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나무 Apr 30. 2021

메이퀸 그리고 붕어빵 아저씨

허영과 낭만 사이에서


고1 담임 선생님은 교련 선생님이었다. 그녀는 수업시간에 교련보다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다. 거의 매 수업마다 '에드가 앨런 포'의 서정시 '애너벨 리'를 아련한 눈빛과 우아한 목소리로 읊어주며 시작했다. 어린 시절 가정교사로부터 배웠던 시라 했다. 나는 그녀가 낭만적이라 생각했다. 아름다운 영시를 외워서 낭독해 주는 어여쁜 선생님이라니.


그러나 그녀는 점점 자신의 유복했던 유년시절과 입고 있는 옷들이며 마시고 있는 미제 커피(초이스)를 자랑했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서울 변두리에 있는, 그리 넉넉하지 않은 집의 아이들이 다니는 곳이었다.


역시나 교련 수업은 하지 않던 어느 교련 시간, 그녀는 시청각실에 아이들을 모아놓고 비디오를 틀어주었다. 무슨 행사 장면이었는데 그녀가 왕관인지 티아라인지를 머리에 쓰고 있었다. 자신이 다니던 대학에서 '메이퀸(May queen)'에 선정되었을 때 찍은 것이라 했다. 사회에서 리더로서 모범이 되는 동문에게 주는 것이라나. 그저 수업을 하지 않게 되어서 무엇이든 괜찮았던 우리들은 '우와'하면서 황홀한 척했다. 


2학기 중간고사가 끝난 어느 날 그녀가 우리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내가 반에서 일등을 했는데 축하한다고, 그러니 떡을 해서 보내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엄마께 신경 쓰시지 말라고 했다. 우리 엄마는 아버지의 구멍 난 러닝셔츠를 버리지 않고 당신이 입던 분이다. 그런 가난하고 알뜰한 엄마에게 없는 요구를 하는 그녀가 어이없었다. 


기다리던 떡이 오지 않자 그녀는 나를 따돌렸다. 나도 학급 임원이었는데 가을 체육대회 행사 준비에 나만 빼고 다른 아이들을 불렀다. 기분이 상했지만 책임을 다하기 위해 따라나섰다. 그러자 그녀는 '너는 왜 오냐'  이죽거렸다. 그녀 입장도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었다. 여태 그래 왔는데 나 같은 아이를 만나  잔치를 못 벌였으니 많이 불쾌했을 것이다.


하루는 그녀가 야간 자율학습 시간을 기다리며 졸고 있는 아이들 앞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모 대학교 앞에서 붕어빵 장사를 하는 남자와 그 학교 여대생이 결혼한 이야기였다. 그 남자는 국민학교 밖에 나오지 않은, 겨우 붕어빵이나 파는 사람인데 그 여대생이 너무 바보 같다고. 아무리 사랑해도 그렇지 어떻게 그렇게 수준 차이나는 사람과 결혼을 하냐고 했다.(선생님의 남편은 S대생이었다.) 나는  낭만적이라 생각하면서도 이입되지는 않았다. 여대생과 국졸의 붕어빵 아저씨의 사랑이라니. '아저씨가 무지 잘생겼나 보다' 하며 넘겼다.


고2, 고3 때에도 간혹 반에서 일등을 했지만 떡을 해오라는 선생님은 없었다. 그 사이 교련 선생님은 담임 자격에서 박탈되었다. 당시 학교에서는 저축 습관을 들인다며 학생들의 적금 납입을 대리해 주었는데 그녀가 아이들 돈을 개인적으로 유용했다고 했다. 그녀가 학교에 계속 남아있던 걸 보면 왜곡된 정보일 수도 지만 담임을 맡지 못한 건 확실했다.


고3 막바지, 교련 시간이었다. 당연히 자습이었다. 그녀가 내게 어느 대학에 지원했냐고 물었다.(그때는 선지원 후시험이었다.)  대학을 썼다 하니 매우 안타까워했다. 자신이 다니던 대학에 넣지 그랬냐고. 물론 그럴 수는 있었다. 그러나 그녀와 동문이 되긴 싫었다. 우아하게 '애너벨 리'를 낭독해주던 모습처럼 삶의 태도 그러했다면 권하지 않아도 그녀의 길을 흠모했을 것이다.



