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해외출국은 2005년에 뜻밖에 우수사원으로 선정되면서 포상으로 일본 NGO박람회와 일본 여러 도시에 연수를 다녀왔다. 이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하고자 한다.
그리고 곧바로 그 해 10월에 파키스탄 대지진으로 파키스탄 긴급구호 2 팀장으로 파견을 받게 되어 한 번도 제대로 듣지 못한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로 향했다.
(대학생 때 서남아시아를 연구한 것은 우연이었을까.)
▲︎ 파키스탄 무자파라바드에서의 일상, photo by 션코치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공항에 내렸을 때, 공항에서 울려 퍼지는 '코란의 소리'에서 이미 나의 영•육•혼은 혼비백산할 뻔했으나, 우리는 대지진 진앙지인 무자파라바드로 곧바로 이동하기 위해서 각종 수화물(의약품, 생필품, 개인짐 등)과 어레인지 할 것들을 체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는 긴급구호 2팀을 인솔하는 책임을 지고, Y의료팀•간호팀 그리고 한국자립구조대원 2~30명이 다 함께 움직였다. 이때 사실 '한국자립구조대원(가칭)'은 우리 팀원이 아니었다. 이슬라마바드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조인하게 되어 우리와 함께 되었다. 이들이 나의 임무를 크게 덜어주게 될줄은 이때만해도 알지 못했다.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공항에서 미리 준비된 대형버스에 모든 물품을 옮기고 우리 팀은 모두 다 무사히 지진 진앙지인 무자파라바드로 향했다. 이미 10시간 넘는 비행으로 지쳐있기도 했지만, 한시도 지체할 여지도 없이 대형버스를 타고 5시간동안 달렸다.
쉼 없이 달릴 때마다 비포장도로가 연거푸 나오니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생처음 보는파키스탄인의 모습과 그 나라의 풍경이 이색적이어서 조금은 힐링되었다.
그러다 운전기사와 현지인 가이드가 무자파라바드에 거의 도착했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차가 멈추어서더니 운전기사가 멈칫하는 것이었다. 현지인 가이드가 지진으로 인해서 모든 도로가 유실되어 저 앞에 보이는 흔들 다리를 건너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사람이며 자가용이며 그 흔들거리는 다리를 모두 다 건너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대형버스가 지나가기에는 역부족이고 언제 저 다리가 끊어질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위태로워 보였다.
'아, 안돼'라고 말할 틈도 없이 운전기사는 그대로 그 흔들 다리로 향했다. 정말 모두가 숨죽이고 있었다. 흔들거리는 다리를 이 큰 버스가 지나가다니,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 흔들 다리를 지나서 다시 진앙지로 향했다.
그때부터 주변에 펼쳐지는 광경은 정말 믿을 수가 없었다. 이미 모든 집들이 폐허가 되었고, 건물 잔해더미에서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이것이 전쟁터인지, 상상도 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이 모습을 보는 순간 모두가 초긴장 상태가 되면서 우리의 임무에 대해서 상기해서 초집중했다.
파키스탄 무자파라바드 2005, photo by Sean
우리 단체는 UN에 가입되어 있어서 무자파라바드 주도 책임자(대지진은 전시상황과 동일하여 군장교가 총지휘권을 가짐)에게 국제개발 NGO의 주둔지를 미리 협의해 두었다. 마침내 무자파라바드 UN 본부에 도착해서 미리 협의해 둔 지역을 확인하고 그곳으로 다시 이동을 준비하기 위해 물품을 정리 정돈했다.
파키스탄 무자파라바드 2005, photo by Sean
그런데 이상하다. 군책임자는 우리에게 'stay'를 계속 얘기하기를 반복했다. 이곳 상황은 초 단위로 변경된다. 우리가 긴급구호할 지역은 이미 협의가 완료되었지만, 그곳으로 가려면 더 이상 차로 이동가능한 차로가 없기에 군용 헬기로 들어가야 되는데, 워낙 지진 진앙지가 넓어서 그곳에 헬기배정이 언제 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 보니 그곳으로 들어가는 헬기를 무작정 기다려야 되는 상황인 것이다.
그렇게 시간만 속절없이 흐르고 새벽에 파키스탄 공항에 처음 내려서 5시간을 차로 달려서 아침 10시경 지진 진앙지에 왔지만 또 다른 봉착에 막혀 마냥 기다리다 오후 5시가 넘어가니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군부대에서 최종 연락이 왔다 이미 어두워져서 오늘은 더 이상 헬기가 뜨지 않는다는 것이다
'큰 일이다.'
우리는 오늘 숙박할 곳이 없다.
이래저래 아침 점심 저녁도 제대로 끼니를 해결하지 못했다.
첫 번째 구세주가 나타나다.
아, 내가 국제개발 NGO 긴급구호팀 팀장 인솔자로서 난감한 상황이다. 그런데 첫 번째 은인이 나타났다. 우리 20여 명이 그 큰 운동장에 수많은 짐과 함께 우두커니 서 있는데, 갑자기 현지인이 다가오더니 (사실 이건 무서운 상황이다) 아주 친근한 한.국.말.로 우리에게 말을 건다.
내용은 이렇다.
"안녕하세요. 한국에서 오셨어요? 저는 한국에서 유학하고 한국분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이번 지진으로 분명히 한국사람들이 우리를 도우러 올 거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는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있으면 도우려고 해요."
'와, 이런 절묘한 순간에 천사 같은 분이 이미 준비된 것처럼 나타나시네.'
우리는 위 현지인의 말을 듣는 순간 즉각 요청했다.
우리의 소속과 현재 상황을 알리고, 오늘 밤 숙소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랬더니, "제가 무자파라바드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는데요. 저의 집도 지진 피해를 입었지만 아직 우리 집은 무너지지 않았어요. 필요하시면 하룻밤 숙소로 쓰셔도 됩니다."
'오~ 이런 은혜가 다 있네요.'
정말 불행 중 다행스럽게도 하룻밤 몸 누울 곳과 간단히 요기를 할 수 있어서 다행스러웠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원래 긴급구호 현장, 특히 지진 현장에서는 건물 안에서 취침하는 건 목숨을 건 행위이었다. 왜냐하면 여진으로 건물이 언제 무너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만 봐도 내가 얼마나 긴급구호 초보, 국제개발 NGO 문외한인지 알 수 있다. 20년이 지나 지금에야 이 글을 쓰지만,우리는 그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