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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Apr 22. 2019

우리들의 잃어버린 정원을 찾아서 上

세상과 나와의 경계 사이의 DMZ, 정원

사실 정원은 과거의 유산입니다. 


도시는 자연스럽게 개인이 점유할 수 있는 공간을 축소시켰고 정원 대신 퍼블릭 공원과 조경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죠.  유명한 정원들은 하나같이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궁이나 절에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맞이할 뿐입니다.  더욱이 인구의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사는 대한민국, 특히 서울 같은 도시에서 '정원'은 어쩌다 방문하는 곳이지 개인이 향유하기엔 사치라는 생각도 듭니다.  설사 손바닥만 한 땅이 있다 하더라도 손이 많이 가는 정원보다는 주차공간을 만드는 것이 당연한 이치인 세상인 거죠. 


저는 그래서 더욱 정원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그것은 마치 오래전에 우리 안에 불타버린 '노트르담의 첨탑'을 다시 세우는 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정원의 존재는 계절별 꽃을 피우는 그리너리 공간 이상으로 사적인 공간에서 우리의 정신을 지탱해 주었던 곳이기 때문입니다.  누구에게나 있었으나 잃어버린 우리의 정원, 그것을 현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시각에 맞춰 재조명해보려고 합니다.  그것을 복원하기 위해 이전의 설계도 들여다 보고 현대적 라이프 스타일에  맞는 방식을 찾기 위해 디자인을 재해석하는 시도 또한 제 나름대로 해 볼 생각입니다.  아파트 공간 안에서도 재탄생되는 그런 정원을 말이죠...   저는 이 블로그를 통해 완벽한 해답을 제시하기보다는 그 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솔직하게 기록하고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첫 장을 저는 '벽'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 보고 싶군요.




'벽'에는 마법과 같은 '힘'이 있습니다.  

같은 공간을 둘로 분리하여 벽의 안과 밖을 전혀 다른 공간으로 바꿀 수 있으니 말이죠.  


우리는 이 '벽' 때문에 돌아가야 하고, 이 '벽' 때문에 볼 수 없고, 이 '벽' 때문에 분리됩니다.  또, 벽이 높을수록 벽 너머의 세계가 더 단절되고 폐쇄적이며, 느슨하게 속이 들여다 보이는 반 오픈된 울타리는 그만큼 개방적이고 경계의 수준이 낮다는 것을 그 형태로 말해줍니다. 

벽 너머 (당신의) 세계가 궁금합니다.

우리는 이 경계 덕분에 안전함을 느끼고 나의 세계를 보존할 수 있습니다. 


특히, 과거 우리가 아파트에 살기 전 대부분의 주택은 길과 바로 맞닿아 있기보다는 보통 벽을 두고 주택까지 작든 크든 공간이 있었습니다.  지극히 사적인 공간 '집'과 외부와의 경계를 긋는 '벽' 사이에 자리하는 그 공간을 우리는 마당, 뜰, 정원으로 불렀죠.  이 벽 내부의 세계는 누가 뭐랄 사람이 없는 나만의 또는 가장 작은 사회 단위인 가족의  '자치(治) 공간'이었고요. 그것은 동서양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영어의 garden, 불어의 jardin, 독일어의 garten 모두 'enclosure (벽을 두른 공간)'이란 뜻의 어원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 작은 세계에는 자연스럽게 저마다의 가치관이나 이상적 세계관이 반영될 수밖에 없습니다.  서민들에게는 먹고사는 일이 더 중요하니 다목적 기능으로 활용 가능한 오픈 공간과 대파나 고추 같은 소소한 작물의 텃밭이 자연스럽게 들어왔고, 그 보다 좀 넓은 땅을 소유할 수 있었던 왕족과 귀족들에게는 그들의 정신적 이상 세계를 표현하거나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는 용도의 정원이 있었던 것처럼요. 


그리고, 여기서 나아가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영어의 paradise가 'walled garden'이라는 뜻의 어원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즉, 우리가 생각했던 '낙원'의 모습은 '정원'의 형태로 존재했다는 것이고, 바꿔 말하면 우리는 정원을 통해 '낙원' 즉 완벽한 이상향의 세계를 구현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한중일 정원에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특징인데요.  불교에서 말하는 '극락'을 현실에서 구현하고자 한 것이 정원이었습니다.  동양 정원에서 반복되는 패턴들, 큰 연못 위의 섬, 소나무, 연꽃 등은 모두 '극락'의 상징들이죠.  

일본 헤이안 시대의 병풍, [아미타불의 극락]

그렇다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파라다이스는 어떤 모습일까요? 


과거에 천국이란 종교적 권위자들이 제시하는 그림에 있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나 내쫓긴 '에덴동산'의 모습 같은 것들이죠. 그러나 오늘날 종교가 그 그림을 제시하기엔 권위도 잃었지만 시대가 하나의 틀에 박힌 낙원의 이미지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삶의 전 영역에서 개인화가 가속화되어가고 있는 21세기에 천국의 모습은 파편화되가거나 정원의 상실과 함께 어디론가 조용히 사라져 버린 듯해요.  그것은 정원의 복원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점이기도 하고요.  모두가 행복을 찾고 있지만 그 행복은 어딘가 멀리에 있는 듯합니다. 인스타그램의 사진들이 그 행복의 환상을 이미지로 담아내려고 하지만 가상공간으로서의 한계 역시 느껴집니다. 공허함이 함께 따라오기 때문인데요. 이럴 때일수록 두 발을 디디고 서 있는 공간에서 촉감을 느끼고,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일상의 아름다움이 더더욱 필요한 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그 공간은 핫한 카페가 아니라 내가 매일 잠을 자고 밥을 먹고, 할 일 없이 뒹굴 거리고, 새벽에 문득 잠이 깨 뒤척거리는 그 공간이어야 하진 않을까요?  


'집'이란 공간에서 우리는 사회적 역할을 벗어던지고 온전히 나로 돌아갑니다.  그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공간에서 문을 열자마자 바깥세상과 바로 맞닥트리는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완충지 같은 역할을 하는 정원이 있었다는 점에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마치 바깥세상의 온갖 스트레스와 상념이 이 정원이라는 필터를 거쳐 내가 나의 공간으로 온전히 들어갈 수 있게 해 주는 것처럼... 그것은 나와 세상의 경계에 작은 DMZ 공간을 허용하는 것이죠. 

나로 온전히 돌아가기 위한 빈 공간, 실외여도 좋고 실내도 좋습니다.

그 벽안의 감추어진 나의 이상이 담긴 세계는 내가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공급해주는 곳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공간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 수 있을지 앞으로 하나하나 여러분과 함께 발견해 나가보려고 합니다.  잃어버린 우리의 정원을 찾아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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