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떠난 후 가장 후회되는 것
나는 상처를 준 사람입니다
가끔 카카오톡 친구 목록을 스크롤하며 프로필 사진들을 들여다본다. 그러다 엄지손가락이 멈춘다. 퇴사하기 전 마지막 사업소에서 함께 했던 동료들 이름 앞에서다. 오래되어 차가워진 대화방에 들어갔다. 나누었던 업무 관련 대화나 농담들이 누워있다. 이제 나는 잊힌 사람이 되었겠지. 그런데 내게는 아직도 그들이 현재형이다. 특히 체한 것처럼 마음에 걸려있는 이들이 있다.
회사 생활과 관련해서 그동안 쓴 글들을 보니 억울했던 일, 불합리한 일 등 나는 주로 피해자였다. 뼈를 묻겠다던 회사를 내 사정으로 그만두었지만 좋은 기억들보다는 그렇지 못한 일들이 먼저 떠오른 것이다. 아마 정년퇴직하여 글을 쓴다면 전혀 다른 결의 글들이 나오지 않을까.
얼마 전 예배시간에 목사님께서 설교하시면서 당신이 여러 성도들을 만나 상담을 하시곤 하는데 "상처를 받은 분들만 있고 상처를 준 분들은 없더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웃으셨다. 나도 머쓱하게 웃고 말았다.
해맑고 순진하지만 일을 답답하게 하는 직원 S가 있었다. 해야 할 일을 일일이 일러줘야 하고 올라온 보고서는 내가 거의 다시 작성해야 되는 정도였다. '인사처는 뭐하러 있나, 이런 친구들 걸러내지는 못하고' 하면서 속으로 씩씩거렸다. 처음에는 "좀 더 성의 있고 꼼꼼했으면 좋겠다"라고 조심스럽게 타일렀다. 그러나 법정 서류를 내야 하는 기한도 잊어버리고 해야 할 일을 해결하지도 않고 교육이나 출장을 가버리는 그를 못 참고는 엉뚱한 곳에서 감정적 대응을 해버렸다.
그가 분기 보고서를 올린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내가 고칠까 하다가 직접 하라고 반송했는데 그가 머뭇거리며 사소한 것이니 고칠 필요가 없단다. 그래도 고치라 했고 그는 다시 거부했다. 어라? 괘씸했다.
"하라면 좀 해!"
나는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실은 수정하지 않아도 큰 문제는 없었지만 그의 '버르장머리'를 꺾고 싶었다. 어느덧 나도 '까라면 까'라는 편리하면서도 못돼 먹은 군대 문화를 무기로 쓰고 있었다. 그는 수정했고, 더 이상 내게 웃음을 보이지 않았다.
또 다른 후배 J가 더 묵직하게 걸려있다. 그 친구는 알아서 일을 척척 잘했다. 그러나 후일에 책임 소지가 있을 수 있는 민감한 일에서 뒷걸음질 쳤다. 일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위험을 감수해야만 하는 경우가 있다. 겁이 났었나 보다. 노조 위원장에게 가서 자신이 책임질 수 없는 일을 내가 시키려 한다고 했다. 그러한 이야기를 제삼자에게 들었다. 화가 났다. 담당자로서 책임감이 없는 것에 실망했고 무엇보다 내게 먼저 상의하지 않은 것에 대해 분노했다. 조용히 불러서 이야기해도 될 것을 사무실에 오자마자 그에게 "그렇게 겁이 났냐"라고 쏘아붙였다. 그는 예상치 못한 내 태도에 "저한테 왜 그러세요" 하며 당황했다.
관련한 모든 계획서와 보고서를 내가 직접 작성했고 결재선에서도 그의 이름을 뺐다. 후에 생각해보니 J가 이해되었다. 의사 결정은 위에서 했는데 혹시라도 일에 문제가 생기면 그저 따르기만 했던 자신도 책임을 질 수 있는 상황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담당자보다는 직속 상사가 책임을 지게 되어있다.) 회사를 떠나오면서 "미안했다"라고 했지만 여태껏 가장 마음에 걸리는 후배다.
이 두 후배가 글을 쓰게 된다면 나는 감정적이고 권위적인 사람으로 묘사될 것이다.
마음의 돌들은 불꽃 한 번 튀기고 사라진 듯했지만 그 부딪힌 흔적들은 지울 수 없었다.
S는 예정되어 있던 타 부서 이동 후 내게 인사조차 하지 않았고 나 또한 그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피했다. J는 예의 바른 친구라 그 일이 있고도 내게 깍듯했다. 그러나 나는 술자리에서 안주로 씹히고 있었을 것이다. 선배, 상사라는 이름을 이용해 어린 후배들의 마음을 후려쳤으니. 그때는 크게 인식하지 못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죄책감을 닮은 무거운 감정이 가슴 한편에 똬리를 틀었다.
떠나온 자의 바람은 그저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 것밖에 없다. 밤새워 작성한 보고서는 빛이 바랠 것이고 신중했던 싸인은 더 이상 효력이 없다. 오직 진행형은 동료들의 기억이다. 떠나기 전에는 가시적인 것들 즉, 해내야만 하는 일들과 문서들이 최우선이었다. 그러나 떠난 후에 남은 것은 보이지 않는 감정들 뿐이다. 나는 자만했다. 상처를 준 사람으로 기억될 리는 없을 거라고.
정년퇴직을 앞두셨던 선배들은 떠나기 전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냈었다. 거의 모든 분들이 '지난 허물을 용서해 주시기 바란다'는 문구를 넣으셨다. 악독하기로 소문난 상사들의 퇴임 편지를 읽고는 '괴롭힐 때는 언제고 떠나면서 사죄라니, 과연 누가 그들의 허물을, 받은 상처를 없던 것으로 여길까' 하면서 콧방귀를 뀌곤 했다.
그런데, 떠나 보니 이제야 그들의 마음을 알겠다. 알면서도 혹은 무심하게 쏘았던 말과 행동의 화살들이 떠나는 즈음과 그 후에 자각되고 증폭되어 살아난다는 것을. 그동안의 업무적 성과나 치적들은 쓸모를 다해 먼지가 되겠지만 사람들과 나누었던 마음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더 그립거나 더 아쉬워만 지는 것이다.
내 눈 속의 들보가 보인다. 덕지덕지 붙어있던 좋지 못한 감정의 찌꺼기들을 털어내려 한다. 미움으로 젖어있던 감정들을 시간이 서서히 말려주었나 보다. 이제야 잘 털린다.
뭐 그리 떠나온 회사에 대한 기억의 그림자가 짙고 기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곳에서 지낸 20년이라는 세월의 밀도는 20년이 더 지나야 작아져 부유하다 사라질까.
내가 상처를 준 이들에게도 시간이라는 바람이 그때의 감정을 서서히 말려주었으면 좋겠다. 그 찌꺼기들을 잘 털어냈으면. 좋은 사람으로는 기억되지 못할지언정 나쁘게 기억되지는 않았으면.
뻐꾸기가 청명하고 무심하게 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