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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Jan 02. 2019

아름다운 향신료의 도시, 인도 코친

포르투갈 문화와 인도 문화의 다채로운 향연

남인도의 께랄라 지역은 새로운 영토와 자원을 찾아 동으로 동으로 향하던 외부인들이 당도한 이후, 수많은 교역과 문화 교류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온 땅이다.




남인도에서 가장 아끼는 곳인 작은 해변 마을 바르깔라.

오랜만에 그리워 돌아온 이 곳은 내 기억 속의 반짝거림보다도 더 빛나는 풍요로움을 품고 있음을 새삼 느낀다.


여장을 풀고 설레는 마음으로 첫 아침 식사를 하려니 단촐한 샐러드가 접시에 함께 나온다. 아무 기대 없이 한 입 떠 넣은 샐러드는 지금까지 맛 보았던 그 어떤 것보다 더 풍부한 향을 지니고 입 안을 가득 맴돈다. 혹시 따로 맛있는 오일을 뿌린 건가 싶어서 한참을 들여다 보아도 내가 찾을 수 있는 건 점점이 흩어져 있는 검은색 가루의 후추밖에 없다. 후추만으로 이렇게 재료 본연의 맛을 풍부하게 살릴 수 있다고? 음식과 요리를 퍽 좋아해 식재료에 꽤 친숙한 나에게도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제서야 이 곳이 진정한 후추의 땅, 향신료의 땅임을 실감하기 시작한다. 왜 몇 천 년 전에 강렬한 향신료의 존재를 알게 되었던 사람들이 그들의 온 생애를 걸고 이 곳에 당도하기 위해 그다지도 애를 썼던 것인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했다.


 우리에겐 한때 가난과 불평등의 땅으로 다가온 적도 있던 인도에 이렇게 풍요로운 곳이 있을 것이라고는 쉽사리 생각하기 어려운 곳. 그러나 이 곳은 언제나 그 풍요로운 햇살과 자연적 자원, 지리적인 조건으로 태초부터 부족함 없이 풍요롭게 빛나고 있던 곳이었다. 오래 전에 이미 그 사실을 알아 본 사람들이 있었나 보다. 넓디 넓은 인도양을 건너 소문을 듣고 이 풍족한 곳을 정조준하고 찾기 위하여 저 멀리서부터 온 생애를 걸고 길고 긴 모험을 떠난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러다 누군가는 미국이라는 엉뚱하지만 새로운 대륙을 발견해 버리고 말이다.


St. Francis Cathedral

포트 코친의 한 중앙에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 있다. 성 프란시스 성당이다. 연한 노란빛의 외벽과 아담하게 둥근 곡선으로 자리잡고 있는 곳. 사실 이 곳이 유명한 것은 인도라는 이국의 가장 오래된 카톨릭 성당이라는 사실도 있겠지만, 역사에 이름을 짙게 남긴 한 사람이 잠들어 있었던 곳이기 때문이다. 바스코 다 가마 (Vasco Da Gama). 향신료의 땅을 찾아, 인도를 찾아 그의 온 생애를 걸었던 한 탐험가가 마지막으로 그의 몸을 누인 곳이 바로 그의 고향인 포르투갈에서도 멀고 먼 이국의 땅 인도, 그 중에서도 남쪽의 한 항구도시라는 사실이 퍽 낯설게 다가온다. 그의 유해는 1524년부터 15년 동안 이 곳에 안치되어 있다가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옮겨 졌다.


