에 그득히 안겨 있는 보석같은 곳이었다. 아름다운 절들 덕분에 청명하고 담백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은 지리산만이 가진 매력일 것이다.


언제고 또 문득, 당장 달려 가야 할 것처럼 마음 속에 툭 들어올 지리산! 그렇게 또 그 곳에서 특별하고 소중한 인연들을 자연스레 만나게 될 테고, 이 곳은 내게 어머니의 품같은 편안함을 안겨 줄 것이다.

억지스러움이 없고 뭐든지 자연스럽고 편안한 곳!


이렇게 좋아하고 아낄 수 있는 곳을 마음 깊이 품을 수 있는 것은 참 행복하고 든든한 일이라는 생각이 다. 초여름의 지리산은 한참 짙은 녹색으로 반짝이고 있겠지 하며 떠올리게 되는 지금이다.



@gracejieun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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