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r Agent Oct 19. 2021

(번외) 나는 왜 그동안 글을 쓰지 않았나?

: 프로야구는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왜 글을 쓰지 않았나?

"야구 기계로 살다가 기계로서 생명이 다한다면 그다음에는 어떤 인생을 살아갈 것인가? 슬프게도 아무도 찾아주지 않을 고철 기계로 남을 것인가? 선수들은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생각하고 공부해야 한다. 더 많은 야구 밖의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주저하면 안 된다. 그랬을 때 자기들이 받은 사랑이 얼마나 컸는지 얼마나 과분했는지 이 거대 산업에서 자기 위치와 역할을 무엇인지 온몸으로 깨닫게 될 것이다... 선수들은 야구하는 기계가 하니다. 돈 버는 기계도 아니다. 아름다운 은퇴를 함께 준비하는 것이 에이전트 제1의 의무이자 역할이다."



오늘은 그동안 써왔던 글들과는 조금 다른 주제로 글을 쓰고자 한다. 마지막 글을 올렸던 게 무려 8개월 전이다. 이 기간 동안 상당히 많은 분들의 문의가 있었다. 그중에는 인터뷰 요청도 있었고, 에이전트에 대한 세부적인 질문은 물론, 본인이 근무하고 있는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다는 진학 상담도 있었다. 사실 그동안 글을 완전히 안 썼던 것은 아니다. 비공개로 돌려놓은 글들도 여럿 있다. 그럼에도 선뜻 그 글들은 '공개'로 바꾸거나, 또한 무언가에 쫓기듯 글을 쓰지 않은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본인의 본분과 관련된 일이었다. 이전 글에 밝혔듯이 나는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연구를 하고, 학생들을 지도하는 교수이다. 학기가 시작되면서 몰려드는 학교의 넘치는 workload와 강의 준비, 보직 업무 등의 압박은 사실 글에만 온전히 집중하기 힘든 상황을 만든다.


앞서도 일부 언급했지만, 이와 같은 dual jobs은 양날의 검이다. 두 직업에 대한 전문성은 분명 시너지를 만든다. 학생들에게는 책에서는 경험치 못한 생생한 현장의 경험들을 들려줄 수 있다. 이는 실무를 알아야 하고 현장의 변화에 민감해야 할 미래 스포츠산업 종사자들에게는 엄청난 베네핏이다. 뿐만 아니라 협상의 방법, 분위기, 계약서 작성법, 계약서 샘플 공유 등 프로팀이나 마케팅 에이전시에 들어가서도 상당한 무 경력을 가진 후에야 얻을 수 있는 경험들을, 간접경험으로 학생들에게 오롯이 전달할 수 있다. 학생들에게는 글로 다 기술할 수 없을 만큼의 배움들이다.


좋은 스포츠의 대표이자 에이전트로서는 교수의 전문성과 직업이 가져다주는 책임감이 연봉 협상, 스폰서 미팅, 계약 체결 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 기존에 네트워크로 엮여 있는 한국 스포츠판에서, 인정에 호소하고 스폰서가 찾아주면 그저 감지덕지 계약을 체결했던 그 판에서, 이론적 배경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협상은, 어떤 협상이든 무형의 레버리지로 유리하게 작동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업무를 완벽하게 해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이 척박한 스포츠산업에서 에이전트 업무는 누군가가 목숨 걸고 해 나가고 또 지켜나가고 있는 직업군이다. 전부를 내던지며 이 일을 하고 있는 그분들과 본업을 두고 겸업을 하고 있는 나의 커미트먼트와 열정은 사실 비교할 수 없는 게 정상이다.


따라서 이와 같이 업무들이 휘몰아치기 시작하면 사실 온전한 글쓰기가 힘들 만큼 바쁜 나날이 시작된다. 글을 올리지 못한 자의 옹색한 변명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간 글을 쓰지 않았던 둘째 이유는 그간 야구판에 벌어진 여러 가지 일들 때문이었다. 이 가슴 아픈 일들로 사실 글을 써나갈 수가 없었다. 본인이야 외부 특강이든 본인 개인 홈페이지든 야구 위기론을 계속해서 주장하는 1인 중 한 명이다. 이와 같은 위기에 대한 주장과 KBO나 선수협 비판 등으로 어쩌면 야구계에서는 기피인물 최상위권에 올라가 있을 수도 있다.