대학에 입학하고 제일 처음 만난 유명인은 학교 앞에서 붕어빵을 파는 아저씨였다. 맞다. 교련 선생님이 이야기해주던 그 전설적 인물을 직접 만난 것이다.(내 예상과는 달리 잘생기시지는 않았다.) 그는 우리 학교의 낭만이었다. 국문과 선배가 붕어빵을 사 먹으면서 아저씨와 사랑하게 된 것이다. 물론 그 길이 순조로웠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보편적이지 않은 길은 가시밭 길이니까.


아저씨의 붕어빵이 대한민국 일등이었다는 것에 내기를 걸 수도 있다. 팥은 듬뿍, 몸통 부분은 쫄깃, 꼬리는 바삭한 최고의 붕어빵이었다. 아저씨는 학교 제가 열리면 초대를 받아 노래를 불러주시고 신나게 우리들과 놀다 가시곤 했다. 오래되어 뵐 수 없는 국문과 선배보다는  학교 앞을 지키는 아저씨가 동문이었다.


졸업 후 TV에서 붕어빵 아저씨 부부의 이야기를 접했다. 흔하지 않은 사랑 이야기에는 늘 사람들의 호기심이 따라다니법이다. 학교 앞 붕어빵 리어카는 다른 분에게 넘기고 모 소도시에서 감자탕집을 하시고 있었다. 다행히 살림이 펴신 것이다. 반갑고 감사했다. 그러면서 서운하기도 했다. 이제 학교 앞에 가서 그 맛있으면서도 낭만 가득한 붕어빵을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이.



허영과 낭만 사이에서


학력이라는 계급차를 넘어선 사랑이 내게 왔을 때 과연 그것을 완성시킬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는 자신이 없다. 어느 정도 삶의 알맹이가 무엇인지 알게 된 후에도 망설이게 된다.

가슴으로는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를 읊으면서 머리로는 시인의 학력까지 흘깃거린다. 낭만이라는 아름다움을 웅얼거리면서 그 쓸모를 생각한다. 시를 흠모하지만 시처럼 살 자신은 없다.


그런 면에서 모습은 교련 선생님의 모습일 수도 있겠다.

'날 사랑하고 내 사랑을 받는 일밖엔 / 소녀는 아무 생각도 없이 살았네' (시 '애너벨 리' 일부분)

이 시를 영어로 읊던 순간의 그녀의 목소리는 감미로웠고 그 눈은 아련했다. 껍데기를 자랑하던 선생님도 내면 어딘가 깊은 곳에서는 '무용하고 아름다운 낭만'을 꿈꾸었을지도 모를 일.


그러나 그녀는 자신을 흠모할 뻔한 한 소녀에게 상처를 입혔다. 교련 선생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메이퀸'의 선한 본래 의도를 존중했을 것이다. 그녀가 무시했던, '사랑밖에 모르던' 붕어빵 아저씨 부부는 '낭만'으로 기억되고 회자되겠지만 그녀는 나를 비롯한 뭇 제자들에게 '허영'으로 읽히다 사라질 것이다.

(몇몇 대학에서 치러지던 메이퀸 행사는 90년대에 다 사라졌다고 한다. 세상도 껍데기를 아는구나.)


허영과 낭만은 둘 다 불완전하다. 타인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비어있는 영화로움은 그 타인들이 곧 알아차릴 것이며, 낭만은 자신의 감상과 이상에 충실하나 곧 바깥세상과 충돌하고 만다. (돈키호테의 낭만을 보라.)


어쩌면 허영은 낭만의 잘못된 분출일지도 모르겠다. 다다를 수 없는 내면의 충족을 위해 껍데기를 치장한다.  낭만을 흠모하되 가난한 시인은 되기 싫은 나는 지적 허영으로 나불거리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낭만을 흠모하는 자로서 바람이 있다면  붕어빵 아저씨 부부가 '그래서 그 두 사람은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라고 끝을 맺는 동화처럼  예쁘게 살아가셨으면 좋겠다. 그러실 테지만.




붕어빵은 언제나 먹어도 맛있다. 꽃잎 흩날리는 오월에도.












매거진의 이전글 외할머니의 서러운 미역국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