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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Aug 16. 2018

지리산에서 녹차를 만들어 보다

녹차 체험! 자의 반 타의 반 권유 받다

그렇게 곧장 친구에게 한껏 설레어 하며 금향다원 여사장님과의 대화를 전했다.

"글쎄, 우리보고 녹차 따는 걸 도와 줄 수 있느냐고 물으셨어!!!"

오히려 우리가 부탁드려야 할 부분인데, 부담갖지 않도록 이렇게 따스하게 말씀해 주시는 것이 너무나 고마웠다.


아래는 문자 내용.

"녹차 정말이지요? 도와 주실 수 있나요? 농촌 체험 어떠세요?

짜투리 시간도 콜.

귀한 시간 마음 고맙습니다.

차 잘 만들어 보아요. 환영합니다."

이런 배려 어린 말투와 적당한 쿨함 그 중간쯤에 있는 여사장님의 그 마음과 화법이 늘 참 좋았다.


이제 시간을 정하는 일만 남았다라고 하기엔, 상상 속의 우리는 이미 악양 금향다원에서 이미 녹찻잎을 따고 있는 중이었다. :)

그래서 바로 일주일 뒤, 다시 그 장거리를 내달려 바로 금향다원에 도착해 버렸다.

이런 무모함과 추진력!

내 자신이지만 이런 부분은 참 무식한 듯 좋다! :)


정말 일주일 뒤, 또 악양에

아침잠이 늘 많은 나인지라, 이미 지리산에 도착하고 보니 늦은 오후였다.

마침 사장님은 근처 초등학교에 차와 다도에 관한 수업을 해주러 가셨다고 해서 부재중이셨다.

놀러온 것이 아니라 도와 드리러 온 건데, 좀 더 서두를 껄 하는 후회를 하고 있는 찰나에 너무나 감사하게도 여사장님 동생분께서 무려 녹차 포장하는 걸 도와 달라고 하셨다.


친구와 나 사이에서는 선비님으로 불리는 분!

1년 전 이 곳 금향다원을 처음 방문했던 늦여름, 우리에게 본인의 정갈하고 운치 있는 시골집에서 차를 직접 정말 맛있게 우려서 대접해 주셨던 분이다. 성품이 어찌나 여유롭고 점잖고 선하신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선비같은 분이었기에 우리는 그 이후로 이분을 선비라고 불렀다. 물론 본인은 아직도 이런 사실을 모르신다. :)


그렇게 선비님을 따라서 작은 간이 건물 안으로 들어 가니, 각종 차가 빼곡히 저장되어 있고 포장 용기들, 그리고 용량을 재기 위한 저울이 놓여 있었다. 우리의 첫 시도는 세작 녹차였다. 차의 품종을 알려 주는 '세작'이라는 스티커를 포장 용기에 먼저 모두 붙이고 그 포장 용기 안에 차를 어림 대중으로 담기 시작했다. 몇 번 하다 보니 눈대중 손대중으로 1g 단위까지 정확히 맞춰서 담을 수 있는 깜냥 정도는 되어 갔다. 손발이 나름 척척 맞아 갔고, 생각보다 우리에게 자신감을 심어 주는 기분 좋은 워밍업이 되어 주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잠시 또 구들방에서 쉬라고 하신다.

흐음... :)


이 날 저녁밥 사진은 없지만,  매끼가 늘 이렇게 초유기농 건강하고 가장 맛깔스러운 음식들의 향연이었다! :)

그렇게 한 것도 아무 것도 없는데 돌아오신 여사장님께서 저녁을 먹으라고 불러 주신다.

선비님이 제육볶음을 만드셨다는데, 세상 맛있다!

그저 김치와 슥삭 볶으셨다고 할 뿐인데, 최근 먹은 가장 맛좋은 음식이었다!!

선비님은 음식까지 잘 하시네!

이 맛난 김치를 만드신 여사장님의 솜씨인 건가?!

아무튼, 악양 ‘가족분들의’ 제육볶음은 진심으로 최고였다.

그리고 옵션이 아니라 필수코스로 막걸리 두 병을 미리 식탁 위에 딱 꺼내 놓은 여사장님!

역시 센스 최고시다!! :)

기분 좋게 3일 동안 잘 해보자고 하시며, 잔을 채워 주시고 우리는 함께 건배를 했다.


차 덖는 시간, 우리의 쓸모를 찾다!

그렇게 살짝의 막걸리 덕분으로 기분 좋은 취기와 에너지를 얻자마자

우리는 차를 덖는 공간으로 자리를 옮겼다.