향신료를 찾아온 이국인들

인도에서도 가장 풍요로운 땅, 이름부터 ‘코코넛의 땅’인 께랄라 주에서 가장 독보적으로 아름다운 도시! 인도 내에서도 세계적으로도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로 꼽히는 곳이 바로 코친 (Cochin, 영어식 표기는 코치 Kochi, 개인적으로 고유의 인도식 지명을 선호한다)이다. 코친의 역사는 무려 몇 천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아라비아 해의 말라바 해안을 바로 곁에 끼고 있는 거대한 항구 도시는 지금도 대형 화물선들이 끊임없이 드나들고 있는 것처럼 지난 세월 동안 늘 그러했으리라. 서양인들에게는 동양에 처음으로 닻을 내리고 당도하는 기착지가 되었을 것이며, 동양인들에게는 인도양을 건너 서쪽의 유럽으로 혹은 아프리카의 어디께로 향하는 출발지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세계의 문화는 이 해상의 교역로를 통해서 서로 조금씩 섞이고 스며 들어가며 다층적으로 풍요로운 문화를 만들어 내었을 것이고, 때로는 그 안에서 파생되어 변형된 문화적 결과물들을 탄생시켜 왔을 것이다.

지금의 코친은 인구가 1000만명을 넘어서며, 인도 안에서도 급격히 팽창하고 있는 대도시 중의 하나이다. 그렇기에 코친은 사실상 여러 세부 지역으로 나뉘기도 하는데, 크게 에르나꿀람(Ernakulam)은 대도시 코친의 중심지이다. 그 왼쪽으로 바다에 둘러싸인 항구 웰링던 섬, 또 그 옆의 섬에 있는 포트 코친과 마탄체리가 대표적인 지역이다. 사람들이 보통 낭만적으로 부르는 코친은 포트 코친(Fort Cochin) 지역이다. 포르투갈, 네덜란드 등 서양 국가가 지배한 영향이 짙게 남아 있어 아름다운 서양풍의 건물들을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코친은  1503년부터 1663년까지 포르투갈의 지대한 영향을 받았으며, 이후로 네덜란드(1663-1773), 영국(1814-1942)의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때로는 서양의 어드메 풍경인지 헷갈릴 만큼 유럽의 영향이 농후하게 남아 있다. 그 고풍스러움이 인도 고유의 느낌과 어우러져 독특하고 낭만적인 아름다움을 사시사철 발산하고 있는 곳이 바로 포트 코친이다.


코친의 흥미로운 종교적 배경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코친에는 카톨릭의 영향이 매우 농후하다. 코친은 종교적으로 카톨릭의 역사에서도 흥미로운 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예수의 12사도 중의 한 명인 토마스 성인은 살아 생전 먼 선교의 길을 떠났는데, 그가 닿은 곳이 이 곳 남인도이며 그가 마지막으로 삶을 마무리한 곳도 이 곳이라고 믿어지는 것이다. 인도의 카톨릭은 분명 16세기 포르투갈 식민 지배의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이 곳 께랄라 주 코친의 카톨릭은 무려 초기 카톨릭의 성립 시기까지 그 연원을 쫓아서 올라가게 되는 특별한 지역이다. 바로 그 가장 오래된 성당에 1500년을 늦게 당도한 바스코 다 가마가 잠들어 있는 격이다.  




향신료 교역

포트 코친이 식민주의의 역설적인 아름다움이 남아 있는 곳이라면, 사실 향신료가 외부로 드나들던 본거지는 그 옆의 마탄체리라는 지역이다. 21세기가 되어 걸어 보는  이 지역은 여전히 역동적이고 거친 생명력의 냄새가 짙게 느껴진다. 고작 20분도 걷지 않아 이렇게 다른 지역이 나타나나 싶을 만큼 아름답고 여성스러운 느낌의 포트 코친과는 정반대의 느낌을 지닌 곳이 마탄체리 지역이다. 그 오래 전부터 국제적인 무역항으로서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드나들었던 만큼 지금도 인도의 힌두, 카톨릭, 무슬림, 유대인들이 자연스럽게 그들만의 질서를 유지하고 한 데 어우러져 살아 가고 있는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해변을 따라 늘어선 건물들은 대부분 물류를 보관하는 창고들이다. 안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모를 포대들은 차곡차곡 쌓아 올려져 저장소를 가득 채우고 있다. 거리는 늘 대형 트럭부터 작은 운반차량들까지 끊임없이 드나들며 늘 그래 왔을 것처럼 여전히 흙먼지를 풀풀 날리고 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이 곳은 늘 이러했을 것이다.


