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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나무 Jul 23. 2021

그 길 언저리를 서성이다가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다운지


순전히 그 시인 때문이었다. 내 성적으로 갈 수 있는 학교는 다 고만고만했는데 그녀가 그 학교 국문학과 교수로 있다는 사실에 끌렸다. 그렇다고 그녀가 있는 학과를 선택한 것은 아니다. 원래 나라는 아이는 속마음은 속에 두고 겉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함을 일찌감치 터득한 터였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그녀의 강의를 처음 들었다. 교과서에서 시로만 접했던 시인의 모습과 육성을 실제로 영접한 것이다. 환갑이 넘었던 그녀는 상상했던 것보다 더 감성적인 언어와 목소리를 지니고 있었다. 황홀했다.


전공 수업에 치이면서도 사이사이에 국문학과 강의를 몇 개 들었다. 원소가 어쩌고 전자가 어떻고 하는 달나라 이야기만으로는 척박해서 목이 마르곤 했기에. 당연히 그 노시인의 수업도 들었는데 다 잊어버리고 딱 한 가지만 생각난다.

어느 여인이 성감대를 키우기 위해 동전 하나를 가지고 발끝부터 시작해서 머리끝에 이르기까지 동전을 얹어가며 피부 속 감각을 느끼고 살려낸 이야기였다. 아이들은 웅성대고 킥킥거렸다. '시'라는 것은 온몸이 반응하여 나타내는 감각의 표현이라는 것이 요지였을 거다. 그 수업을 제외하곤 다른 국문과 강의들은 한마디로 '별로'였다. 실망이 컸다. 고등학교 국어시간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어찌어찌 21학점을 때우고 '국어국문학 부전공'이라는 쓸모없는 한 줄을 졸업장에 새기게 되었다.


척박했지만 다소 쓸모가 있던 전공(화학)으로 20여 년을 잘 먹고 잘 살아왔다. 그러면서도 월급의 일부를 성미 쌀처럼 조금씩 덜어내어 축적했다. 언저리에서만 서성이던 그 길을 언젠가는 제대로 걸어보고자 하는 미련이 있었던 거다. 바빠서 흔들릴 때는 몰랐는데 고요한 시간이 되자 내 안에서 부유했던 것들이 가만히 앙금처럼 가라앉아 형체를 띄고 싶어 했다. 언어로 존재하고 싶어 했다.


일 년 반을 떠돌고 있는 내 글들이 좌표를 물었다. 점들이 아닌 지속적인 선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점은 선을, 선은 면을, 면은 공간을 꿈꾼다. 아직 나의 글들은 점에 불과한데 어떻게 선으로, 면으로, 공간으로 확장되어 나아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배우기로 했다. 오랜 시간 막연하게 생각만 해왔던 것을 실현시키기 위해 한 자루 모아진 성미 쌀을 재단(제단 말고)에 바치기로 했다. 처음에는 집에서 멀지 않은 대학에 편입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하늘의 명을 알게 된' 머리는 이제 도통 회전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어차피 코로나 시대, 오프라인의 대학들도 비대면 수업이다. 무리 없이 입학할 수 있는 사이버 대학을 택했다. (3학년을 휴학 중인 딸도 1년은 온라인만으로 수업을 받았으니 반은 사이버대생이다)


사이버 대학들이 의외로 많다. 문예창작학과가 있는 몇몇 학교로 좁혀졌지만 고르려니 기준이 서질 않았다. 그러다가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는 시인이 모 사이버 대학을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고뤠?' 하며 그 학교를 택했다. 30년 전에도 유명한 시인에 끌려 대학을 택하더니. ('시인'에 끌리는 건지, '유명한'에 홀리는 건지) 이토록 단순하다 내가.


어제 입학금을 냈다. 수강신청은 7월 말에 있고 학기 시작은 8월 말이란다. 수업료는 신청한 학점당 지불하는데 생각보다 금액이 크다. 살짝 남편의 눈치가 보이지만 일단 문고리를 잡았으니 열고 들어갈 것이다.

조금은 설레기도 하면서 두렵기도 하다. '조금은'이라고 쓸 수밖에 없는 것은 교수들과 학생들을 거의 대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옛날 노시인의 강의에서처럼 웅성거리는 분위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고 박완서 작가가 말했던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다운지 걸어볼 참이다. 현실이 초라해 보여서가 아니다.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언저리에서 풀 냄새만 맡았는데 이제는 그 숲 길을 걷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와 돈을 쓸 용기가 생겼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투자 없이 구체적으로 움직이기란 어렵다. 아무리 좋은 내용의 잡지책도 공짜로 주면 잘 안 보게 된다. (나는 그렇다는 얘기다.)


물론 안다. 화학과를 나왔다고 해서 다 화학자가 아니듯 문창과를 거친다고 해서 버젓한(?) 작가가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는 걸. 난 단지 방향을 몰라 방황하는 내 글들을 안착시키고 싶을 뿐이다. 아니 어쩌면 뒤늦게 찾아간 숲 길이 더 아름다움을 이미 체득하고 '행복하다'고 자랑하시던  작가님의 모습이 부러웠던 게다.


덜 부럽고 더 행복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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