사실 우리는 오늘 어떤 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일정을 가늠할 수 없었던 우리는 그렇게 어느새 스르륵 그 공간으로 가 있었다. :)

후다닥 저녁 시간을, 그 맛난 음식들과 술을 앞에 두고 꽤 전투적으로 먹고 마무리하고 난 후 가족들이 서둘러 안내한 곳으로 우리도 따라 들어갔다.


이제 우리의 나름의 지리산 Working Holiday이자 Tea Farm Stay의 하이라이트!!

차덖기의 시간이었다!!


녹차 농사의 성수기는 4월 중순에서 5월 중순 즈음이다.

이 때에는 그 날 수확한 녹찻잎은 당일에 바로 금용할 수 있는 녹차로 완성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그 날의 수확한 녹차의 작업량에 따라 그 이후 저녁의 일정이 결정되는 그런 형태이다.

늘 여유로우신 여사장님도 오늘만큼은 넘쳐 나는 일의 양이 눈에 보이시니, 일분 일초를 아껴서 일을 시작하시는 듯했다.

우리는 이 일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얼마나 많은 양의 일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일의 흐름을 채 익히기도 전에, '바구니를 이 쪽으로 가지고 와서 잡고 있어요' 라고 하신 덕분에 무쇠솥에서 덖어진 녹차들을 내 인생 처음으로 대면하게 되었다.

내가 아는 완성된 녹차와는 너무도 다른 낯선 모습이었다!

무엇보다 그 진하고 진하면서도 향긋한, 마치 내가 풀잎들 사이에 감싸져 있는 듯한 그 후각적 첫 대면을 쉬이 잊지 못할 것 같다.

너무나 진하지만 자연스럽고 깊은 그런 향이었다.

인공적인 향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어 마음까지 편해질 것 같은 그런 포근한 향.


이런 녹차의 모습만 알다가 처음 마주한 덖은 녹찻잎은 참 새로웠다. 치열한 시간이어서 사진을 찍을 시간같은 건 전혀 없어서 좀 아쉽긴 하지만. :)

덖어진 상태의 녹찻잎은 무려 400도에 육박하는 온도를 거치고 나왔기에 모두 뜨끈뜨끈한 상태에서 한데 뭉쳐져 있다. 떡과 같은 상태라고 해야 하려나?

이제 이것들을 좀 식힐 차례다!

양이 조금이 아닌지라, 큰 자리를 펴고 거기에 소쿠리를 뒤집어서 엉겨 붙어 있어 김이 폴폴 날리는 녹찻잎을 일단 얇게 퍼지게끔 흩뿌려 놓고 식히는 과정이다.

이렇게 말로 풀어 가다 보니, 이 과정을 꽤 쫓아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지금에서야 들지만, 처음에 이 알 수 없는 과정에 투입되었던 우리로서는 하나하나가 어찌나 빠르고 정신없이 진행되는지 헉헉거릴 정도였다.

무엇보다 정확한 타이밍은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특히 차를 덖을 때!!

조금이라도 더 덖어 지거나 늦게 찻잎을 건지게 되면 최상의 차맛을 낼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두런두런, 지리산의 첫날 밤!

휘몰아치는 시간이 지나 가고 조금은 여유로운 시간이 찾아 왔다.

차덖기가 끝나고 뜨거운 찻잎들을 자리에 층층이 모두 풀어 놓고 다같이 자리에 둘러 앉아 서로 엉켜진 찻잎들을 뜯어 낼 때쯤에서야 엉덩이를 제대로 붙일 수 있게 되었다.

드디어 서로 두런두런 웃으면서 얘기하고 일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는 이야기다. :)


여사장님의 챙겨 주시는 배려와 싹싹함은 마치 딱 우리 이모의 느낌과 같았다.

어찌나 유쾌하고 따뜻하고 진심으로 상대를 생각해 주시는지 그 마음이 그대로 묻어 나는 듯했다.

말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말투와 눈빛에서 그 분의 마음이 곳곳에 다 느껴져서 그저 고맙고 마음이 뜨끈해지는 시간들이었다.

그 와중에 역시 선비님은 그 특유의 여유로움과 집중하신 모습으로 본인의 일을 묵묵히 하고 계셨다.

금향다원의 아드님은 느릿느릿 하지만 엄청나게 배려 깊은 말로 조곤조곤 너무나 기분 좋은 말벗이 되어 주었다.


역시 우리 모두는 산을 찾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인가 보다.

한때 중국에서 공부하고 살아 보았던 아드님은 차마고도의 윈난성과 사랑에 빠졌다고 했다.

나 역시 언제나 그립고 너무나 사랑하는 이 곳에 대한 이야기로 오랜만에 기분 좋은 여행의 기억들을 떠올리고 함께 조합해 나간다.

정말 다재다능한 이 집 아드님은 중국에서 요리 유학 후, 차마고도 자락의 한 지역에서 살아 보았다고 했다.

