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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Aug 20. 2018

지중해의 여름, 책 <행복의 충격>

한여름이 그나마 반가운 한 가지 이유

정말 처음 겪어 보는 타는 듯한 여름의 한가운데에 있는 요즘이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더우니 묘한 쾌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뜨겁고 강렬한 햇살이 타는 듯이 내리쬘 때면, 나도 모르게 다시금 집어 들게 되는 책이 있다.

바로 김화영 작가의 <행복의 충격>이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내게는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다.

하지만 분명히 나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구절들을 그득 포함하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이 안에 알알이 박혀 있는 정제된 표현들과 문장들을 찬찬히 따라 읽어 가다 보면, 이 뜨거운 여름의 열기에 대한 부정적인 느낌이 한 풀 가라 앉고 이 한여름의 절정이 조금은 더 감사하고 따사롭게 다가 오는 느낌이다.

여름이 얼마나 생기 넘치고 약동하는 아름다운 계절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 계절 즈음 이 책의 문장들을 다시금 음미해 보게 되는 시간을 참 사랑한다.

이 문장의 맛은 이 때가 되어서야 가장 있는 그대로 와닿는 듯하다.

그렇기에 이 여름을 반가워할 수 있는 한 가지 이유가 된다 내겐.

누구에게나 계절마다 떠올릴 수 있는 자신만의 책 한 권이 있다면, 각 계절을 맞이하는 설렘과 기쁨이 꽤 크지 않을까 싶다.

아직 여름의 책이 없다면 그나마 조금 시원한 곳에서 이 책을 찬찬히 따라 읽어 나가보면 어떨까?


내가 좋아하는 몇몇 구절들을 옮겨 본다. :)




영혼의 깊숙한 곳에서 일찍이 꿈꾸어 본 일이 없는 풍경이나 공간을 우리는 참으로 볼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하나의 꿈이 어떤 현실의 풍경과 서로 만나는 사랑의 기록이다. - 책머리     


당신은 혹시 보았는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자라나는 그 잘 익은 별을.

혹은 그 넘실거리는 바다를.

그 때 나지막이 발음해보라.

“청춘.”

그 말 속에 부는 바람 소리가 당신의 영혼에 폭풍을 몰고 올 때까지.     


“행복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 라는 사실.

행복이라는 말이 넘쳐 흐르는 요즘, 거침없이 가감없이 ‘행복’을 마주했던 한 청춘의 기록이 내 마음을 뜨겁게 울렸다.     


‘행복의 외침으로 천지가 진동하는 듯한 이 열린 풍경, 아무 것도 감춘 것 없는 전라의 풍경 속에서’     


행복이 완만한 속도로 꽃향기처럼 스며 나오는 곳이 아니었다.

그곳은 내일의 행복을 준비하는 사람이 올 곳은 아니었다.

지금 당장, 여기서, 행복한 사람의 땅이었다.     


빛 속에 누려야 할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도 촉박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 곳에서 처음으로 슬픔뿐만 아니라 행복도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임을 확인하게 된다.     


레보드프로방스에서 지방도로를 따라 서남쪽으로 아를을 향하여 불과 몇 킬로미터를 달리면 점차로 알피유 고원을 벗어나면서 풍경이 부드러워지기 시작한다. 드넓은 초원에 띄엄띄엄 시프레나무나 마른 갈대로 된 방풍벽들이 나타나고 먼 지평선 위에는 다른 곳에서 보기 드문 크고 뻘건 저녁 해가 수줍은 듯이 슬금슬금 따라온다.         


수년 후에는 내 청춘의 가장 행복한 시절이 늙지 않고 잠겨 있는 곳이 될 이 소도시에 나는 이처럼 수줍고 말없이 도착하였다.     



그리고 김화영 작가가 가장 하고 싶었던 말, 그가 지중해 그리고 프로방스에 대해 품고 있는 마음.

그 모든 것이 집약되어 이 책의 내용을 포괄하는 구절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읽을 때마다 설레는 그의 단언적인 구절.

어느 장소에 대해서, 이렇게 확언하며 얘기할 수 있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오랜 시공간을 할애하여 이 곳에 대한 기억과 연정을 쌓아왔다는 이야기일까.

자신의 온 인생을 관통하여 이런 곳 한 곳을 마음에 품고 상징처럼 여길 수 있는 그는 정말 행복한 사람일 꺼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정의 어둠 속에도 지중해는 항상 최초의 아침이다.

내 최초의 영원한, 내 최초의 청춘이다.     




이 맘때면 떠오르는 글이 있다.

작년 딱 이 시기에 한 잡지로부터 세계 각지의 문화를 함께 풀어낼 수 있는 섹션을 1년간 연재해달라는 의뢰를 받았었다.

마침 갤러리 일을 끝내고 캄보디아와 태국에서 오랫동안 머물 요량으로 나가 있던 차였다.

출국해서 시엠립에 도착한 다음 날 관련 전화를 받았다.


머리 속에는 평소 내가 갖고 있던 관심사들을 어떻게 풀어낼까 싶어 꽤 두근거렸다.

나름 역사, 미술사 전공에, 음식, 건축, 예술 등 다방면에 아주 넓지만 얕은 지식을 지닌 나다. :)

얕디 얕지만, 툭툭 건드릴 수 있는 나의 호기심 어린 분야는 참 많다.

한끝이 부족할 때도 있지만, 나는 이런 나의 성향을 이제서야 퍽 좋아하는 것도 사실이다.ㅎㅎ


식민지의 영향으로 풍성한 문화적 지층을 지닌, 내가 사랑하는 아름다운 도시들.

실크로드 이전의 가장 오래된 문명 교역로였던 티벳과 중국 서부의 사천성, 운남성을 이어 주던 차마고도에 얽힌 이야기.

내가 사랑하는 화가와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배경지에 관한 이야기.

프랑스의 아르누보와 각 유럽의 비슷한 흐름의 건축에 대한 이야기.

등등.


내가 가장 흥미로워 하는 주제들과 관련된 참 많은 이야기를 풀어 내어 볼 수 있는 판이 마련된 듯해서 참 기뻤다. 오히려 틀이나 제한이 없다고 제안해 주셔서 참 좋아했었는데. :)

결국 이런저런 상황 상, 내가 고사하는 걸로 마무리되기는 했다.

그나저나 당시 시작하는 연재의 가장 첫 글은 그 어떤 주제보다도 이 한여름과 가장 어울리는 책 <행복의 충격>이 떠올라서 써내려 갔더랬다.



마감 기간이 다 되어 가던 시기에 머물고 있던 방콕에서 나름 며칠을 이 글에만 신경을 쏟으며 까페에서 머물렀던 시간들이 함께 기분 좋게 떠오른다. 방콕의 사판탁신 역(사톤 정거장)에서 페리를 타고 건너 가면 잼 팩토리 (Jam Factory) 라고 하는 재미있는 장소가 있다. 편집샵 겸 서점 겸 갤러리 겸 까페인 곳. 나름 태국 젊은 층이 어떻게 문화를 향유하려고 하는지 그 움직임을 알 수 있는 곳이랄까.

그 곳의 시원하디 시원한 에어컨과 음료에 기대어 초집중하여 끝낼 수 있었기에, 이 곳에 대한 애틋함이 나름 있다.


https://brunch.co.kr/@gracejieun8/57



그 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요즈음 한국'의 첫 여름을 올해 비로소 맞이하는 느낌이다.

여름을 여름답게 잘 넘어가다 보면,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답고 소중한 가을이 가까이 와있지 않을까?

조금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필요한 때인 듯하다.

그래서 나는 이 한여름을 한 번 진하게 누려볼 작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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