가장 오랜 국제적 교역항, 캘리컷(Calicut)

포르투갈의 탐험가 바스코 다 가마 (Vasco Da Gama, 1560-1624)가 1498년 5월 20일, 처음으로 인도에 당도한 곳은 사실 코친보다 조금 북쪽으로 떨어져 있는 해안 지역 캘리컷 (Calicut, Kozhikode)라고 하는 곳이다. 16세기 즈음의 대항해 시대의 영향으로 포르투갈의 '바스코 다 가마'라는 '서양인'이 이 곳을 그저 뒤늦게 도착하고 발견한 것일 뿐, 캘리컷은 아주 오래 전부터 유명했던 국제적인 교역항이자 최초의 향신료 교역항으로 존재해 왔다.

이 곳은 BC. 1세기 이후로 로마인, 페니키아인, 페르시아인, 이집트인, 그리스인, 유대인, 중국인 등이 끊임없이 드나들면서 국제적으로 가장 번성한 항구 중의 하나였다. 또한 아랍인들이 교역을 하기 시작했던 시기도 7세기 경으로 거슬러 올라 간다.

바스코 다 가마의 도착에 앞서, 이븐 바투타 (Ibn Battuta, 1304-1368)는 캘리컷 지역을 6차례에 걸쳐 방문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그는 캘리컷을 일러 ‘세계의 곳곳의 모든 무역상들이 모여 있는 말라바의 가장 중요한 항구’라고 묘사하고 있다. 이 곳의 왕은 로마제국의 왕 만큼의 힘을 지녔으며, 이 곳의 무슬림 상인들은 더없이 부유했다고 한다.



그런데 1341년, 인도 교역항의 판도를 바꾸는 큰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바로 페리야르(Periyar) 강에 큰 홍수가 나면서 캘리컷의 항구 역시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에 대한 대책으로 상인들은 코친 지역에 자연적으로 생성되어 있던 항구를 이용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코친은 향신료를 필두로 한 각종 국제적인 교역이 이루어지는 장이 되며 번성을 거듭하게 되었다. 특히 코친이 국제적인 무역항으로 대두할 수 있었던 데에는 당시 코친의 번성을 전략적으로 지원하던 코친의 왕의 도움이 매우 주효했다. 그는 상인들과 교역인들에게 각종 기회와 혜택을 제공했다고 한다. 그 결과 제국주의자들과 이국인들은 자신들의 생활 근거지를 이 곳에 조금씩 넓혀 가기 시작했는데, 이후에는 유대인을 포함해 22개의 이국인들 커뮤니티가 코친에 존재하게 될 정도였다고 한다. 지금의 국제적인 코친의 면모의 이유를 짐작하게 되는 지점이기도 한 것이다.




언제나 풍요로운 역사와 문화는 그만큼 풍요로운 예술을 품기 마련이다.

오늘날의 코친은 인도에서도 특별한 예술 도시로 부상하고 있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포트 코친과 마탄체리 지역이 그렇다.

특히 이 곳에서는 2년에 한 번씩 아트 비엔날레를 개최하고 있는데, 2018년 12월부터 또다시 이 지역은 다시 한 번 예술의 도시로서 세계에 그 이름이 오르내리고 들썩거리게 될 것이다.  


(다음 편에 계속. :))



-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듯이, 인도를 여행하는 것은 조금 더 주의가 필요한 것이 사실입니다. 어느 여행지나 그렇듯이, 심지어 한국 내에서도 그렇듯이, 여행지에서는 자신의 안전을 위해 기본적은 사항은 반드시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즐겁고 행복하기 위해 떠난 여행의 시간을 제대로 누리기 위해 최대한 자신의 안전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하겠지요. 밖에서는 그 누구도 우리를 대신해서 안전을 담보해줄 수가 없으니까요. 그동안 경험해 보지 못한 것들을 더 깊게 경험해 보고, 맛보지 못한 음식을 더 깊게 맛볼 수 있는 행복한 여행을 위해 적어도 우리가 지킬 수 있는 것들은 꼭 지켜 보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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