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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나무 Jan 20. 2021

퇴사하니 좋다, 라는 거짓말

길을 걷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렸을 때...


모처럼 해가 거실 깊숙이 비치던 아침이었다. 아이들도 모두 오래간만에 학교로 등교하기도 했던 날.

나는 흰 양모 페이크 털이 안감으로 누벼진 검은색 롱 점퍼를 입었다. 그리고는 머리에 숲을 이루기 시작한 흰 잡초들을 감추기 위해 검은 것들과 함께 포니테일로 묶고 빛이 바랜 검은색 나이키 모자 속에 넣었다.

퇴사 한 후로는 얼굴에 수분 로션과 선크림, 마무리로 옅은 립글로스만 입술에 가볍게 르고 외출을 했다. 이제는 코로나 덕에 입술에 글리세린을 문지르는 수고는 덜고 대신 흰 부직포 마스크로 얼굴의 절반을 덮는다.


큰 아이가 고등학교 때 들고 다니던, 스타 강사의 얼굴이 하얗게 프린팅 된 검은색 에코백을 어깨에  둘러메고 동네 도서관을 향했다. 전날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대출할 책을 미리 예약하고 워킹 스루로 책을 찾으러 가기 위해서다. 도서관 현관에서 직원들이 회원증을 확인한 후 책을 내주었다. 강신주의 <감정 수업>과 황현산의 <밤이 선생이다>, 두 권의 책을 에코백에 넣고는 무엇이 아쉬웠는지 잠시 도서관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때 낯이 익은 누군가의 뒷모습이 보였다. 팔자를 크게 그리는 특유의 걸음걸이가 몇 년 전 정년퇴직을 하신 회사 상사임에 틀림없었다. 예전 같으면 일부러 찾아가 아는 척하며 반갑게 인사를 드렸을 텐데 코로나 핑계를 댔다. 그저 몇 초 더 뒷모습만 지켜봤다. '평일 낮시간에 왜 이 곳에 있냐'라고 물으실게 뻔했으니까.


살짝 가라앉기 시작하는 마음의 위치를 느끼며 도서관을 나와 집을 향해 열심히 걸었다. KF94를 써서 그런지 쉽게 숨이 가빠왔다. 머리에 무언가를 썼다 지웠다 골몰하며 내가 좋아하는 도넛 가게 언저리까지 왔을 때였다. 누군가 뒤에서 내 이름을 불렀다. 긴가 민가 하는 파동이 묻힌 목소리였다. 그러다가 확신에 찬 듯 큰 소리로 다시 부른다. 어,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다. , 도넛 가게 근처에 사시는 또 다른 퇴직 선배님의 목소리다. 나를 많이 뻐라 하셨던 고참 선배님이 분명하다. 


그런데 나의 고개는 뒤를 향하지 않았다. 가라앉아 있던 마음과 이리저리 엉켜있던 머릿속 타래가 고개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붙들었다. 나는 그가 부르는 이름이 내 것이 아닌 것처럼 요동도 없이 앞만 보고 계속 걸었다. 그래도 그분은 계속  이름을 불렀. "혜나무씨!"

그만 좀 부르시... 그러면서 그가 나를 쫒아와 확인할까 봐 불안했다. 다행히 그는 요동치 않고 계속 걷는 내 뒷모습을 보고 부르기를 포기한 듯했다. 그와 나의 거리는 제법 많이 벌어졌을 것이다.


멀어진 거리만큼 머릿속은 잠잠해졌지만 마음은 가파르게 밑으로 내달렸다. 햇살은 무심히 따사로웠고 내가 좋아하는 도넛 가게는 뒤로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다. 계속 걸으며 생각했다.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까지 쓴 나를 스치듯 보았음에도 알아본 그와 그의 부름에 뒤돌아 서지 않은 나를. 의 아내처럼 소금기둥이 될 염려도 없는데 나는 무엇이 두려워 뒤를 돌아보지 않았을까.

