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는 나를 외면하지 않았다.
쌀쌀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던 작년 10월 말, 서른여덟의 나는 퇴사를 하게 되었다. 스물넷,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하여 아내와 함께 세 아이를 키우며 앞만 보고 달렸던 길고 긴 레이스를 잠시 멈추게 된 것이다. 사랑하는 아내와 결혼을 하고 세 아이를 키우는 것은 내게는 무척이나 행복한 일이었고, 그 행복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러나 '아빠'를 떠나, '인간'으로서의 '나'는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꿈꾸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느 순간부터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인생의 목적을 잃은 직장인으로 살아가며 얻은 것은 '병(病)'뿐이었다. 하지만 '병'이 아니었다면, 나는 멈출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퇴사를 결정하게 되었고, 드디어 레이스에서 벗어나 수건으로 얼굴을 닦을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필자가 가진 병에 대해 잠시 나누고자 한다. 필자는 2017년, '종격동 종양'(경추에 생긴 신경초종) 수술을 하게 되었는데, 이것도 꽤 크고 까다로운 수술로 알려져 있다. 필자의 수술은 지름 5.5cm의 종양을 제거하는 것으로 잘 끝난 듯 보였으나, 지울 수 없는 부작용을 얻게 되었다. 이름도 낯선 '호르너 증후군'(Horner syndrome)과 더불어 얼굴과 어깨 한쪽에서 땀이 나지 않는 신경손상이 그것이다. (수술 전, 수술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의료진으로부터 부작용의 종류를 안내받았는데, 하나도 빠짐없이 얻게 되었다.) 호르너 증후군을 앓고 나서 나는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한쪽 얼굴에 안검하수가 생기면서 얼굴이 흘러내리는 듯한 변형이 왔다. 또한 이유모를 신경통이 정확히 얼굴의 반쪽에 생겨 그때마다 진통제를 복용해야 했다. 잘생긴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얼굴은 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아닌가? 일그러진 나를 거울로 마주할 때면 깊은 우울감과 더불어 좌절, 그리고 자신감의 상실이 찾아왔다. 그렇게 5년을 일하다 보니 나는 지칠 대로 지쳐있었고, 스트레스가 쌓일 때면 바늘로 찌르는 듯한 신경통으로 인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올해 시월이 되면, 이제 일을 내려놓은지 딱 일 년이 된다. 일 년 동안 나는 충분히 쉬었는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았는가?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지 발견했을까? 글쎄. 거창한 질문에 답은 할 수 없다.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소중했고, 그동안 돌보지 못했던 가족들을 사랑하고 돌보는 것에 시간을 쏟다 보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다. 그래도 꾸준히 했던 것이 있다면 '글을 쓰는 것'이었다. 배운 것이 글을 쓰고 읽는 것이라 글을 쓰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IT와 영화에 관심이 많던 터라 블로그에 글을 쓰고, 다듬고, 또 다른 글을 쓰고, 다듬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글쓰기도 재미가 없어졌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누군가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글에 신물이 났다. 새로운 것이 필요한 시점. 나는 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느 날 블로그 글을 쓰다가 무심코 발견한 브런치. 브런치는 수많은 주제로 글을 쓰기 원하는 사람들을 작가로 만들어주는 귀한 창구였다. 나는 기존에 썼던 글들을 모아놓은 사이트를 제출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작가 승인 메일을 받았다. 무언가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는 것에 감사했고 기뻤다. 나중에 보니 한 번에 작가로 승인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이제 브런치에서 어떤 글을 쓰게 될까? 그리고 나의 글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까? 이제 겨우 첫 글을 써 내려가지만 기대가 된다. 그리고 브런치 운영진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브런치는 나를 외면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