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연단시키는 사남매
아이 넷과 함께 사는 일상은, 불 속을 걷는 것과 같다.
새벽이면 작은 손들이 날 깨우고,
밤이 깊도록 잠들지 않는 눈망울들과 실랑이를 벌인다.
한 아이가 울면, 또 다른 아이는 배가 고프다 하고,
겨우 진정시키면 누군가는 숙제를 안 했다며 눈물짓는다.
이건 거의 24시간 풀가동되는 감정의 용광로다.
처음엔 왜 이렇게 마음이 들쑥날쑥한지, 왜 이리 화가 나는지 몰랐다.
나는 좋은 엄마이고 싶었고, 사랑으로 감싸 안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 사랑을 매일 시험받는 나날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금은 불 속에서 정금이 된다’는 말을 들었다.
그 한 줄이 내 시선을 바꿔놓았다. 아, 나는 지금 연단되고 있구나.
매일 부딪히고, 무너지고, 부서지지만,
그 속에서 조금씩 덜어내는 건 내 안의 불순물일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끝없는 요구 앞에서 내가 내려놓는 건 조급함이고,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 하루 속에서 비워지는 건 내 고집이었다.
아이를 낳기 전, 나는 철저한 계획형 인간이었다.
MBTI로 따지자면 ESTJ, ‘엄격한 관리자’ 유형.
하지만 아이가 하나둘 늘고,
예측불허의 하루가 일상이 되면서 계획은 의미를 잃어갔다.
나는 점점 충동적인 사람이 되어갔다.
지난 월요일, 셋째와 막내를 데리고 아무 계획 없이 잡월드에 다녀왔다.
막내와 단둘이 가려 했지만,
불안이 큰 아이가 혼자 체험을 할 리 없다는 걸 월요일 아침에야 깨달았다.
급히 셋째를 조퇴시키기로 하고,
학교 교무실에 전화를 걸었다.
우여곡절 끝에 셋째는 조퇴했고,
“무슨 일이야?”
라며 집에 들어온 아이의 눈은 동그래졌다.
“민상이랑 잡월드에 가자~”
처음 가는 잡월드에 나는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점심도 못 먹고 조퇴한 그는 차 안에서 간단히 끼니를 때우고,
형제는 체험을 알차게 마친 후, 땀과 웃음이 묻은 얼굴로 집에 돌아왔다.
예고 없이 찾아온 그 하루가 셋째에겐 선물 같았나 보다.
“엄마, 너무 재밌었어. 나 또 가고 싶어.”
짧은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시 일상이 나를 불러 세운다.
첫째는 중간고사를 앞두고 예민해져서 동생들에게 화풀이를 한다.
누나에게 이유 없이 한 대 얻어맞고 우는 막내를 달래야 한다.
둘째는 잔소리 좀 그만하라고 말을 못 하게 한다.
셋째는 학원 숙제는 미루기만 하고 해맑게 놀기만 한다.
이쯤 되면, 이건 우연이 아니라 정밀하게 설계된 ‘연단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렇게 하루를 견디다 보면 가끔 작은 반짝임이 보인다는 것이다.
“엄마, 힘들지? 내가 도와줄게.”
첫째의 말에 가슴이 뭉클하고,
내가 하던 말을 친구에게 그대로 전하는 둘째의 모습에
이 고된 시간이 무의미하지 않음을 느낀다.
나는 아이들을 키우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아이들이 나를 사람답게,
어른답게, 그리고 ‘엄마’답게 다듬고 있었다.
고통 없이 빛나는 금은 없듯이,
이 연단의 시간 없이 내가 지금처럼 단단해질 수 있었을까.
오늘도 나는 이 불 앞에 선다.
때로는 울고, 때로는 웃고, 자주 넘어진다.
그러나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나는 내가 몰랐던 나를 꺼내어,
반짝이는 금으로 빚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