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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나무 Nov 26. 2020

직장 상사가 나를 적으로 대할 때

시간은 봄을 잊지 않는다

봄에서 있을게



그때 나는 사무실에서 외로웠다.
모든 관계가 지속적으로 직선을 그으며 마냥 좋을 리는 없겠지만, 많은 것들이 어색했고 시험대 위에 올라 있는 것 같아 하루하루 긴장하며 살았었다.

십여 년의 회사 생활 동안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상사가 나를 '적'으로 대하는 느낌이 무척이나 낯설었고
'박혀있는 돌'이었던 나는 '굴러들어 온 돌들'에 의해 영역을 침범당했다고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던 선배들이 사업소를 하나 둘 떠나고 타 사업소에서 온 직원들은 마침 새로 부임한 팀장과 이미 일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팀장 환영회식에서 팀장은 기존 직원들이 해 놓은 일들을 부정했고 일처리를 비난했다. 현장 감독을 하시던 고참 과장님께서 팀장에게 '다 제 탓입니다'라며 술을 따랐다. 평소에는 조용하나 의외로 불끈하는 성격이 있던 나는 한 마디 던지고 말았다.


"과장님이 뭘 잘못하셨는데요, 최선을 다하셨잖아요."


팀장을 쳐다보지는 않았지만 찌릿한 눈길을 느낄 수 있었다.


기존 직원들 중 하나였던 나는 부정(否定)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사무실에서 그들의 싸늘한 시선을 감당해 내는 것, 그리고 흠 잡히지 않는 것이었다.


팀장과 모 사업소에서 오래 같이 근무했던, 싹싹하여 많은 상사들이 좋아하던 S과장(굴러들어 온 돌)이 팀장에게로 가더니 곧이어 팀장이 나를 불렀다. 내가 담당한 현장의 문제점을 이미 내가 파악하여 처리하고 있었는데 S과장이 나를 통하지 않고 팀장에게 고했던 것이다.


"뭐 하고 있는 거죠, 선임이?"

"이미 관련부서에 통지하고 협력업체에 연락을 했습니다."

"왜 나한테 보고를 안 했어요?"

"큰 사항이 아녔기에 마무리하고 보고 드리려 했습니다."


나는 간략 보고서를 그에게 내밀었다.

팀장은 내 보고서를 찬찬히 본 후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결재를 했다. 단지, 내 일을 그에게 고했던 직원을 흘낏 한 번 쳐다보았다.

나는 그 직원에게 '나 잘하세요.'라고 말하고 싶기도 했지만 그냥 쓴웃음만 짓고 돌아섰다.

어찌하였든 팀장은 냉랭했고 나는, 외롭고 힘들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술이 들어가면 내게 취중진담을 하기도 했다.

 

"내가 속이 좀 좁아요."



직장에서 상사가 나를 적으로 하면 사실 뾰족한 수는 없다. 일로 돌파하고 버티는 수밖에. 관계의 불편함에 집중하지 않고 일자체에 집중하려고 애썼다. 감정은 소모되는 것이지만 일에 대한 노력은 보상받게 되어있다. 매정한 정글도 정도(正道)라는 것이 있었다.


그 새로운 팀장과의 화해는 몇 년이 지나서야 이루어졌다. 그는 해외 연수에 나를 추천하기도 했고 각자 다른 사업소에서 일하다 워크숍 등에서 마주치면 무척 친한 척을 했다.



그 외롭고 힘들었던 시기에 중학생이었던 딸이

"엄마 요즘 내가 좋아하는 노래예요"

하면서 내게 들려주었던 노래가 있다.

에피톤 프로젝트의 '선인장'이다. 

(차세정보다는 심규선의 목소리가 더 좋다)

가사를 출력하여 사무실 책상 앞에 붙여 놓고 작은 선인장 화분도 하나 사서 두었다.

나는 외로움의 눈물을 떨구었고,

위로를 받았다.

 

내 머리 위로 눈물을 떨궈
속상했던 마음들까지도
웃는 모습이 비칠 때까지
소리 없이 머금고 있을게
    ......
간직했었던 그대의 눈물 안고 봄에서 있을게
봄에서 있을게

(에피톤 프로젝트 <선인장> 일부)



"봄에서 있겠다"라는 약속 때문에 그 외로운 시간들을 버티었다.


늘 그렇듯
시간은 봄을 잊지 않는다.





나를 위로했던  그 노래

https://youtu.be/589ZPf-SkpU

*표지 사진 - 에피톤 프로젝트 <선인장> 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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