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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나무 Mar 25. 2021

외할머니의 서러운 미역국

서울에서는 미역국에 마늘을 안 넣나요...

 

미역국을 끓이려가 불현듯 어릴 적 생각이 나 백종원의 요리 유튜브를 검색했다. 그는 과연 미역국에 마늘을 넣는가 그렇지 않는가를 보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그도 미역국을 끓일 때 마늘을 넣었다. 나처럼, 우리 엄마처럼, 우리 외할머니처럼.



엄마의 막내 동생, 그러니까 나의 외삼촌은 외할머니가 48세에 낳으신 늦둥이셨다. 늦둥이들은 머리가 좋다는 속설을 외삼촌은 사실인 듯 증명하셨다. 낙도의 깡촌에서 하늘 대학에 하니 붙어서 외갓집에서는 없는 살림에도 동네잔치까지 하셨다 한다. 외삼촌은 좋은 직장에, 부잣집의 세련된 여인을 만나 결혼을 하셨다.


외숙모가 아이를 낳자 손주를 보러 그 먼 남쪽 섬에서 살고 계시던 외할머니께서 서울 우리 집으로 올라오셨다. 그때 할머니 연세가 일흔이 넘으셨었다. 워낙 먼 거리라 자주 뵙지 못했는데 오랜만에 뵌 할머니 얼굴은 전형적인 시골 할머니다. 날것의 볕이 그대로 스민 구릿빛의, 수분이 없어 쪼글쪼글한 피부, 이마와 눈가에 깊은 골이 패인 얼굴의 우리 외할머니. 키도 초등학생 저학년이었던 나보다 조금 크셨고 희고 긴 머리는 쪽을 지셨었다. 그래도 항상 웃는 얼굴로 '내 새끼, 우리 똥강아지들'하며 많이 안아주시던 할머니는 호호 할머니처럼 귀엽고 따뜻하셨다.


아기를 낳고 아직 병원에 있는 외숙모를 위해 미역국을 끓여 놓으시겠다는 할머니를 따라 외삼촌 댁으로 향했다. 외삼촌의 신혼집은 우리 집에서 걸어서 족히 한 시간은 걸리는 아파트였다. 외삼촌이 맞이해 주셨고 다시 병원으로 가신 사이 외할머니는 미역국을 끓이셨다. 엄마가 끓여주신 미역국 맛과 똑같았다. 우리 엄마의 엄마 솜씨니 당연하다. 그때 할머니께서 미역국을 만드셨던 과정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내가 엄마에게 배운 방법 그대로 일 것이다. (참기름에 마늘을 넣어 먼저 볶은 후 고기와 물에 불린 미역, 간장을 넣고 다시 볶는다. 그리고 고기가 어느 정도 익으면 물을 부어 오랜 시간 끓여낸다)

당연하게 맛있는 미역국. 외할머니가 끓여주신 미역국으로 밥 한 그릇 뚝딱 먹고 외삼촌을 기다렸다.


저녁 시간보다 다소 늦게 외삼촌이 안사돈 어른과 함께 오셨다. 외숙모의 산후조리를 위해 오신 사부인은 드라마에 나오는 부잣집 마나님 같았다. 풍성하고도 결이 고운 짧은 머리에 고급스러운 옷을 입고 계셨다. 허리도 곧으시고 키도 크셨다. 우리 외할머니는 작고 허리도 굽고 흰머리는 비녀로 쪽을 지셨는데 말이다. 사부인에게서는 외할머니에게서 나는 침이 마른 냄새 대신 은은하고 향기로운 분 냄새가 났다.


외할머니는 미역국과 몇 가지 반찬을 곁들어 저녁상을 내오셨고 외삼촌과 안사돈께서 상 앞에 앉으셨다. 그런데 안사돈께서 미역국을 깨작거리기만 할 뿐 드시지 않았다. 외삼촌이 눈치를 보더니 외할머니께 짜증이 묻은 목소리로 말하셨다.


"서울에서는 미역국에 마늘을 안 넣는다 말이요!"


나는 외할머니의 표정을 살폈다. 당황스러움과 서운함이 얼굴 주름 사이사이 깃들고 있었다. 등은 더욱 굽어지고 쪽진 흰머리는 전등불에 반사되어 외삼촌을 비추고 있었다. 안사돈은 손사래를 치면서 외삼촌을 나무라셨지만 국은 드시지 않았다. 집안의 자랑, 외삼촌이 그리 미워 보일 수가 없었다. 외할머니가 꾸부정한 허리로 만든, 막둥이 며느리를 위한 미역국인데 고생하셨다는 말은커녕 마늘 타령이라니.

남들은 아들 가진 엄마가 떵떵거린다는데 우리 외할머니는 잘난 아들을 낳으시고도 사돈댁 앞에서 초라하게 굽어지셨다. 두 분이 밥을 다 드셨는지는 기억도 안 난다. 그 사이 더욱 늙어버린 할머니의 작고 거친 손을 꼭 잡고 어둑한 저녁길을 걸어 집으로 왔다.



외할머니는 글자를 읽지 못하셨다.

교회에서는 예배 초입부에 사도신경을, 말미에는 주기도문을 외운다. 그럴 때마다 꿀 먹은 벙어리셨던 할머니는 속상해하셨다. 내가 중학생이던 어느 날, 그때도 아주 오랜만에 우리 집에 올라오신 외할머니는 내게 기도문을 외울 수 있도록 도와달라 하셨다. 내가 주기도문 한 줄을 읊으면 할머니도 따라서 읊으셨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그러나 몇 날 며칠을 해도 할머니는 늘 첫 소절만 반복하시고 진도가 안 나갔다. 그렇게 며칠을 하다가 내가 꾀를 냈다. 카세트 테이프에다 주기도문을 녹음했다. 할머니는 카세트 라디오를 틀어놓고 흘러나오는 내 목소리를 따라 떠듬떠듬 주기도문을 외우셨다. 그리 편할 수가 없었다. 역시 난 머리가 좋아, 하며 기분 좋아하다가 조그마한 기계를 손녀 대신 바라보고 외우시는 모습에 죄책감이 솟았다. 그러나 게으름을 이기지는 못했다.


할머니는 기도하신다면서도 주기도문 앞부분만 읊으셨다. 심장병으로 아픈 딸을 위해서도(우리 엄마는 꽤 오랜 기간 심장병을 앓아오셨다), 미역국에 마늘을 넣었다고 면박을 주던 막둥이 아들을 위해서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부르셨다. 외할머니의 주기도문은 겨우 네 마디였지만 자식에 대한 모든 사랑의 언어를 실었을 것이다.


외할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셔서 팔 남매를 외할머니 당신 혼자 키우셨으니 이 작은 공간에 담을 수 없는 고생을 하셨을 것이다. 그 와중 막둥이가 서울에서 잘 사는 모습을 보셨으니 그거면 되었다고 감사의 주기도문을 드리셨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대학생이 되던 해에 서러웠던 생을 뒤로하시고 고운 모습으로 그분 곁에 가셨다.



미역국을 끓이기 전 마늘을 까며 생각한다.

외삼촌께서는 마늘을 넣지 않은 미역국을 드시고 계실까? 어쩌면 마늘향 가득한 당신 어머니의 미역국을 그리워하고 계실는지도 모르겠다. 외할머니의 서러웠던 미역국은 손녀인 내게는 아릿한 마늘맛이다. 

게으름을 이기지 못했던 그 손녀는 오래된 죄책감으로 마늘을 듬뿍 넣은 미역국, 외할머니를 위한 진혼(鎭魂) 국을 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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