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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나무 Jul 02. 2021

부모님 댁 현관의 비밀번호

그리움의 기호


아버지께서 얼마 전 병원에 입원하셨었다. 욕실에 떨어진 물방울 하나도 못 보시고 매번 걸레로 닦아내실 만큼 정갈하신 분이다. 그런 분이 외출하고 들어오셨는데 바지가 소변으로 흠뻑 젖은 상태였다고 한다. 방광과 전립선의 문제였다. 올해로 여든셋의 아버지. 기관들이 하나둘 제 할 일을 잊어가고 있다.


"내가 간호를 하겠지만 혹시 모르니 누나도 대기하고 있어."


아직 싱글인 남동생이 아버지를 간호하기로 했다. 엄마는 지병이 있으시고 언니와 오빠도 일을 하기에 전업주부인 내가 간호하는 것이 마땅했다. 그러나 아버지 병환이 딸보다는 아들이 편한 것이기에 일단 그리하기로 했다. 환자와 보호자 모두 사전에 코로나 검사를 받고 음성이 나와야 입원이 가능하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보호자도 한 명밖에 허락이 안되고 외출이 금지되었다. 망할 놈의 코로나. 내 일상 속으로도 끼어드니 생경한 두려움이 일었다. 동생은 온라인으로도 업무가 가능하다고 했다. 대신 부득이 외출이 필요해 간호를 못하게 되면 내가 투입되어야 하기에 긴장하고 있었다. 연일 '코로나 검사 후기'를 검색해댔다.


아버지는 다행히 간단한 수술로 치료가 가능했지만 연로하셔서 일주일 동안 입원하셔야 했다.

평소에도 불면증으로 힘들어하셨는데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불편한 병실에서 더욱 잠을 이루지 못하셨다. 동생도 어쩔 수 없이 연일 뒤척이는 밤을 보냈다고 했다. 병원 로비에서 잠깐 본 얼굴이 너무 수척해져 있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고맙고 미안해."

"뭐가 미안해, 당연한 건데. 누나 긴장하고 있었지? 연습이라고 생각해. 앞으로 이런 일들이 또 있을 텐데."


동생은 애써 가볍게 미소 지었고 나 또한 옅게 받고 병원을 나왔다. 그러나 가라앉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앞으로 이런 일들이 또 있을 텐데.'라는 동생의 마지막 말이 오래도록 맴돌았다.



십여 년 전 어느 날, 아버지가 자꾸만 게처럼 옆으로 걷기에 엄마는 아버지가 장난치시는 줄 알았다고 한다.

장난이 아닌 뇌출혈이었다. 동생이 수년간 치르던 공인 회계사 시험에 또 떨어지고 얼마 후에 일어난 일이었다. 동생은 자기 때문에 아버지가 그리되신 거라고 자책했다. 다행히 위기는 넘기고 호전되셨지만 그 후로 원래도 많지 않았던 말수가 더욱 줄어드셨 기력도 쇠하셨다. 하지만 그 정갈함은 그대로 유지하셨는데 이번 일로 아버지도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신 엄마도 상심이 크신 듯했다.


"아이고, 그 깔끔한 양반이 바지에 오줌을 잔뜩 싸서는 들어오는데..."


엄마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다 눈가에 고여 물이 되고 있었다. 그러는 엄마 또한 여러 지병이 있으시다. 때문에 화이자 백신 1차를 맞고 크게 앓으셨다. 그 와중에 아버지까지 입원하시고 같이 살고 있는 동생마저 간호를 하러 가야 하니 엄마 혼자 계시게 되었다. 내가 주중에, 언니가 주말에 엄마를 돌봐드렸다.


부모님께서 동시에 편찮으시면서 갑자기 모두 함께 살던 시절로 잠시 돌아간 것 같았다. 서로 바쁜 나날로 명절이나 생신이 아니면 연락이 뜸한 남매들이었는데 말이다. 동생의 말처럼 부모님이 연로해지시면서 당신들을 돌봐드려야 하는 횟수가 점점 늘어갈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이 생의 질량이 정해져 있다면 삶의 부피는 줄이고 밀도를 높이는 수밖에.  우리 서로 촘촘해진다.



부모님께서 지금 살고 계시는 아파트 현관문의 비밀번호를 알고는 코가 시큰했다. 그 여섯 개의 숫자들은 당신들의 첫 자가 주택이자 우리 여섯 식구가 다 함께 마지막으로 살았던 작은 아파트의 동과 호수이루어졌다. 그 집에서 언니, 오빠, 나까지 결혼을 시키시고 두어 번 이사를 하고도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두 분은 여전히 그 공간, 그 시절에 머물고 싶으신 걸까.


엄마께서 지난주 백신 2차를 맞으셨다. 1차보다 2차가 부작용이 크다고 하기에 나와 언니는 또 주중과 주말로 나누어 부모님 댁을 향했다. 이번에는 아버지와 남동생도 있다. 그러나 남동생은 아버지 입원으로 밀린 일을 해야 하고 아버지는 수술 후 회복 중이시라 언니와 내가 또 출동한 것이다. 두 사람 다 오랜 직장 생활로 음식 솜씨는 서툴렀다. 특히 나를 의심하는 경향이 더 커서 "와, 네가 이런 것도 할 줄 알아?" 하는 소리를 들었다. 내가 그리 어리바리했었나.


엄마가 이번 주에는 좀 괜찮아지신 것 같다. 이제는 그만 오라고 성화시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부모님 댁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부모님 댁 현관 앞. 벨 대신 도어록의 비밀번호, 000(동) 000(호)를 누르며 잠시 물컹하게 설렌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20여 년 전 우리의 그 작은 아파트에서처럼 내가 흘린 긴 머리카락을 줍고 다니시는 아버지의 잔소리가 들리고, 고기를 싫어하는 딸내미를 위해 몰래 육수를 끓여 아닌 듯 섞으시는 엄마의 어설픈 뒷모습이 보일 것만 같다.


 "저 왔어요." 하며 들어섰다.

 "오지 말라니까 왜 자꾸 와아!"라고 말씀하시면서도 반기시는 두 분 얼굴이 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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