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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학자P Dec 24. 2018

애도의 미학

사회적 애도를 위한 안내서 / 애도 여행을 떠난 어느 젊은 미학자의 기록


뉴스 앵커로 일하던 시절, 종종 안타까운 죽음을 전해야 하던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무척, 마음이 아프고 신경이 곤두섰다.

나야 주어진 기사를 읽는 일에 불과하지만, 

가족이나 지인의 죽음을 뉴스에서 듣는 심정을 차마 헤아리기 어려웠기에

어조나 어감 하나하나가 신경 쓰였던 것이다.


그럴 때면 편집하는 선배들도 음악이나 편집에 신경을 많이 썼는데,


문득 한국 사회가 올바른 애도를 행해오고 있는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한 번쯤 짚어보고 이야기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어떤 의무감 내지 책임감으로 커졌다.


석사 논문에서 나는 고민 끝에 애도의 미학을 탐구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정치학이나 언론학이 아닌 미학에서 그 답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 이유는 이러한 죽음의 문제를 다룰 때 필요한 다양한 관점과 유연한 태도, 그리고 기억의 문제에 관여하며 

앞서 살핀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는 적합한 장르가 예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술이 취해온 애도의 태도는 어떠할지, 

무엇보다 한국 사회가 겪어온 무수한 죽음들로부터 우리는 올바른 애도를 취해왔는지 질문을 던졌다.




일차적으로 단순하게 애도를 떠올릴 때,

우리는 떠나간 이를 슬퍼하는 추모의 의미를 생각하겠지만 이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내가 찾아 나선 애도는 '회복을 위한 과정으로서 살아있는 이가 부재하는 타자를 위해 취하는 반응, 또는 행동'이다. 물론 그 일상은 상실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다만, 남아있는 자들에게 시작된 여정을 통해, 우리들의 미처 애도되지 못한 많은 기억들을 올바른 애도로 이끌고자 함이다.


제주 4.3 사건 관련 전시에서 만난 양미경 작가의 <무명천 할머니>


 애도에 관해서는 프로이트와 데리다의 연구가 고전적으로 유명하다.


 프로이트는 애도와 우울증을 구분했다. 그에게 애도는 '보통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 혹은 사랑하는 사람의 자리에 들어선 어떤 추상적인 것, 즉 조국, 자유, 어떤 이상 등의 상실에 대한 반응'이다. 일종의 정신적 에너지인 리비도가 애정 하는 대상을 상실했을 때, 그다음 대상을 찾기까지의 여정이 애도라면

미처 그렇게 이행되지 못하고 자아 속으로 파고들 때 우울증이라고 보았다.


 한편 데리다는 새로운 대상을 찾는 프로이트의 주장과는 다른 애도를 이야기한다. 타자를 기억하는 여정의 시작으로서 애도의 불가능성을 언급했다. 상실한 대상과 나 사이에 흐르는 이 무한한 거리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인가.


 이 무거운 주제를 안고 논문을 써 내려가며, 나는 수많은 곳을 여행하고 애도의 흔적을 뒤쫓았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만난 홀로코스트의 흔적


 논문은 한국 현대사의 예술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책과 길 위에서 내가 직접 만난 수많은 애도의 현장을 기록해두고 싶었다. 홀로코스트부터 6.25와 베트남전 그리고 일일이 적지 못할 무수한 사회적 죽음과 지금 이 순간의 뉴스에서 보도되고 있는 전 세계 곳곳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 애도의 여정들을 남기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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