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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Sep 28. 2018

다시 인도라니!

남쪽의 아름다운 코코넛의 땅, 께랄라

1. 양평에서 - 떠나기 전


추석 연휴가 시작하는 첫째 날이다. 

나는 2주 만에 집에 온전히 있을 수 있게 되자, 이른 아침부터 북한강이 바로 앞에 보이는 까페에 자리를 잡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곧 여행을 간다. 정말 오랜만에.

그래서 내가 있는 이 곳 양평을, 이번에 여행가는 곳 못지 않게 아름다울 이 곳을 가만히 온전히 바라 보면서 눈에 가득 마음에 가득 담고 있는 중이다. 

가을이다! 무엇보다 이 곳이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빛깔로 물들 준비를 시작하는.

이 초록빛의 나뭇잎들은 내가 돌아온 시기에는 다른 색을 입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푸르른 양평을 내 눈에 가득 담고, 올해의 찬란했던 여름과 초가을을 마음으로 떠나 보내는 인사를 하고 싶었다. 푸르른 양평, 내년에 만나자!


어디를 갈까?

혼자서 3주 가까운 시간 동안 얼마나 고민했던지.

처음 내 마음이 흔들렸던 건 히말라야의 흰색의 설산과 어우러진 노란빛 나뭇잎이 어우러진 풍경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네팔에 가서 안나푸르나를 크게 둘러 서킷 트레킹을 하다 보면, 이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나온다. 몇 년 전 마주했던 그 풍경이 사무치도록 보고 싶었다. 그 때에도 사과나무가 아름답게 있던 작은 마을들을 지나치며, 꼭 이 마을들에 진득하게 머물러 보리라 다짐하며 내려 왔었다. 아니, 지금으로서는 그저 어디든 히말라야면 될 것 같았다. 그 설산의 한 자락이라도 보고 내 마음을 놓일 수 있다면. 그러다 아직 내게 조금이라도 미지의 느낌이 남아 있는 곳, 인도의 히말라야 자락 중 못 가본 곳들을 가보자 싶었다. 그렇게 인도가 떠오르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양평에 오래 있기는 했나 보다. 마음 한 켠에는 부쩍 인도 특유의 생명력 넘치는 햇살과 그 곳만이 지닐 수 있는 아름답고 싱그러운 초록빛의 향연이 보고 싶어졌으니 말이다. 


께랄라! 

코코넛의 땅!

찬란하게 빛나는 남인도 서쪽의 아름다운 땅. 

신의 축복을 온전히 다 받은 인도의 가장 풍요로운 땅.

결국 이것도 저것도 놓지 못하는 나답게 오랜 시간에 걸쳐 고민하다가 이번에는 우선 남인도의 따스함과 생명력을 내 안에 담아 보자 싶었다. 지금 내겐 그것들이 아주 조금 더 필요한 것 같으니.

작년에 브런치에 가고 싶다고 적었던 곳이었는데, 결국 바라면 이렇게 가게 되는구나 싶어 새삼 놀랍다.

께랄라에서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두 곳을 가기로 했다. 


남인도는 내게 너무나 특별하고 소중한 곳이다.

오래 전, 인도를 한없이 휘젓고 다닐 때의 나의 마음과 추억들이 남아 있는 곳이다. 

친구와 진실되어 더없이 소중했던 시간들도 함께.

불과 이틀 후면 떠난다고 하는데, 도무지 아무런 실감이 나지 않는다.

너무 오랜만의 인도라 그런가 보다. 

무려 3년 만이다. 


그나마 지금까지 내가 한국에 머물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이 곳 양평에 자리를 잡았기에 가능했던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7년 전 세계 여행 전에 지속적으로 한국에서 지냈던 나는 일상의 즐거움과 행복이라는 것을 몰랐던 사람이었다. 요즘 소확행이라고 불릴 만한 그런 사소한 행복들 말이다.

하지만 한국에 오래 머물게 되면서, 일상이라는 것을 이 곳에서 만들고 누려 가게 되면서, 그 즐거움을 하나 둘씩, 그러다 너무 많이 알아 버렸다. 그러다 보니 이 곳에서 엉덩이가 무거워져 버린 감도 없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 마음 속에는 늘 양쪽의 다리를 각각 다른 곳에 두고 있는 내가 있기는 했다. 그런데 요즘 든 생각으로는, 굳이 몸을 움직여 내 삶을 완전히 바꾸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나는 이 곳과 이 생활에 꽤 만족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건 종종 내게 찾아 오는 자책감과 후회가 없다는 말과는 다른 말이다.


그런데 이제는, 진짜 내가 살고 싶은 대로 나의 취향대로 삶을 만들어 가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확실해진다.

한국에서도 그리고 밖에서도.

예전부터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생활은 일 년을 세 곳에서 지내는 것이었다. 그냥 유랑하듯이 방랑하듯이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내 일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두면서 세 곳을 돌아 다니면서 1년을 보낼 수 있다면, 엉덩이를 좀체 못 붙이는 나에게 딱 알맞은 삶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2. 델리 공항에서 - 떠나는 중


추석 연휴 첫 날 시작했던 이 글을 델리 공항에서 노숙을 하며 새벽 1시에 쓰고 있다.

이 곳에 왔구나! 또! 드디어 와버렸구나 하는 생각이다. 

오랜만인데 참 낯익다. 아주 많이 낯설기를 바랬는데 흠…


이 곳을 오면서 ‘내가 또 인도로 가고 있구나’라고 크게 실감되는 순간이 여러 번 있었다.

