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개가 진주를 만들기까지
언젠가 조개가 진주를 품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모래알 같은 이물질이 들어와 조개의 살을 아프게 찌르면,
조개는 그것을 품고 감싸며 자신을 상처 내어 진주를 만든다고 했다.
고통이 쌓여 아름다움이 된다는 말이 그때는 좀 시처럼 들렸다.
현실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으니까.
그런데 아이를 넷 키우고 보니, 그 조개가 바로 나였다.
첫째는 학업이라는 시련에 힘들어하고
둘째는 사춘기의 문턱에서 눈빛이 자주 흐려진다.
셋째는 수학문제집과 씨름하며 “왜 공부해야 해?”를 퍼붓고,
막내는 잠에서 깨어 울음을 터뜨릴 때마다 세상의 시작을 알리는 종처럼 울린다.
처음엔 버거웠다.
하루가 온통 요구와 응석과 투정으로 시작되어,
내 이름은 사라지고 ‘엄마’라는 호출음만 남았다.
밥을 먹다가도, 화장실에 들어가도,
무슨 일이든 중간에 끊기기 일쑤였다.
한때는 ‘나도 나고 싶은데’ 하는 마음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직장인들은 아무리 야근을 하고,
밤샘 근무를 하더라도, 퇴근이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이놈의 육아는 아무리 육퇴(육아 퇴근)를 해도,
아이가 잠에서 깨어나면 다시 근무를 해야 한다.
회사원들이나 학생들은 주말을 좋아하지만,
엄마들은 주말이나 방학은 고강도 노동의 시간이다.
5살 터울의 오빠와 자란 나는, 남매간의 싸움을 거의 하지 않았다.
우리 집은 조용한 편이었다. 적어도 내 기억에는.
그런 나는 형제들과 남매들의 싸움에 유난히 취약했다.
연년생 형제가 피 튀기며 싸우면서 큰 남편은
“아이들이 싸우면서 크는 거지.”
하면서 초연했다.
몸싸움과 울음소리가 난무한 그 상황은 아무리 반복이 되어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이 전쟁터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만 간절했다.
그러다 어느 날, 조용한 오후에 넷이 모여 나를 웃게 했다.
티격태격하면서도 이불 덮고 몰래 간식을 나눠 먹던 모습,
우는 막내를 셋째가 토닥이며 달래고,
막내가 웃으면 그 웃음이 또 모두를 감싸는 장면.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이 아이들이 내게 상처가 아니라,
진주가 되어가고 있다는 걸.
엄마의 마음이 가장 힘들 때는,
자녀가 아플 때이다.
네 명을 키우다 보면,
아이들의 아픈 경우도 그 만큼 많아진다.
아픈 아이를 볼 때면, 차라리 내가 대신 아프면 좋겠다고 생각을 한다.
사자소학에도 이런 내용이 있다.
“불감훼상 효지시야”
내가 아프면 부모님은 더 아프다는 뜻이다.
셋째가
“우리가 아프면, 엄마 마음이 아프데.”
라고 귀엽게 말하던 모습이 생각이 난다.
아프고, 피곤하고, 때론 무너지지만 나는 그 속에서 빛나는 걸 만들어가고 있다.
네 개의 진주. 내 인생을 다시 쓰게 만든 네 개의 기적.
엄마라는 건, 결국 상처를 품는 일이다.
그 아픔을 끝까지 껴안아 내면 어느 날 반짝이는 진주를 얻게 되는 일.
나는 오늘도 조용히 진주층을 입힌다.
말 한마디에, 울음 한 줄에, 엄마라는 이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