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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Sep 07. 2017

한여름날 프로방스의 찬란했던 순간들

  무언가 이 여름 행복의 절정에 멈춘 곳에서 풍요롭게 세상의 아름다움을 찬탄하고, 그 행복을 내 안에 고스란히 담아 보고 싶다는 바람이 들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꿈에 그리던 남프랑스의 지중해에 가보기로 결심했다. 아껴 가며 읽었던 김화영 작가의 책 『행복의 충격』에서 그가 ‘자정의 어둠 속에도 항상 최초의 아침이자, 내 최초의 영원한 청춘’이라고 찬탄한 지중해는 과연 어떤 곳일지 늘 궁금했었다.


  ‘지중해는, 빛 속의 지중해는, 바람 속의 올리브나무 골짜기는, 모든 것의 출발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모든 것이 이르는 목적지이다. ... 그래서 그 햇빛, 그 바람, 그 나무, 그 돌들의 시원 지중해는 덧없고 행복한 생명들의 ‘중심’이다.’


  프랑스 문학과 까뮈 전문가인 작가가 얘기하는 행복한 생명들의 중심을 직접 경험하고 싶었다. 프랑스 친구의 추천을 받고 당장 기차표를 끊어 남쪽으로 내려갔다.     


햇살을 품은 마을을 걷다, 꺄시 Cassis


  오후 2시, 프로방스의 태양이 작열하는 시각에 나는 아름다운 지중해의 작은 마을 꺄시에 도착했다. 이국적인 생동감을 지녔던 마르세유를 거쳐 오는 길이었다. 마르세유는 기원전 6세기 그리스가 건설한 대외무역의 중심지이자 서유럽, 아프리카, 아시아를 잇는 항구도시이다. 스물이 갓 넘은 청년들이 매일같이 항구를 드나드는 배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끝없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미지의 세계를 향해 떠나지 않고는 못 배겨 끝내 세상을 향한 배에 몸을 싣게 될 그 마르세유였다. 두근거림과 역동성을 내 안에 고이고이 눌러 담아 삶에 대한 빛나는 열정과 호기심을 간직하자고 되뇌었던, 청춘의 가슴을 두드리는 마르세유를 간직하고 오는 길이었다.


  꺄시는 햇살의 톤부터 더욱 온화하고 부드러운 곳이었다. 지중해풍의 알록달록한 색감으로 생기 넘치는 숙소에 짐을 풀었다. 결국 호기심을 못 이기고 동네를 둘러볼 요량으로 산책을 나선다. 이 아름다운 여린 노란빛의 색감이라니! 고양이도 낮잠에 빠질 수밖에 없는 나른함이 온 동네를 감싸고 있었다. 마르세유에서의 역동적 긴장감에서 벗어나 마음의 긴장이 스르르 풀리면서 기분 좋은 편안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작은 마을에는 여유와 미소가 기분 좋게 떠다니고 있었다. 이 곳의 모든 것은 빛이 지배하고 있었다. 부드럽고 온화한 톤의 건물, 유리처럼 찬란하게 반짝이는 청록빛 바다, 그 안의 여유로운 미소를 간직한 사람들까지. 이 따스한 햇살과 언제나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의 흐름을 멈추고 싶은 순간이었다. 이렇게 나는 또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이 곳 남프랑스에서조차 작은 욕심을 내어 보았다.

  느릿느릿 골목길을 산책하다가 문득 집들의 창문이 눈에 들어온다. 미스트랄(Mistral)을 견디기 위한 창문들이었다. 미스트랄은 프랑스 남동부에 부는 연안풍으로 겨울부터 봄에 걸쳐 알프스 산맥에서부터 지중해로 불어 내리는 심술궂은 폭군과 같다고 하는 세찬 바람이다. 하지만 이들의 여름이 이렇게나 반짝이고 찬란할 수 있는 것은 그 혹독한 미스트랄을 보낸 후의 축제와 같은 것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찬란한 여름과 같은 행복을 배우다


  사실 꺄시는 파도의 침식작용으로 만들어진 바위절벽의 좁고 긴 만인 깔랑끄(Calanques)로 유명한 지중해의 보석같은 곳이다. 그 바위 절벽들은 곳곳에 에메랄드빛 해안을 비밀스럽게 품고 있는데 그 곳들을 가볼 계획으로 트레킹을 나섰다. 두 시간 여를 걷자 해안선의 험준한 바위 아래로 초록빛 호수와 같은 해변이 보인다. 이 여유와 아름다움을 만끽하려는 모험가들이 이미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감히 그 작열하는 빛의 부서짐 속에서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는 찬란한 여름을 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지중해 수면에 햇살이 찬란하게 부서지던 그 순간을 나는 좀처럼 잊지 못할 것이다. 저 찰나에 반짝이며 부서지는 빛처럼 우리의 행복도 지금 이 순간에만 존재한다는 것을. 다시없을 이 순간을 누리고 빛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하늘빛이 바뀌기 시작할 무렵, 투명한 와인잔에 로제 와인을 따랐다. 와인잔 겉면에 작은 물방울들이 송송 맺힐 만큼 아름다운 색감의 차디찬 와인이었다. 조금 있으니 오늘이 마침 불꽃 축제가 있는 날이라고 한다. 과연 이 여름을 더없이 촘촘하고 풍요롭게 누리는 프로방스 사람들이었다. 나는 이들에게서 행복을 배우고 있었다. 행복은 과거에 있는 것도, 미래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내게 지금 이 자리에서 행복해지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행복을 유예하지 말라고. 그렇게 지금만 보고 지금 당장 행복해지자고 손을 내미는 것 같았다. 과연 김화영 작가의 말이 옳았다.


  ‘행복이 완만한 속도로 꽃향기처럼 스며 나오는 곳이 아니었다. 그곳은 내일의 행복을 준비하는 사람이 올 곳은 아니었다. 지금 당장, 여기서, 행복한 사람의 땅이었다.’

  이들이 적극적으로 쟁취해 내는 행복감에 내 마음도 조금씩 물들어 가고 기분 좋은 느낌이 내 안을 채우고 있었다. 마르세유에서는 삶에 대한 가슴 뜨거운 열망을, 꺄시에서는 적극적으로 행복을 누리는 삶의 태도를 내 안에 소중히 담으며 한여름 날의 축제 같은 지중해에서의 소중한 하루를 보내고 더욱 빛날 내일을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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