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하지는 않지만, 남기는 삶
소설 『페인트』 속 가까운 미래,
출산율이 바닥을 치자 정부는 아이를 대신 키워주는 센터를 운영한다.
가족은 선택이 아니라 시스템이 되어버린 세상.
그 이야기를 떠올릴 때면 누군가 내게 던졌던 말이 생각난다.
“애국자시네요.”
네 아이를 키운다고 하면 으레 따라오는 말이다.
나는 애국자일까. 아니다.
그저 시대의 흐름에 순응했을 뿐이다.
‘둘만 낳아 잘 키우자’던 시대였다면 지금의 내 삶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시키는 대로 하고, 하지 말라는 건 하지 않는 모범생의 길.
그렇게 살다 보니 네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현모양처. 한 번도 꿈꿔본 적 없었다.
어릴 적부터 꿈은 분명했다.
화려한 장미 같은 삶,
바쁘게 살아가는 커리어 우먼,
회의실을 장악하는 CEO.
그러나 인생은 언제나 스스로의 시나리오대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지금 나는 사남매를 키우는 전업주부다.
예상과 전혀 다른 자리에서,
나 역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감정을 겪고 있다.
첫 아이도 계획보다 빨리 찾아왔고,
둘째는 외로울까 걱정한 남편의 제안이었다.
셋째는 결혼과 육아를 하면서 바뀐 나의 세계관으로 계획 하여 낳았다.
넷째는 삶의 흐름 안에서 자연스럽게 찾아온 선물이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나는 나를 점점 더 많이 내려놓았다.
커리어라는 단어 대신,
이유식과 미끄럼틀이 내 일상이 되었고,
시간은 아이들 속도로 천천히 흘렀다.
기억난다. 2024년 겨울, 서울에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다.
창밖에 쏟아지던 눈은 마치 동화 같았다.
순식간에 쌓이더니, 순식간에 녹아 사라졌다.
그 찰나의 순간, 나는 깨달았다.
눈도, 꽃도, 결국은 진다.
봄마다 벚꽃이 만개할 무렵, 어김없이 내리는 비.
그 비는 마치 너무 아름다운 것을 오래 두지 않으려는 자연의 배려처럼 느껴졌다.
눈부시게 피어난 벚꽃은 비를 맞고 이내 져버리고, 나무는 앙상한 가지만 남긴다.
헤르만 헤세는 말했다.
“이 지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변화와 세월의 흐름이 있을 뿐.”
성경도 말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
내가 아무리 애썼던 시간도 언젠가 바람처럼 흩어질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히 남는 것이 있다.
꽃은 져도 열매를 맺는다.
나는 떠나도 네 아이는 남는다.
기부천사 션의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그렇게 기부를 많이 하시면, 노후 준비는 어떻게 하세요?”
“저에게 은퇴는 없습니다. 평생 현역으로 살 겁니다.”
그의 말이 오래 남았다.
아낌없이 주며 살아가는 인생.
나를 위한 미래보다, 오늘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
그것이 더 오래 남는다는 사실을 그때 배웠다.
요즘은 파이어족을 꿈꾸는 이들도 많다.
젊을 때 돈을 벌어 빨리 은퇴하고 인생을 즐기려는 삶.
남편의 사촌도 그런 삶을 사는 중이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다르다.
우리는 필요해서 일하지만, 동시에 좋아서 일한다.
워렌 버핏처럼 평생 현역으로 살고 싶다.
삶의 목적이 은퇴가 아닌, 꾸준한 걸음이라면, 오늘도 충분히 의미 있다.
네 아이를 키우며 나는 조금씩 알게 되었다.
꽃을 피우는 것보다, 열매를 맺는 것이 더 어렵고 귀한 일임을.
나는 지금도 열매를 키우는 중이다.
언젠가 그 열매들이 또 다른 생명을 품게 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