 

나의 싱그럽고 났던 지난날만 기억하고 있는 그일 터이다. 그러한 그에게 추레한 모습으로 그 낮에  거리를 걷고 있는 나에 대해 말해야 한다. 그러나  이유를 그 길거리에서 따끈따끈한 붕어빵처럼 팔고 싶지 않았다. 나를 예뻐라 했던 그 선배님은 내게, 왜 그랬냐고 아쉬워하며 내가 원하지 않는 시선을 붕어빵의 값으로 건네줄 테니.


함께 일했던 분들이 세월이 흘러도 나를 기억해주는 것이 반가우면서도 눈에 띄지 않길, 잊히길 바라는 이 양가적 무게는 무엇일까. 회사를 그만두고 헐렁한 시간 속에 있는  모습이 부끄러운 것일까. 언제쯤이면, 어디에서든 누구라도 이름을 부르 멈추고 뒤돌아설 수 있을까. 언제쯤이면 옛 동료의 뒷모습을 보고 먼저 찾아가 안부를 전할까. 언제쯤이면.


갑자기 찬 바람 한 자락이 휙 불어왔다. 순간, 앞으로만 향하고 있는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서고 싶었다. 뒤돌아 그 선배님을 붙잡고 내가 좋아하는 도넛 가게에 들어가 흰 당의를 입은 글레이즈드 도넛과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시켜놓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엉켜진 머릿속 타래를 풀고 싶었다. 그러나 그 바람도 가슴속 가운데 층층이 쌓여 무엇이라 읽히지 않는 무거운 감정을 뒤집지 못했다. 그리고는 멋쩍은 듯 두 발을 채근했다. 어서 집으로 가자고.

가서 책을 읽자고, 나를 읽자고. 읽히지 않는 감정을 위로하자고.



가족들이나 가깝게 지내는 옛 회사 동료들은 아직까지도 내게 묻곤 한다. 

'회사를 그만두고 후회하지 않냐'라고.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좋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입은 제 할 일을 하고 나머지 숙제는 모두 마음에게 밀어두었다.


이제 읽히지 않는 감정, 밀린 숙제를 해결하려 앉았다. 풀리지 않는 문제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나는 꺼내기 싫은 답을 적고 답안을 확인을 했다.

후회란 우리가 정신의 자유로운 결단으로 했다고 믿는 어떤 행위에 대한 관념을 수발하는 슬픔이다
-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많은 사람들이 만류했던 퇴사를 결정한 것은 '오로지 나의 자유로운 결단'이라고 믿었다. 나의 현재와 미래를 결정하는 일이니 당연하지 않은가. 그래 놓고는 이름이 불려지자 도망가다니...


철학자 강신주는 <감정 수업>에서 '정신의 자유로운 결단은 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 다. 선택에서 절대적으로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것은 거대한 착각이며 그러하기에 회는 오만이라고. 내가 퇴사를 하게 된 것은 나의 결단으로 인한 것이 아닌, 그럴 수밖에 없는 원인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위로해 주었다. 물론 원인은 있었다. 그리고 그 원인을 퇴사의 변으로 삼아 '후회'라는 감정을 애써 부인해 왔다. 그러나 그 당시의 고통(원인)은 시간에 희석되고 버티지 못했다는 자책의 농도는 짙어가고 있다.


철학자들의 혜안이 내 눈밑 그늘을 살짝 거두어갔다. 그래도 슬픔은 가시지 않는다. 마음은 해답을 얻었다고 금세 태세 전환을 하지 않는 고집불통이니까.

그렇다면 별 수 없다. 흐르도록 내버려 두는 것.

사라지지 않는 감정을 애써 의식하지 말자고, 그게 최선이라고, 놓아주기로 했다. 



그리고 밤에 되찾기로 했다.

밤은 새로운 말을 해줄 것이다.





"낮에 잃은 것을 밤에 되찾는다" - 낮이 이성의 시간이라면 밤은 상상력의 시간이다.
 낮이 사회적 자아의 세계라면 밤은 창조적 자아의 시간이다 - <밤이 선생이다> / 황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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