물론 이와 같은 위기 주장은 KBO의 무능함과 선수협의 이기심, 외부 환경의 급속한 변화에 기인하는데 최근 들어 이에 더해 치명적인 일들이 연이어 터져 버렸기 때문이다. 다들 주지하다시피 몇몇 선수들의 거리두기 수칙 위반으로 인한 코로나 양성 반응, 이로 인한 리그 중단이 그중 하나이며, 도쿄올림픽에서 대표팀의 졸전이 나머지 하나이다.


항간에는 "너 아직도 야구 보냐?"라고 야구를 보는 팬들을 조롱하는 분위기가 곳곳이다. 프로야구가 조롱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KBO의 문제? 시급하다. 자기 밥그릇만 챙기는 선수협?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전 글에도 언급했지만 본인이 보는 보다 더 깊은 문제의 근본은 선수 자신이다.


선수들이 야구하는 기계로 성장해서 기계같이 야구만 하고 있다. 야구밖에 모른다. 좋게 이야기하면 전문성이고 나쁘게 이야기하면 세상 이치와 스포츠산업에 대한 무지다.  자기가 받은 이 과분한 사랑과 연봉이 어디서 오는지 모른다. 아니 알더라도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오는 진심과 공감이 턱없이 부족하다. 싸인 하나에도, 경기 후 손 한번 흔들어 달라는 이 작은 요구에도 냉정하게 돌아서는 것이 어쩌면 그들의 본심일 수도 있다.


입으로는 팬들에게 감사하다. 팬들 때문이다라고 이야기하지만, 내가 만나 본 수 없이 많은 선수들 중에서 팬들의 관심과 사랑을 제대로 느끼고 감사해하는 선수는 손꼽았다. 문제는 또 있다. 야구하는 기계였는데 시장에는 더 좋은 기계 더 최신 기계들이 너무나 많다.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면 그동안 얼마나 '내수'에 한정된 기계였는지 절감하게 된다.


이들을 누가 탓하랴. 그렇게 야구밖에 모르게 성장했고 야구인들에 둘러싸여 지냈고 자기가 아는 사람과 할 수 있는 것이 야구인들과 야구 밖에 없는 것을.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에 대한 내 답은 간단하다. 공부하는 선수가 되어야 한다. 학창 시절 야구를 하면서도 학생 선수로서 공부해야 하지만, 프로가 되어서도 공부를 해야 한다. 야구에 대해서 그리고 산업에 대해서.


그리고 야구 외적인 일에 더 많이 고민하고 시간을 쏟고 투자해야 한다. 그래서 자기들이 이 거대 산업에 어떤 존재인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은퇴 후에는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좋은 선수에서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서도 미리 공부해야 한다. 선수 외에도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인성을 수양하고 상식을 쌓아나가야 한다. 여전히 선수들을 속이고 이용해 먹는 사람들 중 선수들의 선배들이 많은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야구 기계로서 살다가 기계로서 생명이 다한다면 그다음에는 어떤 인생을 살아갈 것인가? 야구사에 한 획을 그은 몇몇 선수들을 빼면, 슬프게도 아무도 찾아주지 않을 고철 기계로 남을 것인가? 선수들은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생각하고 공부해야 한다. 더 많은 야구 밖의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주저하면 안 된다. 그랬을 때 자기들이 받은 사랑이 얼마나 컸는지 얼마나 과분했는지 이 거대 산업에서 자기 위치와 역할을 무엇인지 온몸으로 깨닫게 될 것이다.


에이전트도 마찬가지이다. 이와 같은 역할을 돕는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어쩌면 선수의 정점일 때 수익의 극대화를 만들어 내는 에이전트가 아닌, '아름다운 은퇴'를 함께 준비해주는 선수 인생의 동반가가 되어야 한다.


이후에도 따로 기술하겠지만 본인이 에이전트를 하면서 가장 크게 신경 쓴 것은 팬들의 사랑이 어디서 오는지 함께 고민해보고, 그 큰 사랑에 작게나마 보답하고 사회에 공헌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그래서 선수 이름을 딴 소셜 펀딩을 진행했고, 스폰서십 계약을 맺을 때 사회공헌 활동을 위한 후원과 지원을 의무적으로 삽입하여 보육원 등을 도왔다. 다들 쉬어야 할 비시즌 기간에 어려운 전국의 어려운 선수들을 대상으로 하는 야구 캠프도 열었다. 과연 무엇을 위해서일까?


이정후 선수와 함께 보육원에 운동화 기부를 하고 있다


선수들은 야구하는 기계가 하니다. 돈 버는 기계가 아니다. 아름다운 은퇴를 함께 준비하는 것이 에이전트 제1의 의무이자 역할이다.




작가의 이전글 스포츠, 인간 영역의 마지막 보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