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나무 Dec 09. 2021

정신의 '터프함'이 필요한 시간

나는 지금 멀미 중


요즘 나의 고정석은  식탁이다.  먹은 자리 치우자마자 뒤늦은 공부를 한답시고 이런저런 책과 인쇄물들을 잔뜩 널어놓는다. 글을 쓰는 시간보다 두 손으로 마른 얼굴을 벅벅 비비고 한숨을 쉬는 시간이 많아졌다. 행복해지고 싶어서 시작했으나 지금은, '아직은'이다.


그저 내 세계의 어느 한 곳, 일정 부분의 일이라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모든 것은 아니어도 많은 것들을 걸어야 하는 곳이라는 걸 깨닫고 있는 중이다. 절대 '가벼이' 들어서서는 안 되는 그런 곳. 말 그대로 '쥐뿔'도 없이 들어선 나의 현재 상태는 '황망함'이다. 알아야 할 것들, 깨닫고 적용해야 하는 것들이 천지인 세계에서 마음만 조급하여 어지럽다. 빙빙 돌아가는 원심력에 떨어져 나간 머리카락들이 등 뒤로 수북하다.

그러나 알아야 할 것들이 많다는 것은 설레는 일이기도 하다. 내가 알고 싶었던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단지 생각했던 것보다 깊고 넓어서 나의 얕음과 좁음을 확인하게 되어 한없이 낮아지고 작아져 있다.


9월부터 시작해서 12월이 된 지금까지, 루틴한 일상생활을 제외한 거의 모든 시간에 그곳에 거하고 있다. 그곳은 '낯섦'을 지향한다. 정말 낯선 섬이다. 낯설어서 춥기도 하다. '복지부동'의 자세가 굳어져 있는 내게 '전복'을 반복하여 말한다. 어쩌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나를 원하고 있는 것일까. 원래의 나를 이야기하고 싶어 그곳에 갔는데. 자동화된 인식을 지니고서는 도저히 다다를 수 없는 그곳에서 나는 지금, 멀미 중이다.




이제 하나 남았다. 이번 주말까지 시 창작 과제 하나만 제출하면 이번 학기 끝이다. 그동안 한 편의 단편소설과 두 편의 수필, 세 편의 시를 썼다. 그리고 리포트로 시 비평 세 편과 소설 분석, 영화 시놉시스, 씨네 에세이를 각각 한 편씩 썼다.


가장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인 글은 단연 소설이었다. 가장 써보고 싶었던 장르였기 때문이다. 초고를 한 달 만에 써서 내야 했다. 어떻게 쓰는지도 모르고 그냥 썼다. 그동안 읽었던 소설책이 몇 권이더냐. 그러나 역시,였다. 합평 시간에 흠씬 두들겨 맞았다. 하루키도 아니면서 구성도 생각하지 않고 글을 써댔으니 당연하다. 현재와 과거가 혼란스럽고 인물들이 구식이며 결말은 작위적이란다. (@지평선 작가님께서 그리도 자세히 팁을 알려 주셨는데도 적용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심지어 내 소설이 특정 소설과 닮았다고 의심하는 학우도 있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게시판을 뒤집어 놓고 싶었다. (물론 소심쟁이인 내가 그럴 리 없다.) 실시간 합평 시간에 교수님에게 물으니 자신은 내 소설을 읽으며 전혀 그 소설이 생각나지 않았다 했다. 물론 소재가 비슷한 것들이 있지만 '해 아래 새 것은 하나도 없다'라고도 했다. 그 후에야 그 학우는 내게 사과를 했다.

그러나 합평 시간의 분위기는 대체로 좋았다. 교수님이 합평의 예의를 일러 주었고 모두들 조심스럽게 의견을 나누었다. 그래도 내 글이 지적받을 때 기분이 좋을 리 없다. 이곳에서는 문우님들이 늘 격려와 칭찬을 해주었기에 신나서 썼는데 말이다. 적진(?)으로 돌격해 봐야 내 무기의 효용성을 알게 된다. 몇몇 학우들이 자신의 소설에 대해 너무 창피하다고 하자 교수님은 웃으며  그럴 필요 없다고 했다. 자기 눈에는 수준이 다들 고만고만하다고. 그 말이 위안이 되면서도 섭섭한 건 또 뭔지.


소질도 없으면서 애먼 곳에서 용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내가 글을 놓으면 무엇을 할 것인가. 글쓰기만큼 눈을 뜨나 눈을 감으나 내 속에 깊이 들어온 것이 있었나.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그래도 5년 이상은 꾸준히 써야 어디 가서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냐'라고 하신 한 작가님의 말씀이 위안이 된다. 이제 고작 2년이 되어간다. 최소한 3년은 더 버텨야 한다는 사실이 지금 내게는 희망이다.


좌절하면서도 계속 글을 쓰기 위해 춘수(春樹) 씨가 말씀하신 '정신의 터프함'을 장착하려 한다.

"망설임을 헤쳐 나가고, 엄격한 비판 세례를 받고, 친한 사람에게 배반을 당하고, 생각지도 못한 실수를 하고, 어느 때는 자신감을 잃고 어느 때는 자신감이 지나쳐 실패를 하고, 아무튼 온갖 현실적인 장애를 맞닥뜨리면서도 그래도 어떻게든 소설이라는 것을 계속 쓰려고 하는 의지의 견고함 (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p.198)" 말이다.


무엇은 되지 못하더라도 글은 계속 쓸 작정이니 격렬하게 터프해지고 싶다.






사진 :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표지

매거진의 이전글 나만 들리는 소리, 들리지 않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