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은 Nov 21. 2018

미화된 기억을 따라 나선 여행

붙잡고 싶었던 그 때의 나

다시 돌아가고 싶은 순간을 쫓아서 - 여행의 시작

여행이 그런 것이 아니란 것 정도는 알 것 같다. 오랫동안 가장 소중했던 장소를 시간이 흐른 후 찾아가 보았을 때 예전의 그 기억은 나의 미화된 기억 속에만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도 이제 알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 미화된 기억은 때때로 우리가 현실 속에서 힘들게나마 두 발 딛고 버티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어 준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그 자발적 미화의 기억과 몇 차례 현실에서 다시 조우하면서 여행에서 옛 순간을 되짚어 가는 것은 오히려 실망감과 허무를 만나는 필연적 여정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면서 부러 그 여정을 떠나지 않을 정도는 된 것이다. 사실 우리가 진정으로 그리워하는 것은 그 아름다웠던 장소, 그 순간, 그 공기, 내 앞의 바로 그 사람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 당시의 우리 자신, 아름다웠고 내가 원하는 모습을 지녔던 그 때의 나 자신일 테니 말이다. 우리가 지금은 잃어 가고 있다고 아쉬워하며 한 올의 바람으로 조그마한 불씨라도 되살려 보고 싶어하는 그 때만이 만들어낼 수 있던 나. 이를 다 알고 있지만 이번 여정을 떠나기 전 나는 그 한 자락이라도 필요했음을 고백한다.


결코 잊고 싶지 않는 나의 모습이 있다. 어떤 순간이 오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나의 가장 단단한 근간으로 붙들고 싶은 나의 모습 말이다. 어쩌면 그것은 '나는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가' 라는 매우 추상적인 질문에 대한 꽤 구체적인 답변이 될 것이다. 그렇게 나는 그 때의 나와 같이 온전히 진솔하고 나를 표현하고 드러내는 데에 주저함이 없는 사람이고 싶다. 때로는 누군가와 따스한 공감을 나누고, 여전히 새로운 도전과 빛나는 여정을 쫓아서 나아갈 수 있는 호기심 어린 열정을 항상 지닌 사람이고 싶다.


내가 이 곳을 진정으로 그리워 했던 이유

남인도로 돌아 간다고 생각하니, 7년 전 남인도를 온 마음으로 가장 행복하게 누리던 그 빛나던 순간이 떠올랐다. 내게 늘 인도의 대부분은 라다크였고, 그 2011년이었고, 그 곳에서 만났던 친구들이었다. 그런데 같은 2011년의 그 남인도가 라다크의 기억만큼 선명하지는 않을지라도 나의 일상의 순간 순간 안에서 비현실적으로 반짝이는 때가 종종 있었다. 이미 지나간 시간이라고 생각했지만 지난 1, 2년 동안 인도를 떠올릴 때면 남인도가 함께 떠올려지게 되었다. 그 따스함과 햇살, 여유로움, 그리고 그 곳의 넉넉한 품이 그리워지더라. 내가 그리워 했던 것이 처음엔 그것만인 줄 알았다. J와 얘기를 나누기 전까지는......


사실 그 7년 전, 나는 라다크를 여행한 후 라다크 서쪽이자 인도의 가장 북서쪽에 위치한 스리나가르 지역을 여행하고 남으로 남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렇게 혼자서 인도의 중부보다 살짝 아래에 위치한 함피라는 곳에 도착하기 직전이었다. 라다크에서 우리의 다른 일행들과 함께 내려갔던 J는 나와는 다른 루트로 이미 하루 전 함피에 도착해 있다는 우연같은 반가운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렇게 그녀는 함피의 귀엽고 친절한 숙소에 있는 자신의 방 옆에 예쁜 내 방 하나를 미리 마련해 두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나와 그녀는 라다크에서 둘만의 얘기를 많이 나누지는 못했었다. 하지만 그 6월의 라다크에서 느슨한 가족과 같았던 우리의 무리 중에서 나보다 한 살이 어려 유독 가깝게 느껴졌던 그녀에 대해 무언가 남다른 유대감과 의지함이 있었음은 당연했다. 아마 함피에서 다시 J를 일대일로 만나게 되었을 때의 첫 긴장감은 어쩌면 나의 부러움의 다른 반응이었던 것 같다. 그녀는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한 친구였다. 무려 연기를! 내가 꿈에서 깨어 나도 하지 못하고 되지 못할 그런 재능을 지니고 있는 그녀였다. 나는 자신을 표현하는 데에 스스럼이 없는 그녀의 자연스러움이 너무 좋아 보였으니까. 그에 반해 나는 지극히 평범하고 고리타분할 수도 있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조금은 앞섰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녀와의 남인도를 떠올리면 너무나 편안하고 소소했던 자연스러운 일상과 순간의 기억들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그 당시 상황의 힘이었을까, 여유자적했던 남인도라는 환경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우리 둘의 자연스러운 합이고 인연이었던 걸까. 