그 세련된 인천 공항에서, 추석 연휴를 맞아 휴가를 떠나는 번듯한 승객들 사이에서 J열에 있던 에어인디아 카운터와 그 앞에 죽 서 있는 인도인들을 발견했을 때!

경유 후, 진짜 인도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기내식을 받고 열었을 때!

폴폴 날리던, 찰기라고는 하나 없이 후두둑 떨어지는 궁극의 안남미와 커리향이 벤 야채들, 한국에서 먹던 것과는 다른 인도식 마살라가 가미된 진짜 치킨 커리까지.

그리고 델리에 착륙하자 창가를 통해 보이던 비내리는 델리의 첫 모습을 만났을 때!

무언가 익숙하다. 비에 젖은 인도의 모습들.

몬순의 인도의 느낌이 되살아났다. 


그리고 몇몇 기억에 남을 모습들도 있었다.

흰머리가 꽤 섞인 중년의 인도인 스튜어드 아저씨는 공손한 듯 따뜻하신 분인 듯하여 괜히 나의 마음도 따스해졌다.

사무장같아 보이던 강단에 찬 중년의 스튜어디스 아줌마. 카리스마 철철한 것이 인도 비행기를 타긴 탔구나 싶었다. 


모처럼 온 인천 공항은 정말 좋았다.

한 때는 일이 없어도 여행의 설레임을 느끼고 싶어서 일부러 먼 지하철을 타고 여행을 떠나는 듯한 기분을 느끼러 왔던 곳이었다.

추석 당일에는 생각보다 북적이지 않는 공항의 모습을 바라 보고 앉아 있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이 곳에 다시 안 돌아와도 괜찮을 것 같다고. 그것도 좋지 않을까 하고.

물론 이번에 당장 그러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신기하게도 이번 여행을 앞두고서는 이전처럼 무조건 설렌다, 그런 느낌보다는 오히려 편안했다. 

그 전에는 여행을 위한 여행이었달까.

여행자의 기분을, 그 설레임을, 어느 한 곳에 메어 있지 않고 나를 어디든 갈 수 있는 상황에 두고 싶어서 애써 물리적으로도 여행자라는 신분을 갖게끔 했던 예전의 느낌과는 퍽 다른 것이었다. 

익숙한 곳에 간다는 느낌이 꽤 좋다. 왠지 마땅한 곳에 간다는 그런 느낌이다.

결론은, 꽤 기분 좋게 마음에 드는 여행 전의 느낌과 준비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역시 인도다!

오랜만에 와도 참 의외의 변수들이 많은 곳이다.

사람들 말처럼, 오기 전부터도 무언가 매우 고되게 하는 곳이고 와서도 그런 듯하다.

이미 준비 과정에서부터 인도를 여행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델리 공항에 내려서도, 공항 와이파이가 없어서 어찌나 당황했던지.

그동안 한국 사람 다 되긴 했나 보다.

그보다 궁금했던 건, 왜 그 전에는 이런 부분을 그렇게 대수롭게 받아 들이지 않았던 것일까?

인터넷이 필요치 않을 만큼 여행을 정말 신나게 잘 했었나 보다 싶다.


공항이란 늘 그런 곳이지만, 그 사이 인도가 부쩍 급격히 발전한 느낌이 들어 정말 새롭기도 하다.



3. 남인도 바르깔라에서 - 떠나온 후



다시 오긴 왔구나. 무려 7년 만이다.

여기가 그렇게도 오고 싶었던 걸까 나는.

좋은 기억들, 따스한 기억들, 맘 편한 기억들, 설레는 기억들 다 묻어 있고 남아 있는 곳, 바르깔라.

2008년부터의 추억이 어린 곳이다. 인도에서 영어 연수를 할 당시 은주 언니에 얽힌 기억부터 시작되는 이 곳.

연수를 마칠 즈음, 은주 언니가 100배 즐기기를 보면서 가고 싶다고 말했던 곳이자 실제로 찾아 가서 너무 좋다고 말했던 곳.

그 때에는 너무 먼 남쪽으로 다가와서 엄두를 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곳이었는데! 이제는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인도를, 세계 곳곳을 드나들게 된 내 자신과 지나간 그 시간들에 그만 피식 웃음이 난다.



어쩌면 인도 연수는 당시로서는 내가 선택한 가장 파격적이고 예외적인 터닝 포인트였던 것 같다. 

그 이후로 내 인생에 재미난 모험이 시작되었으니 말이다. 인도는 내게 늘 재미나게 사는 방법을, 조금 더 풍요롭게 사는 법을, 정해진 축에서 튕겨져 나와 새롭고 넓게 사는 법을 늘 힌트처럼 알려 준 곳이었다. 그래서 내가 이 곳에 대한 향수를 늘 지니고 있는 것일 테지. 

그래서 내 삶이 조금 지루해지고 단조로워 진다고 느낄 때쯤 나는 필연적으로 이 곳을 떠올리게 되나 보다.

다시는 올 일이 없을 줄 알았다 인도에. 그런데 3년만에 또 스물스물 생각나 버린 이 곳.



어쨌거나, 한국에서 양평에서 그리고 떠올리던 이 곳 바르깔라에 지금 두 발을 딛고 있고, 하늘과 맞닿은 넓디 넓은 수평선을 지닌 파아란 아라비아해를 절벽 위에서 눈높이로 마주하는 것은 여전히 설레고 가슴이 툭 트이는 기분 좋은 일이다. 

이제 이 곳에서 어떤 시간들을 보내게 될 지, 아니면 또다른 여정이 만들어지게 될 지 마음 가는 대로 기분 좋게 지켜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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