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모두 청춘!
수요일 저녁, 남편 회사에서 받은 무료 티켓 덕분에 아이들과 농구 경기를 보러 갔다.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가까이서 경기를 관전하는 재미도 있었고, 중간중간 펼쳐지는 치어리딩과 다양한 볼거리도 흥미로웠다.
그 이후로 서울에서 경기가 있을 때마다 빠지지 않고 가곤 했다. 경기장은 집에서 가까운 잠실에 있어 더 안성맞춤이었다.
예전에는 대학 농구가 큰 인기를 끌었다.
고려대와 연세대 간의 경기는 ‘세기의 경기’라 불릴 만큼 치열했고, 인기 있는 선수들은 아이돌 못지않은 사랑을 받았다.
그 시절엔 외국인 용병 없이도 충분히 박진감 넘치는 경기가 가능했다.
키가 2미터가 안 되는 선수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안에서 솟아오른 열정은 누구보다 컸다.
요즘은 2미터를 훌쩍 넘는 외국인 선수들이 많다.
그들 곁에 서면 우리나라 선수들이 작아 보이고, 심지어 농구 골대마저 낮아 보일 정도다.
하지만 모든 선수가 다 크고 우람한 것은 아니다.
작고 빠른 선수들도 있다.
순발력을 무기로 선공에 유리한 흐름을 만든다.
다양한 유형의 선수들이 각자의 장점을 살려 팀을 완성해 가는 모습은, 우리 삶과도 닮았다.
인생도 하나의 팀이 아닐까.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는 없다.
누군가는 조연의 자리를 맡아야 한다.
『아무튼, 명언』에서 하지현 작가는 중년 배우들이 겹치기 출연을 해도 부담 없이 일상을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조연의 삶이 나름의 자유를 갖는다고 말한다.
주연이 돋보이기 위해서는 조연의 힘이 필요하다.
가끔은 나도 조연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동년배들이 전문가로서 경력을 쌓아가는 모습을 보면, 집에서 15년 동안 아이만 키운 내가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의 15년은 ‘잃어버린 시간’이었을까?
전안나 작가는 『나의 마흔에』에서 말한다.
마흔이라는 나이에 세상의 주인공이 될 순 없어도, 전성기는 될 수 있다고.
올해 마흔이 된 나는 그 말에 위로받았다.
예전에 도서관에서 그녀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그림책을 함께 읽으며 쌍방향으로 소통했던 수업이었고, 참여자는 나와 또 한 사람뿐이었다. 작가는 감사의 의미로 커피 쿠폰을 보내주었다. 그날 이후 그녀의 책을 많이 읽었다.
사회복지사로 인생의 전반전을 보낸 그녀는, 지금은 작가이자 출판사 대표, 강사로 인생의 후반전을 활짝 살아가고 있다. 두 아이의 엄마로서, 워킹맘으로서 씩씩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은 나에게 큰 자극이 되었다. 그녀처럼 나도, 내 인생의 전성기를 준비하고 싶다.
세상의 주인공이 아니어도 괜찮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결국 나 자신이니까. 장미처럼 화려하지 않아도, 튤립처럼 주목받지 않아도, 들판에 피어난 작은 들꽃도 꽃이다.
셋째 아이의 공개수업 날, 아이들이 불렀던 노래 <모두 꽃이야>의 가사가 마음을 적셨다.
아무 데나 피어도
생긴 대로 피어도
이름 없이 피어도
모두 다 꽃이야
『기어코 반짝일 너에게』에서 김규남 작가는 말한다.
“세상의 모든 꽃은 피는 시기가 다를 뿐, 피지 않는 꽃은 없다.”
아직 내가 피어나지 않았다면, 언젠가 피어날 그날을 준비하며 살아가야겠다.
어제 운동시간에 <나의 청춘에게>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우리는 지금이 청춘이라며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아무튼, 명언』 속 한 문장이 다시 마음에 들어왔다.
“어쩌면 청춘이란,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은 모든 인생을 뜻하는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목적지를 향해 한 걸음씩 걸어가고 있는 지금, 나는 분명 청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