이를 테면 이렇게 소소한 순간들이었다. 아기자기한 함피 숙소의 옥상에 올라 가면 별다른 장식 없이 덩그러니 긴 테이블이 놓여 있고 그 위에는 자연스러운 주황빛의 낮은 조명 하나가 둥글게 걸려 있었다. 우리는 밤시간이 되면 스멀스멀 그 곳에 올라 와서 각자의 일기장을 펴두고 그 날의 일기를 적어 내려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소근소근한 목소리로 별 일 아닌 듯한 대화들을 잠이 올 때까지 이어 간다. 아침 식사 시간도 특별할 것 없지만 그래서 더 좋았다. 느즈막히 일어 나서 10시 반까지만 하는 아침 세트를 먹기 위해 근처의 식당으로 힘을 내서 잦은 걸음으로 가던 그 골목길의 느낌, 맛있는 음식을 먹고 커피를 마시던 순간의 함피만의 나른한 햇살까지 지금도 또렷하게 떠오른다. 그 간장 맛이 잘 베어 있던 사이드 감자 요리까지! 어쩌면 우리는 그걸 먹기 위해서 아침마다 그 곳으로 그렇게 내달렸던 것 같기도 하다.

코친으로 이동해서는 가장 예쁜 까페에서 당시 인도 여행 중 처음 느껴 보는 아티스틱한 감성을 온몸으로 느끼며 브런치라는 것을 먹고. 사실 브런치보다도 나는 J와 그 곳에 앉아 나눴던 정말 진솔했던 우리의 얘기들과 기대치 못하게 더없이 편안했던 나의 마음 상태, 우리의 대화 중의 여운의 느낌을 기분 좋게 떠올리게 되었다. 나는 그 날 J에게 나의 가장 속깊은 얘기들을 솔직하게 하지만 가장 편안하게 내어 놓을 수 있었다. 그 날의 온도가 여지껏 따스하게 느껴지는 걸 보면 그 순간은 내게 손꼽히게 편안했고 진솔했던 순간이었던 것 같다.

몇 년이 지나서야, J와 우리의 남인도에 대한 얘기를 하며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녀에게도 이 순간이 가장 돌아 가고 싶은 순간이라는 것. 가장 오롯한 자신의 모습이었다는 걸! 그랬기에 우리는 이 소중한 순간을 지금까지 이렇게 특별하게 마음에 담고 있구나 싶었다. 우리는 그 때 같은 온도였고 같은 공기 안에 있었나 보다.

진심은 통하고, 진솔한 시간은 마음 속에 기억 속에 강하게 뿌리를 내린다. 때로는 그 순간이 우리를 꽤 오랜 시간 동안 단단하게 지탱해 주기도 할 것이다. 그 남인도의 기억이, 나도 모른채 꽤 오랜 시간 동안 내 안에서 따스하게 힘을 북돋아 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정작 최근에서야 깨닫게 되었으니까. 이런 특별한 순간과 경험을 나의 인생에서 지닐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격려가 되는 그런 추억 하나.

 

현실에서 조우한 여행의 기억 - 여행의 한중간에서

그 때의 나와 우리의 기억을 한 자락이라도 느낄 수 있다면 하는 기대를 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다. 아니, 하고 떠난 여정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그 곳에 내가 찾는 것들이 완전히 남아 있을 수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다만 내가 추억하는 그 장소와 환경의 힘을 빌려 아주 작은 힌트라도 얻고 싶었다고 해야 할까. 완벽히 그 때의 나로, 그 때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2018년의 나는 지금 이 시점에서 지금의 내가 볼 수 있는 것들을 보고 내 자신을 위해서 해줄 수 있는 일들을 그저 묵묵히 이 곳에서 해나가려고 한다.


한 가지 기쁜 사실은, 우리는 남인도의 따사롭고 포근한 햇살을 마음 속에 가득히 품고서 그 때로부터 알게 모르게 조금씩은 더 성장해 온 것 같다는 것. 남인도의 유유히 흐르는 바다처럼 많은 시간들을 조금씩 뒤로 흘려 보내면서 그만큼 더 행복한 우리의 모습으로 살아 가고 있다는 것. J는 요즘 그 어느 때보다도 그녀가 가장 원하는 모습의 삶을 가장 행복하게 기꺼이 즐거워 하며 지나고 있는 중이다. 나는 글쎄? 그 당시 꿈꾸던 내 모습만큼 되었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하지만 나의 본성을 잃지 않고 무탈하게 즐겁게 지내고 있으니, 이보다 더 욕심을 낸다면 어쩌면 너무 과한 것일 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뒤늦게서야 알게 되었지만, 우리는 서로를 자유롭다며 멋있게 바라 보고 있었다는 것.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친구로부터 그런 얘기를 듣는 건 생각보다 은근히 기분이 좋은 일이다.


안타깝지만, 이 곳에 그 때와 똑같은 나는 없다. 하지만 많은 시간이 흐른 후 그 특별한 순간을 함께 공명할 수 있었던 소중한 친구의 존재를 새삼 느낀다. 시간이 흐르면서 여전히 서로의 삶을 응원할 수 있는 인연을 오래도록 이어 왔다는 사실도. 알고 보니 그 때의 남인도는 내게 특별하고 소중한 친구를 선물해 주었다. 지금도 문득, 형식적인 인사는 모두 제하고 가장 솔직한 얘기를 바로 건넬 수 있는. 그녀로 인하여 나의 남인도는 늘 그렇게 따스하고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고마운 사실은 남인도는 내 기억 속보다 더욱 아름답게 자신의 생명력을 발하고 있는 곳이라는 것이다. 남인도는 그 때 미처 다 알지 못했던 이 땅이 품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까지 내게 보여 주기 시작했다. 이 곳만의 편안한 여유자적함 또한 여전히 그대로였다. 다른 관점에서 때로는 현실이 기억을 이기기도 한다. 이번의 남인도는 내게 그 사실을 알려 주었다. 그렇기에 언제나 기억 속과 똑같은 여정은 다시 없는 것인가 보다.





작가의 이전글 Letter from Varkala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