무언가 이 조합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 굉장히 오랜만에 진짜 친구이자 가족과 함께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다행이었던 건, 우리가 나름 이 곳에서 쓸모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민폐를 끼치는 날라리 노동력은 아니었다는 것!!

과장이 아니라 진짜 다행인 일이었다. :)



1시 즈음 되어 작업장에서 나오자, 지리산의 밤은 칠흙같이 까맣게 기울어 있었다.

저어기 높디 높은 곳에 달이 너무나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고, 사랑스러운 별들이 알알이 박혀 있는 그런 밤이었다.

참으로 아름답고 달큰한 밤이라는 생각이 드는 밤이었다.


드디어 직접 녹찻잎을 내 손으로 수확하다!

그 다음 날은 찻잎 따기!

머리 속에 그려 왔던 전형적인 녹차 체험이었다.

우리가 그리 미더워 보이지 않았으리라는 건 이해한다. :) 넓디 넓은 차밭으로 가겠지 하는 예상과는 달리, 집 바로 뒤에 있는 조그만 야생차밭으로 우리를 안내해 주셨다.

그리고 어떤 잎들을 어떻게 따야 하는지 설명을 해주시고 여사장님은 유유히 돌아 서셨다.


우리가 생각한, 오늘 일할 차밭의 이미지는 이런 것이었다!
허나 현실은... :) 집 뒤에 있는 조그만 야생 차밭! 알고 보니, 딱 우리의 눈높이에 맞는 곳이었다!  :)

그런데!!

두 사람이 함께 두 팔 벌린 너비 정도의 차밭이었는데 찻잎을 하나하나 따다 보니, 얼마나 오래 걸리던지!!

쉬이 끝이 보이지 않는다.

여사장님이 우리를 과소평가하신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드니, 괜히 다시 뿌듯해진다. :)

아닌가?? 있는 그대로 판단하시고, 이 작은 차밭을 맡기신 건가?^^;;;

그렇게 햇살이 내리 쬐는 동안 몇 시간 동안 녹찻잎을 따고 있자니, 여사장님께서 건강한 유기농 토마토즙을 갖지고 와서 직접 먹여 주신다.


몇 시간 동안 작업한 양. 동네 할머니들은 하루에 10kg를 작업하신다고 한다. 무려 식사도 건너 뛰시고!


우리에게도 그저 재미있는 놀이는 아니었다. 정말 열심히 집중해서 재빠르게 땄다!!! :)


저녁은 바베큐지요!

저녁 식사까지 폐를 끼치는 건 아닌 것 같아서, 근처 식당으로 나가려던 찰나에 딱 걸렸다! :)

그러시면서 하시는 말씀!

"아들이 돼지고기 사러 갔어. 저 마당에서 바베큐 해서 먹어 재미나게!"

"네??!!! 언제 또 고기를 사러... 사도 저희가 사야지요.ㅠㅠ"

아이고. 그저 감사하고 죄송하고 그렇다.

받는 것만 한가득인 시간이다.

그저 이 곳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마음이 가득차는 일인데.

지리산 자락을 바라 보는 자리에서 바베큐 준비! :
그리운 시간. 지리산 가족들께 감사하고 또 감사한 시간. :)

뭐 맛을 언급해 뭐하겠는가!

최고지 최고! :)

목살이 맛없기도 힘들지.

야외 바베큐가 맛없기도 힘들지.

지리산 안에서 지리산을 배경 삼아 먹는데 맛없기도 힘들지.

악양 가족분들의 마음이 그득그득 담겨 있는 저녁인데 얼마나 맛있게.

쉐프 출신 악양 아드님이 전담해서 숯불향나게 구워 주는데 얼마나 얼마나 맛있게.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 나누면서 맛있는 음식을 함께 하며 시간이 익어 가는데 얼마나 맛있게.

또 저 막걸리는 왜 이리 맛있게. :)


그렇게 악양의 녹차 농사를 도와 드리는 듯, 휴양을 취하는 듯하는 금향다원에서의 2박 3일이 정말 순식간에 지나갔다. 뭐, 지리산에서의 시간은 늘 그러니 이제 놀랍지도 않다. 그리고 짧게 머물든 오래 머물든 떠날 때에는 늘 '하루만 더'를 외치면서 떠난다는 걸 알기에 익숙한 그 아쉬움으로 떠날 준비를 한다.

떠날 때에도 두 손 무겁게 해주신 사모님!

언제나 생각날, 몸은 멀리 있어도 마음으로는 그리게 될 곳이라는 예감은 더욱 진해진 채, 그렇게 양평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족분들의 마음 모두, 지금까지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요! 잊지 못할, 아름답고 의미있는 시간이었어요!

정말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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